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 맞추기 원전 감사,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 있었다

2023년 02월 23일 20시 00분

감사원은 지난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가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 위해 경제성을 부당하게 축소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야당과 언론은 멀쩡한 원전을 가동 중단시켜 수천억 원의 국가적 손실을 입혔다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난했다. 검찰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정재훈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업무상 배임 혐의가 있다며 재판에 넘겼다. 또 산업부 공무원들은 월성 원전 관련 자료를 무단 삭제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감사원 감사 결과로 인한 후폭풍이다. 
그런데 이 같은 감사 결과가 사전에 기획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에 맞춰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감사원의 내부 문건이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문제의 문건 작성자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윤석렬 정부 출범 이후 한꺼번에 2계급 승진했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 마치 현 정부의 입맛에 맞춘 듯한 감사를 주도한 인물이다. 

뉴스타파, '유병호 문건' 70여 쪽 입수 

뉴스타파는 유병호 사무총장이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재직했던 2020년과 2021년 사이, 그가 직접 작성한 이른바 '유병호 문건'을 입수했다. 
'주요 공감 및 논의사항' 등의 제목이 달린 이들 문건은 총 22개로, 70여 쪽 분량이다. 각 문건에는 작성 날짜와 함께 '전원 공유' 또는 '월성팀만' 등 문건을 공유할 대상자가 별도 지정됐다. 또 '감사·지휘 일반'과 '일반사항' 그리고 '세상 사람들 생각 관련 사항(하하---아 코너, 쉬어가는 코너)' 등 세 가지 항목으로 나뉘었다.
이 가운데 '감사·지휘 일반'은 감사 사무와 관련해 당시 유병호 국장의 업무 지시 사항이 담겼다. '일반 사항'에는 별도의 내용을 기술돼 있지 않았고, '세상 사람들 생각 관련 사항(하하---아 코너, 쉬어가는 코너)'에는 유병호 국장의 주관적인 판단 또는 주장 등이 실렸다.   
예를 들어 2020년 7월 30일 작성된 문건의 '세상 사람들 생각 관련 사항(하하---아 코너, 쉬어가는 코너)'에는 '김모 의원의 악의적 질의(왜곡 보도) 관련'이라는 제목의 해명이 담겨 있다. 하루 전인 7월 29일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유병호 국장의 응급실 의료진 폭행 사건을 언급하며 징계 여부를 질의한 것에 대해 소명한 것이다.    
문건에서 유병호 사무총장은 '지(김종민 의원)가 먼저 물어보았으니까... 나도'라며 1인칭 시점으로 당시 사건을 해명했다. 문건의 작성자가 유병호 사무총장이라는 명확한 증거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2019년 1월 응급실 간호사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지만, 이후 검찰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유병호가 그린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은

유병호 문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 중 하나는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이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감사원이 처음부터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전 기획한 시나리오에 끼워 맞추기 위해 강압적인 감사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유병호 당시 공공기관감사국장을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지만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확보한 '유병호 문건'에는 사전 시나리오설을 입증할 수 있는 정황이 담겨 있다.  
2020년 5월 11일 유병호 당시 국장은 월성팀을 따로 지목해 "감사 결과 보고서의 새 거푸집에 쇳물은 다 부었는지요"라고 물으며, 현재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요구했다. 유병호 국장이 주도하는 월성 1호기에 대한 감사원의 재감사가 이 때쯤 본격화됐음을 의미한다.  
열흘 뒤인 5월 21일 작성된 문건에서 유병호 국장은 월성 원전 재감사를 위해 새로 구성한 팀을 아예 '부당개입팀'이라고 불렀다. 유병호 국장은 부당개입팀에게 "오늘 직접 사무실로 가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을 전달하겠다"며, "이 자료는 월성팀 외에는 보안 유지 엄수"라고 강조했다. 월성 원전 재감사에 대한 사전 시나리오를 전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시 유병호 국장은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을 전달하는 이유도 자세히 설명했다. 유병호 국장은 자신이 전달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이 월성 1호기 재감사의 '중앙 뼈대와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과장과 각 팀장과 팀원들도 공유해야 우리가 큰 길을 잃지 않을 것임 둥둥둥...!
- 이 감사가 갈 길에 중앙 뼈대와 아킬레스 건이 될 것이고, 모두가 헷갈려 하고 있을 것인데... 지금 감사관들이 공유하지 못하면 나중에 난관에 봉착할 사안임.
- 그래서 내가 직접 설명해주겠고.

