한국은 자국 아이를 해외로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입양 보낸 국가다. 70년간 20만 명의 어린이가 고아나 버려진 아이 신분으로 다른 나라로 보내졌다. 서류 조작 등 각종 불법과 인권침해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해외입양이 거대한 이권 사업이었다는 의혹도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해외입양 피해자와 수익자, 책임자를 찾고 구조적 문제를 규명하는 <해외입양과 돈>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편집자주] (관련 기사 하단)
지난 수십년 간 진행돼온 해외입양 사업이 입양 기관들의 돈벌이 수단이었다는 오래된 의혹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점차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 입양 기관에서 한국 아동 해외 송출을 매개로 외국 기관에서 각종 명목의 기부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3000쪽 분량의 덴마크 입양기관 내부 문서를 입수했다. 이 문서는 한국 기관이 덴마크의 협약 입양 기관과 입양 절차를 진행하며 주고받은 서신과 입양 기관의 내부 문서 등이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다. 한국의 해외 입양과 관련한 제반 문제를 현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에서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입양 기관들의 내부 문서가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입양 문서에는 한국 입양 기관이 해외 파트너 입양 기관에 아이 송출을 대가로 돈을 요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돈 외에 각종 물품을 기부 형식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외국 기관은 마치 상품을 주문하듯 한국 아동을 요구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의 입양 기관들이 아이를 사실상 거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시 해외입양을 담당했던 기관들이 더이상 진실을 숨기지 말고 당시 입양 사업의 관행과 불법성 여부 등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 <-> 덴마크 서신 입수
최근 뉴스타파와 덴마크의 독립 탐사보도 매체 ‘프리헤스브레베트(Frihedsbrevet)’ 취재진은 덴마크 입양 기관 DIA(Danish International Adoption)의 내부 문서 3000쪽을 입수했다. DIA는 과거 한국 아동 입양 사업을 진행한 두 개의 덴마크 입양 기관, 어답션 센터(Adoption Center ·입양 센터)와 댄어답트(DanAdopt)가 합병한 기관이다. 어답션 센터와 댄어답트는 1969년부터 한국 아동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사진 : 덴마크 입양 기관 DIA로부터 입수한 입양 문서 3000쪽.
어답션 센터와 댄어답트는 한국으로 치면 홀트아동복지화와 한국사회봉사회와 비슷한 민간 입양 기관이다. 홀트아동복지회나 한국사회봉사회 등이 아동을 조산소나 고아원 등에서 인수하면 수신국, 즉 입양 아동을 받는 나라의 입양 기관은 현지 양부모들의 입양 희망 신청을 받는다. 송출국, 즉 아이를 보내는 나라의 입양 기관과 수신국의 입양 기관은 어떤 아동을 어느 양부모에게 입양 보낼지 등 실질적인 입양 절차를 논의하고 아동과 양부모를 연결시키는 일을 했다. 어답션 센터는 한국사회봉사회의, 댄어답트는 홀트아동복지회의 협약 기관이었다.
DIA로부터 입수한 3000쪽의 문서는 주로 어답션 센터와 댄어답트가 한국 협약 기관과 주고받은 서신이다. 일부 어답션 센터 혹은 댄어답트가 자체적으로 작성한 내부 기밀 자료, 혹은 회의 문건 등도 포함돼 있다. 어답션 센터와 한국사회봉사회가 주고받은 서신이 비율로는 가장 많다. 해외 입양은 송출국(한국) 뿐만 아니라 수신국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뉴스타파는 수신국으로까지 취재를 확장했고, 덴마크의 탐사보도 매체 프리헤스브레베트와 협업했다.
사진 : 취재진이 입수한 문서 3000쪽은 주로 덴마크 입양 기관인 어답션 센터와 댄어답트가 한국 협약 기관인 한국사회봉사회 및 홀트아동복지회와 주고받은 서신이다. 어답션센터, 댄어답트의 내부 문서도 있다.
