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독립성은 역대 모든 정부에서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헌법상 독립기관이지만 대통령 소속으로 돼 있다는 이중성과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의 독립성은 민주화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과 통계 조작 의혹 등 전 정부 비위를 파헤치기 위한 감사,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에 대한 표적 감사 등 권력의 입맛에 맞는 감사를 전방위적이고 노골적으로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독립성과 편향성 논란에 휩싸인 감사원의 중심에는 이른바 '실세'라고 불리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있습니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를 뒤흔들었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한 감사를 주도한 뒤 좌천됐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한꺼번에 두 직급 승진해 사무총장이 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 인물입니다. 거침없는 '안하무인'식 답변으로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고 지난해 10월에는 대통령실 이관섭 국정기획 수석에게 문자 메시지로 직접 보고하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죠. 

뉴스타파는 유병호 사무총장이 직접 작성한 감사원 내부 문건을 입수했습니다. 유병호 사무총장이 감사원 공공기관 감사국장이었던 지난 2020년부터 21년 사이 작성한 이른바 '공감노트'라는 문건인데요, 일종의 '지휘 서신'에 해당하는 문건입니다. '주요 공감 및 논의 사항' 등의 제목이 달린 문건 22건이고, 다 합치면 70여 쪽 분량입니다.  

지난 2019년 10월 감사원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당초 최재형 감사원장은 2020년 4.15 총선 전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잘못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려 했죠. 하지만 감사위원들의 반대로 감사결과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자 감사 책임자인 공공기관 감사국장 자리에 유병호 씨를 임명했습니다.

총선 닷새 뒤인 2020년 4월 20일 '구원투수'로 투입된 유병호 국장은 기존의 감사 방향과는 전혀 다른 새판을 짰습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유병호 문건에는 바로 이 '새판 짜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문건에서 유병호 국장은 월성 원전 감사팀을 '부당개입팀'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는 "백운규 산업자원통산부 장관이 직권을 남용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 부당 개입했다"는 감사의 결론을 미리 정해둔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방증입니다. 2010년 5월 21일 유 국장은 이 '부당개입팀'에게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을 전달하겠음"이라며 감사의 방향을 지시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이튿날 문건에 이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이 무엇인지 자세히 나옵니다. 

유병호 국장의 이런 지시 때문인지, 감사 과정에서 유 국장이 그린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에 맞지 않는 산업부의 소명은 모두 무시됐습니다. 감사의 초점도 오로지 경제성 평가에만 맞춰졌습니다. 감사를 받은 산업부 관계자들과 한수원 이사들은 감사원 직원들이 미리 정해놓은 결론에 맞는 진술을 강요당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5개월 뒤인 2020년 10월 감사원은 유병호 국장이 '부당개입팀'에 전달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과 정확히 일치하는 감사 결과보고서를 내놨습니다. 

한 달 뒤인 2020년 11월 시민단체들은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유병호 당시 공공기관 감사 국장을 직권 남용과 강요죄 등으로 고발했습니다. 감사 범위를 부당하게 경제성에만 국한시킨데다 그 경제성 평가마저 객관적이지 못했고, 사전에 만든 결론과 시나리오에 맞춰 문답서를 각색하고 날인을 강요했다는 이유에섭니다. 그러나 검찰은 2년이 넘도록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타파가 보도하는 '유병호 문건'은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입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유병호 문건'에는 월성 원전 감사에 대한 구체적 내용 외에도 일상적인 업무 지시와 직원들에 대한 당부의 말 등도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이를 통해 감사 업무에 대한 유병호 사무총장의 태도와 철학을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유병호 사무총장이 직접 작성한 문건을 보면 그는 감사 업무를 사냥이나 전투로, 감사 대상은 사냥감 혹은 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철학'을 교육받아서일까요? 실제로 유병호 국장의 지휘를 받던 월성원전 감사팀은 "호통과 윽박지르기를 반복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으며 감사원이 만든 시나리오에 맞춰 답변할 것을 종용했다"고 산업부 문신학 국장은 증언했습니다. 심지어 민간인 신분이었던 김해창 전 한수원 사외이사 역시 "유치장에 끌려간 죄수 취급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유병호 국장 체제에서는 "인권을 존중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도록 한 감사사무 처리규칙 제 6조나 "피감사자에게 위압감이나 불쾌감을 줘서는 안된다"는 감사 공무원 행동강령 24조가 무의미해진 듯합니다.

이에 더해 유병호 사무총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보낸 '지휘 서신'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표로 선출된 이준석 전 국민의 힘 당대표에 대해 '괜찮은 모 젊은이', '신선한 돌풍'이라고 치켜세우며 자신의 친 국민의힘 성향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번 정부 들어 감사원이 보이고 있는 여러 행태는 유병호 사무총장의 이런 특징, 즉 감사를 사냥이나 전투로 규정하는 태도와 노골적인 정치적 성향이 결합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대통령과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장들의 리더십은 묘하게 닮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뉴스타파가 보도한 '유병호 문건'을 보면 비록 기관장은 아니지만 유병호 사무총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닮은 점이 참 많아 보입니다. 

자기 편이 아닌 상대는 무조건 적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적 세계관과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상대를 사냥감처럼 몰아세워 말살시킬 수 있다는 비뚤어진 권력관, 수사 대상이나 감사 대상을 겁박해 원하는 진실을 얼마든지 주조해낼 수 있다는 위험한 자신감 등이 바로 그 닮은 점입니다. 이런 공통점은 두 사람이 검찰과 감사원이라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 기고나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는 동안 생겨나 공유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병호 사무총장의 감사원이 벌이고 있는 여러 무리한 감사들과 윤석열 사단의 검사들이 수사하고 있는 여러 무리한 정치적 사건들이 겹쳐보이는 건 그래서일까요? 

그러나 누군가 뉴스타파에 제보한 감사원 내부 문건이 유병호 표 '사전 각본 감사'의 실체를 드러낸 것처럼, 윤석열 사단의 검사들이 벌이고 있는 여러 정치적 수사의 진실도 시간이 걸릴 뿐 언젠가는 드러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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