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그렇다면 법원은 공소기각을 준비해야 한다
2024년 10월 28일 17시 17분
국정원 간첩증거 조작사건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인 위조 문서인 유우성 씨 출입경기록 등을 만들어 국정원에 넘긴 제 2의 협조자가 확인됐다. 이 위조 피의자는 중국 국적의 60살 김 모 씨다. 검찰은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중국과의 사법공조 과정에서 김 씨의 구체적인 신원 등을 중국 측에 제공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이 위조한 3건의 문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문서 2건의 위조 경위를 잘 알고 있는 김 씨는 다른 문서를 위조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61살 김원하 씨와는 별개의 인물로 그동안 검찰 발표에서는 성명불상자로만 언급됐었다.
서울중앙지검 증거위조 수사팀(팀장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은 최근 민변 측이 고발한 사건에 대한 불기소 결정서에서 국정원 김보현 과장의 진술을 통해 54년생 김 모 씨(중국명: 찐00)의 인적사항을 특정했으며, 날조한 허룽시 출입경기록을 증거로 제출한 혐의로 기소 중지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4월 민변 측이 고발했던 ‘국가보안법상 무고 날조’ 혐의 그대로 김 씨에 대해 ‘입국시 통보’와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다. 최근 검찰이 변경한 공소장에 따르면 김 씨는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유우성 씨 출입경기록과 발급 여부를 확인하는 회신을 위조해 국정원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해 10월 말 유 씨 출입경기록 실제 발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검찰이 외교부를 통해 허룽시 공안국으로 보낸 공문 팩스 역시 김 씨가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사전에 김 씨에게 팩스 발송 시간을 알려줘 허룽시 공안국 내부 책임자에게 공문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검찰 공소사실이 사실이라면 김 씨는 허룽시 공안국 내부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검찰 공소내용과는 달리 공안국 내부에서 협조자 김 씨가 빼돌렸다는 팩스는 지난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허룽시 공안국 담당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검찰은 국정원 김 과장의 진술을 통해 제2의 협조자 김 씨를 특정했다면서도 김 씨가 어떻게 문서를 위조하고 빼돌렸는지 등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 과장 등 국정원 소속 피고인들의 변호인단은 “검찰이 추정으로 공소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본다"며 당시 뉴스타파 보도를 법정에 제출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뉴스타파가 협조자 김 씨가 허룽시 공안국 내 직원인지 확인해 본 결과 허룽시 공안국 관계자는 그런 사람은 없다고 답했다.
허룽시 공안국에는 직원이 20명 가량 있으나 60살까지 일하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허룽시 공안국 명의의 위조 문서가 형식과 관인이 지나치게 허술해 공안국 내부인이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 위조를 했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검찰이 국정원 직원의 진술을 통해 특정했다는 김 씨가 실존하는 인물인지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증거조작 수사팀 관계자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확인했다”고 답했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밝히지 않았다.
특히 검찰은 김 씨가 중국에 있기 때문에 신병 확보가 어렵더라도 중국 당국의 사법공조 협조를 받아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0년에 발효된 한중 형사사법공조 조약에는 상대 국가의 동의가 있다면, 사법 관계자를 파견해 증거취득 대상자를 직접 신문하게 할 수도 있다고 돼 있다.
▲ 한중 형사사법공조 조약 중 증거의 취득 부분
이미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유우성 씨 관련 중국 문서 위조 사실을 통보하면서 한국 측이 범죄자의 정보를 제공하면 처벌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형사사법공조 과정에서 직접 중국을 방문하고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 받으며 국정원이 제공한 3건의 문서가 모두 위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재확인 받았지만 정작 위조 과정을 잘 알고 있는 국정원 협조자 김 씨에 대한 정보는 제대로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출입경기록 입수자 인적사항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중국에서 회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검찰이 중국에 보낸 사법공조 요청서에는 출입경기록 위조 관련 ‘성명불상자'라고 기재했을 뿐, 김 씨의 나이와 이름 등의 구체적인 인적 사항은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중국 당국은 지난 5월에 보낸 사법공조 회신을 통해 ‘한국에서 관련자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주면 조사하겠다'는 의사를 재차 전했다. 반대로 검찰은 협조자 김 씨가 문서를 위조해 국정원에 전달한 경위보다 유우성 씨의 진본 문서 발급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자세하게 물으며 더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미 유우성 씨 사건 담당 검사들에 대해 ‘제식구 봐주기’식 결론을 낸 검찰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제2의 협조자 김 씨에 대한 수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 유우성 씨 항소심을 담당했던 이문성 (왼쪽), 이시원(오른쪽) 부장검사
실제 현재 진행 중인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재판 과정에서 유우성 씨 사건 담당 검사가 거액이 들더라도 유 씨 관련 증거를 구해오라고 국정원에 지시했다는 진술이 새롭게 나오는 등 증거 위조 과정에서 검사들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다시 증폭되고 있다.
결국 특검을 통한 재수사가 유일한 해결책이란 여론이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 남매간첩사건 관련 검찰의 사실조회서도 조작의혹 제기돼(2013.12.20)
- 검찰 ‘출입경기록’ 위조 뒤늦게 시인…“날조죄 적용해야”(2014.6.24)
- “검사가 오천만원 들더라도 증거 입수 추진 지시"(201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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