2020년 5월 21일 작성된 '유병호 문건'에서 발췌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튿날 작성된 문건에 들어있다. 유병호 국장은 '스토리'라는 부제목을 달고, "백은 직접 또는 부하 직원들을 통해 정과 한수원 관계자들을 압박해 즉시 가동 중단을 관철시키고, 정 등 한수원 관계자는 직권남용의 상대방이기도 하고, 이사들을 적극적으로 기망하여 즉시 가동 중지 안건을 통과시킴"이라고 썼다.  
여기에서 언급된 '백'은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며, '정'은 정재훈 당시 한수원 사장이다.
즉, 유병호 국장이 그린 스토리라 인과 큰 그림은 백운규 장관을 직권 남용으로, 정재훈 사장은 업무상 배임죄로 몰고 가겠다는 뜻이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020년 5월 22일 작성한 문건에는 백운규 산업부 장관을 직권 남용 혐의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옭아매도록 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이 들어있다. 
유병호 국장이 각 과장과 팀장, 팀원들에게 전달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은 5개월 뒤 발표된 감사원의 결론과 정확히 일치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유병호 당시 국장에 대한 고발 사건을 대리한 김영희 변호사는 "유병호 국장이 결론을 먼저 제시하고 여기에 맞춰서 감사를 하도록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직권 남용에 해당된다. 중요한 증거가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병호, 증거 없이 월성 1호기 감사 결론 미리 정해

유병호 국장이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을 부당개입팀에 전달한 시점은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부임한 지 한 달 만이다. 비감사 부서로 밀려났던 유병호 국장은 2020년 4월 20일 공공기관감사국장에 임명됐고, 과거 자신과 함께 근무한 전력이 있는 부하 직원들을 끌어모아 5월 초·중순경 월성 원전 감사팀을 대거 보강했다.
전 감사원 공무원 A씨는 "제가 알기로는 본인(유병호 당시 국장)이 감사를 한 번 해 보겠다고 제안을 했고,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이 일을 맡겼다"고 말했다.  
당초 최재형 감사원장은 2020년 4·15 총선 전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이 잘못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하려 했다. 이 때문에 감사원 사무처는 2020년 4월 초 산업부와 한수원에 대한 감사를 마무리 짓고,  감사위원회에 감사 결과 보고서를 상정했다. 
그러나 감사위원들의 반대로 감사 결과 보고서 채택이 무산되자, 최재형 감사원장은 유병호 국장을 공공기관감사국장에 앉힌 뒤 월성 1호기에 대한 재감사를 지시했다. 
새로 부임한 유병호 국장은 기존 감사 방향과는 전혀 다른 새 판을 짰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이 직권을 남용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 부당 개입했고,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경제성을 조작해 업무상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유병호 국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이 같은 '시나리오'를 전달할 당시만 해도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0년 5월 22일 작성된 '스토리 라인 및 큰 그림 전달'이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유병호 국장은 "백과 정을 공범으로 구성하는 길은 채증상 매우 험한 길이니 잘 참고해서 증거가 나오는 대로 처리하는 게 정석"이라고 말했다. '채증' 즉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감사의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뉴스타파는 감사원에 취재 내용을 알리고 해명과 반론을 요청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답변을 거부했다.