해외입양 민간 기관의 아동 송출을 통한 돈벌이 문제는 그간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채 수십년 동안 의혹만 제기돼 왔다. 해외입양과 관련해 입양기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최근의 법원 판결(지난 5월)은 ‘입양 기관이 법이 정한 기준 이상으로 과도하게 수익을 벌어들였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런 가운데 민간 입양 기관이 실제 입양 사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등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기관 내부 문서 수천 쪽의 내용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아이를 주문했다
취재진이 입수해 분석한 문서에는 기관들이 주고받은 노골적인 대화가 여럿 나온다. 덴마크가 한국 아동 입양을 갓 시작했던 시기인 1970년 1월, 덴마크 기관인 어답션 센터는 한국사회봉사회에 ‘한국 아동에 대한 덴마크 가족의 희망’ 리스트를 담은 서신을 보낸다. 이 서신에는 덴마크가 어떤 한국 아동을 원하는지 즉 성별은 무엇인지, 나이는 어떤지, 인종은 무엇인지가 나열되어 있다. 0세에서 2세, 여자 아이, 한국-흑인 혼혈이거나 한국인을 원한다는 식이다.
사진 : 덴마크 기관이 한국 기관에 보낸 서신. 원하는 아동의 정보가 나열되어 있다.
기관들은 매달 몇 명의 한국 아동을 덴마크로 보내겠다는 협약도 맺었다. 1971년 3월, 한국사회봉사회와 어답션 센터는 한 달에 10명씩 덴마크로 아이를 보내겠다고 합의했다. 그에 앞서 어답션 센터는 덴마크에서 아이를 원하는 부모가 많으니 한국사회봉사회가 10명의 아이를 보내주길 희망한다는 식의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가정이 필요한 아이가 몇 명이 있으니 양부모를 찾아달라는 게 아니라 아이를 필요로 하는 가정이 있으니, 그에 맞춰 아이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아동의 복지가 목적이 아니라 해외입양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동의 인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덴마크 기관은 자녀가 아니라 가사 도우미로 고용할 아동을 한국에서 찾기도 했다. 1971년, 어답션 센터는 한국사회봉사회에 “한 가족이 17세에서 20세 사이의 젊은 가사 도우미를 찾고 있는데 한국사회봉사회에서 찾아줄 수 있느냐”는 서신을 보냈다. 그러면서 “찾게 되면 그 아이에게 ‘가족 구성원’이라는 지위와, 합리적인 급여를 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동 복지를 위한 입양 사업을 하는 기관들이 사실상 인력 송출 사업 관련 서신을 주고 받은 것이다.
사진 : 덴마크 입양 기관 어답션센터가 한국사회봉사회에 보낸 서신. 한국 아동 입양 사업을 하는 기관들이 인력 송출 사업이나 마찬가지인 내용의 서신을 주고 받았다.
문서를 함께 검토한 피터 뮐러(Peter Møller) DKRG(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이하 DKRG) 대표는 “이런 비유는 유감이지만, (당시의 입양은) 피자 한 판을 주문하고 그 위에 어떤 토핑이 들어가면 좋을지를 주문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한국 아동을 덴마크에 공급한 한국 기관은 그에 대한 대가로 입양 수수료를 받았다. 한국 기관은 덴마크 기관에 은행 계좌를 보내며 수수료를 송금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이 직접적으로 아동 송출에 대한 대가로 돈을 요구했던 흔적도 나온다. 1990년 덴마크 기관 어답션 센터가 한국사회봉사회 관계자와 통화한 내용을 정리한 문서에는 덴마크가 더 많은 한국 아동의 입양을 요구하자 한국사회봉사회 측에서 “더 많은 입양 케이스를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던 내용이 그대로 적혀있다.
사진 :1990년 덴마크 기관 어답션 센터의 내부 문서. 한국사회봉사회와의 전화 통화 내역을 정리해놓은 문서다. 한국 측에서 더 많은 아동을 덴마크에서 입양하길 원하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던 흔적이다.
온갖 명목의 돈을 한국으로…심지어 금전 대여까지
한국 입양 기관은 아이 송출을 대가로 덴마크로부터 각종 금전 지원을 받았다. 덴마크 기관이 한국 기관에 지불한 건 입양 수수료 뿐만이 아니었다. 취재진은 다량의 서신 에서 덴마크 기관 어답션 센터가 한국사회봉사회에 그야말로 온갖 명목의 돈과 물품을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 금전 기부부터, 한국사회봉사회의 요청에 따른 신축 건물 공사 물품(펌프, 기름 버너), 타자기, 차량 등이다.
