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국가정보원과 검찰, 국세청, 경찰청과 함께 5대 권력기관으로 꼽힌다. 행정부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들에게 '저승사자'로 불릴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반면 감사원을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감사원은 직원들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자체 규정을 두고 있다. 감사사무 처리규칙 제 6조는 관계자 등의 인권을 존중하고 적법 절차를 준수하도록 했다. 감사원 공무원 행동강령 제24조는 피감사자에게 위압감이나 불쾌감을 줘서도 안 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인권 존중과 권한 남용을 막도록 한 감사의 기본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감사원과 신용문객잔의 주방장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과거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만든 업무 지시 문건, 이른바 '유병호 문건에는 "신용문객잔의 주방장이 칼 써듯이 조사하소...다다다다다...!"라는 대목이 있다.
신용문객잔은 30년 전 개봉한 홍콩 무협영화다. 이 영화에서 주방장이 칼로 어떤 것을 써는 장면은 모두 3번 등장한다. 인육으로 만두를 빚기 위해 시신을 훼손하는 장면이 두 번 나오고, 나머지 하나는 뼈만 남기고 적의 살을 도려내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다.
감사원법 제20조는 감사원의 임무에 대해 '행정 운영의 개선과 향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영화 속 주방장처럼 만두 즉, 성과를 내기 위해 시신을 훼손하고 적의 생살을 도려내는 일이 아니다.
뉴스타파는 감사원에 공문을 보내 유병호 사무총장이 어떤 생각으로 이 같은 업무 지시를 내렸는지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답변을 거부했다.
감사원 감사는 전투 또는 사냥
뉴스타파가 확보한 '유병호 문건'에는 감사 업무를 사냥이나 전투로 비유한 사례가 자주 등장한다. 2020년 7월 월성 1호기 감사 당시 유병호 사무총장은 "고래나 호랑이, 사자를 사냥하는 게 진짜 일"이라고 강조했다.
앞선 2020년 5월에는 감사인 즉, 감사원 공무원으로서 살아가는 원칙을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맹호처럼, 정 안되면 들개처럼'이다. 맹호는 사냥감을 일격에 물어 죽일 수 있는 사나운 호랑이를 말하고, 들개는 무리지어 다니며 먹잇감이 지칠 때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방법으로 사냥한다.
시민단체들이 감사원의 월성 1호기 감사와 관련해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유병호 당시 공공기관감사국장을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대리한 김영희 변호사는 "사냥이라는 것은 잡아 죽여 먹잇감으로 삼는 것이다. 감사를 하는데 상대방을 죽이고 먹잇감으로 삼겠다고 선포했는데 어떻게 공정하고 중립적인 감사가 될 수 있겠냐"고 말했다.
2020년 7월 작성된 유병호 문건에는 '大 전투 중에 전사나 무사들한테 전투식량 내놔라 하든가. 적에게 우리 식구들 뭐 잘못하드노 하고 물어보는 것은 금물'이라고 적혀있다.
유병호 총장은 월성 1호기 감사를 '大 전투'로, 감사대상 기관을 '적'으로 규정했다. 또 감사원 공무원을 적과 싸우는 '전사' 또는 '무사'로 비유했다.
당시 감사원 사무처는 월성 1호기 감사를 담당한 공무원들이 허위로 출장비를 받아 간 사실을 적발해 이를 반환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유병호 총장은 출장비를 횡령한 직원들을 처벌하기는커녕 '전투 식량' 운운하며 제 식구를 감쌌다.
인권 침해와 강압 감사로 이어져
월성 1호기 감사를 '전투와 사냥'으로 몰고 간 유병호 사무총장의 업무 스타일은 인권침해와 강압 감사로 이어졌다.
문신학 전 산업통상자원부 국장은 2020년 9월 감사원에 제출한 소명서에서 "2020년 5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월성 1호기 추가 감사는 조기 폐쇄가 잘못됐다는 전제 하에 담당자 징계를 위한 감사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문신학 국장은 "감사원 공무원들이 호통과 윽박지르기를 반복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언급하며 감사원이 만든 시나리오에 맞춰 답변할 것을 종용·압박·강요당했다"고 덧붙였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당시 한국수력원자력 사외이사였던 김해창 경성대 교수는 마치 유치장에 끌려간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해창 교수는 "2~3명의 조사관들이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저를 보고 '당신은 속았다. 속은 줄도 모르느냐'는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했다. 마치 유치장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 조금 심하게 말하면 5공화국 때 보안대가 했던 취조식의 조사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국회 적대한 유병호, 이준석에게는 '신선한 돌풍' 찬사
유병호 사무총장은 감사원 공무원들을 초식과 육식 동물로 구분하고 자신과 다른 성향을 보인 상급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초식들이 내외부에 똥 싼 비루한 태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이 마을(감사원) 사람 대다수가 힘 좀 쓰는 기관 및 사람에게 굴종적으로 처신했고, 초식들은 굴종(노예짓거리)를 정무적 감각이라고 뽐냈다"고 말했다.
유병호 사무총장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를 모독하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유병호 문건에는 한 여성 국회의원을 '강건너 어떤 ㅇㅈㅁ(아줌마)'라고 비하하고, 국회의 질의에 답하려고 하는 자세 자체가 아군에 대한 노략질이라고 적혀있다.
반면, 자신의 성과는 과대 포장했다. 유병호 문건에는 2018년 유병호 사무총장이 지방행정1국장 재직 당시 해결했다는 '상어급'이상 사건 12건이 나열돼 있다. 뉴스타파는 이 가운데 서울시장의 대형 인사상 월권 행위를 규명했다는 유병호 총장의 주장을 검증했다.
이 사건은 서울교통공사가 비정규직 직원 1,285명을 정규직화한 것을 놓고 2018년 10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권력형 채용 비리 게이트'라고 주장한 것이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감사원에 공익 감사를 청구했고, 감사원은 1년 뒤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이 부당하다는 감사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감사 결과 보고서 어디에도 서울시장이 인사상 월권을 저질렀다는 내용은 없다.
그런가 하면 유병호 사무총장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괜찮은 모 젊은이', '신선한 돌풍'이라고 치켜세우며 부하 직원들에게 이 전 대표를 미화한 신문 칼럼을 소개했다.
감사 업무를 사냥과 전투에 비유하고, 거리낌 없이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낸 유병호 사무총장은 감사원의 실세다. 유병호 문건에서 드러난 그의 언행을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