시나리오에 꿰맞추기 위해 감사 범위 축소

 2020년 10월 감사원이 월성 1호기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자, 시민단체들은 반발했다. 에너지전환포럼 등은 월성 1호기 폐쇄 결정 당시 핵심 검토 사안인 안전성과 주민수용성 등을 감사 대상에서 제외했고, 감사원이 사전 시나리오에 어긋나는 진술은 문답서에 제외하는 등의 방법으로 진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수원은 안전성과 경제성,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 등을 종합 검토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의결했다. 이 같은 사실은 한수원 이사회 회의록에 기록돼 있다.  
한수원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와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커졌고, 문재인 정부가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로 의결한 점을 감안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울행정법원은 2012년 설계수명이 완료된 월성 1호기의 가동을 2022년까지 연장한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결정이 절차상 문제 등으로 잘못됐다며 수명 연장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 때문에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결정이 적절했는지 판단하려면, 당시 한수원 이사회가 검토한 운영환경과 안전성, 지역수용성, 경제성 등 4가지 항목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감사원은 감사 범위를 오직 경제성에만 국한시켰다. 
여기에도 유병호 국장의 지시가 있었다. 유 국장은 2020년 7월 29일 '월성 GO-STOP 2차'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안전성과 주민 수용성은 국회 감사 요구의 내용과 취지에 맞지 않아 감사 범위에서 제외했다는 논지로 정리하고 땡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결과 보고서에 적시된 국회의 주문 요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및 한수원 이사회 이사들의 배임 행위에 대한 감사'로 돼 있다. 감사 범위를 경제성에만 국한해야 한다는 국회의 주문은 없었다. 

입맛에 맞는 자료만 취사 선택

유병호 국장은 산업부로 하여금 한수원에 손실 보전을 하도록 통보하는 문제를 감사결과 보고서에 넣지 말라고 지시했다. '가동중단을 정당화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당초 산업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보전해줄 수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손실 보전이 이뤄질 경우, 정재훈 한수원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협의로 옭아맬 수 없고, 백운규 장관에게도 직권 남용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게 된다.
이 경우 유병호 국장이 월성 1호기 감사팀에 전달한 '스토리 라인과 큰 그림'이 무산된다. 이 때문에 감사원은 제 입맛에 맞는 자료만 취사 선택해 산업부가 한수원에 손실을 보전해 줄 의사가 없었다며 사실을 왜곡했다.
사진 왼쪽은 2018년 6월 2일 작성된 산업부 내부 문서에 삽입된 표이고, 오른쪽은 산업부가 2018년 6월 20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참고자료로 제출한 공식 문서에  첨부한 표다. 
감사원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2018년 6월 2일 작성한 산업부 내부 문서다. 감사원은 이 문서의 비고에 '경제성이 없어 조기 폐쇄'라고 쓰여있고, 비용보전 금액이 모두 '0'으로 표시된 것을 이용해, "경제성이 없어 원전을 조기 폐쇄할 경우 비용보전 계획도 없었다"는 감사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산업부가 2018년 6월 20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참고자료로 공식 제출한 동일한 형식의 표에는 예상 보전 금액이 '0'이 아니라 문장 부호인 대시(-)로 표기돼 있다. 게다가 월성 1호기 관련 비용보전 소요는 미정이라고 적혀있다.   
산업부는 또 월성 1호기의 잔존 가치가 2019년 1월 현재 최대 5,622억 원이라며 중기재정 계획에 관련 예산을 반영해 달라고 신청하기도 했다. 감사원의 주장처럼 비용보전 계획이 없었다면 산업부는 예산 반영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  
이 같은 사실은 산업부 문신학 국장이 제출한 소명서를 통해 감사원에 전달됐다. 소명서가 작성된 날짜는 2020년 9월 14일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하기 한 달 전이다. 
하지만 유병호 국장은 백운규 장관을 'b쓰레기', 문신학 국장을 'm걸레'라고 모욕하고, 소명 내용을 허위 진술이라고 단정했다.  
자신이 만든 시나리오대로 월성 원전 재감사를 지휘하고, 시나리오에 맞지 않은 사실은 제외한 유병호 사무총장. 시민단체들은 2020년 11월 최재형 감사원장과 함께 그를 고발했지만, 검찰은 2년이 지나도록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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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김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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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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