어답션 센터는 한국사회봉사회에 최소 두 차례 이상 차량을 기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1980년 7월, 어답션센터와 한국사회봉사회의 대화 내용에는 “어답션 센터가 이전에 기부했던 차를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어답션 센터는 “새로운 차를 기부하기로 합의했다. 토요타 승합차를 생각하고 있다. 가격은 6,000달러 정도”라는 서신을 한국사회봉사회로 보냈다.
이밖에 의료 장비, 병동 기부금, 월별 기부금, 병원 운영비, 청소년 수련시설 기부금, 자매 기관 기부금, 일반적인 한국사회봉사회의 운영을 위한 기부 등, 한국사회봉사회는 갖가지 명목의 돈을 받았다.
심지어 덴마크 어답션 센터는 한국사회봉사회에 금전 대여도 여러 건 해줬다. 이중에는 상환 의무가 없는 대여도 있었다. 어답션센터는 1977년 한국사회봉사회에 미화 100,000달러를 빌려줬다. 1990년대 들어 한국사회봉사회와 어답션 센터 간에는 이 금전 대여 건의 상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오갔는데, 어답션 센터는 한국사회봉사회에 “이 대여는 갚을 필요가 없는 돈”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금전 대여로 위장한 돈 지원이라는 것이다. 당시 100,000달러는 현재 가치로는 약 4억 5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덴마크 한인 입양인 말레네 베스터고르 씨는 이처럼 덴마크 기관이 관대하게 한국 기관에 각종 금전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배경에 대해 “덴마크 기관이 필요한 만큼 아이들을 받을 수 있도록 확실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입양 조작 기관에까지 기부
입양 문서 3000쪽을 분석하다보면, 덴마크 기관의 관대한 기부가 결과적으로 한국 기관의 조작 입양까지도 도왔다는 황당한 사실에 이르게 된다. 1973년 덴마크 기관 어답션 센터는 한국사회봉사회에 미국 달러로 8,000달러를 기부하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한국사회봉사회는 8,000달러 중 3,000달러는 한국사회봉사회의 신축 건물에 기부하고, 나머지는 부산의 남광보육원과 수원의 한 시설에 기부해달라고 제안했다.
부산의 남광보육원은 조작된 해외입양 서류에 등장하는 보육원이다. 한국사회봉사회는 서울에서 태어난 미혼모의 아기를 해외로 입양 보내면서 ‘고아 호적’을 허위로 꾸며냈고 아기의 출생지를 부산으로 바꿔치기 했다. 그리고 부산의 남광보육원을 거쳐 한국사회봉사회 시설로 들어왔다는 배경을 거짓으로 꾸며낸 바 있다.
이 조작 입양 사례의 당사자인 덴마크-한인 입양인 요아킴 베른(Joakim Bern) 씨는 “덴마크와 한국에서 모두 이 기부에 관여했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된다. 이게 우리를 단지 고아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걸 그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도 안 된다. 정말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입양 기관들은 여전히 함구
뉴스타파는 해외입양 관련 보도를 시작한 이후, 여러 차례 입양 기관들의 해명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입양 기관들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봉사회는 취재진의 서면 질의에도, 대면 인터뷰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당시 덴마크 입양 기관 어답션 센터, 현재의 DIA에도 이메일을 보내고 대면 인터뷰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DIA는 이번 문서 내용 관련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의에는 “어답션 센터는 2015년에 입양을 중단했고 DIA는 그 후로 기록물을 넘겨받은 것”이라며 “2015년 이전의 일은 관계 당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피터 뮐러 DKRG 대표가 뉴스타파와 인터뷰 하고 있다.
피터 뮐러 DKRG 대표는 이 같은 입양 기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덴마크 입양 기관 DIA는 당연히 책임이 있다. 만약 내가 내일 이름을 피터에서 알렉산더로 바꾼다고 해도 나는 피터라는 이름으로 했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DIA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피터 대표는 한국 입양 기관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번 문서에 대해 “의심의 여지 없는 스모킹 건”이라며 “입양 기관들에게 당신들이 어느 쪽에 설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며 “진실이 아닌 것들을 계속 말하는 쪽이 있고, 반대로 진실을 얘기하는 역사의 옳은 방향에 서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린 당신들이 입양 기관으로서 뭘 했는지 알고 있다. 그걸 직접 밝혀라. 아니면 우리가 진실을 끄집어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