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는 본인과 배우자는 물론 독립생계를 유지하지 않는 직계 존비속의 재산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재산 신고 내역은 후보자의 도덕성 등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 종류 별로 후보자의 재산 내역은 20일에서 최장 25일간 공개된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투표 당일 0시부터 후보자의 재산 신고 기록은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사라진다. 이 때문에 선거 운동 기간이 지나면 후보자의 재산 신고 내역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같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선거법의 공소 시효인 6개월간 당선자의 재산 내역을 공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는 1년 넘게 선거법 개정을 미루고 있다.
뉴스타파는 올해 지방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를 대상으로 선관위에 신고된 재산과 각급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된 재산을 비교 검증했다. 선관위와 공직자윤리위에 신고된 재산은 원칙적으로 동일해야 한다. 재산 신고 기준일이 2021년 12월 31일 현재로 똑같고, 재산 신고 항목과 가액 산정 방식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증 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올해 6·1 지방선거에서 광역과 기초의원에 출마한 후보자는 6,896명. 이 가운데 1,954명은 현역 지방의원 신분으로 올해 초 각급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재산 내역을 신고했다.
그런데 전체 89.6%인 1,752명은 자신의 재산을 각각 다르게 신고했다. 재산 총액을 동일하게 신고한 후보자는 202명으로 10명중 1명에 불과했다. 575명은 선관위에 신고한 재산이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것보다 많았고, 1,177명은 적었다.
재산이 줄었다고 신고한 후보자 중 경북 상주시의회 강경모 의원의 신고액 차이는 24억 원으로 가장 컸다.
앞서 강경모 의원은 지난해 3월 경북 도내 기초의원 가운데 재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인물로 언론에 회자됐다. 강경모 의원의 재산은 2020년 12월 말 기준 52억 2,469만 원으로 전년도 말(26억 2,007만 원)보다 26억 462만 원 증가했다. 1년새 재산이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은 비상장 주식의 가액 평가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과거 액면가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한 비상장 주식의 가액을 2020년부터 실거래가 또는 1주당 당기순이익과 순자산가치 등을 합산해 정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 때문에 강경모 의원이 보유한 비상장 주식의 가액은 종전 17억 9,207만 원에서 41억 1,517만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강경모 의원의 재산은 52억 8,936만 원으로 1년간 6,467만 원 더 늘었다.
그런데 강경모 의원은 올해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재산을 52억 8,936만 원이 아닌 28억 2,904만 원으로 신고했다. 올해 초 본인이 경북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금액보다 24억 6,032만 원 적었다.
재산신고 내역 중 토지와 건물, 본인과 배우자의 예금과, 채무 규모는 똑같았다. 선관위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산 신고 기준일이 2021년 12월 31일 현재로 똑같고, 재산 신고 항목과 가액 산정 방식도 동일하기 때문에 재산 신고액이 달라질 수 없다.
그런데 강경모 의원이 선관위에 제출한 재산 내역에는 1,149만 원의 자녀 예금이 누락됐고, 42억 4,089만 상당의 비상장주식 가액을 17억 9,207만 원으로 축소됐다.
단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 강경모 의원은 지난해와 올해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비상장 주식의 가액을 액면가가 아닌 1주당 평가액으로 신고한 바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관위에 신고하는 비상장 주식의 가액 산정 방식은 공직자윤리위원회와 같다.
그런데 강경모 의원은 비상장 주식을 액면가로 신고, 자신과 배우자의 재산 규모를 절반 수준으로 축소했다.
뉴스타파는 상주시 선관위에 이 같은 취재 내용을 알렸고, 선관위는 조사에 착수했다. 이인준 상주시선관위 사무국장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어 강경모 의원에게 자료 제출 요구 공문을 보냈다"며 "당선 목적으로 고의로 (재산을) 누락했다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선을 목적으로 허위로 재산 신고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강경모 의원의 재산 신고 내역에는 허위 사실이 또 있었다. 강경모 의원은 본인과 배우자가 태광건설, 태광종합건설, 재경개발 등 비상장법인 3곳의 주식을 보유 중이라고 신고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태광종합건설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회사다. 태광종합건설은 지난 2018년 8월 제이케이건설로 이름이 바뀌었고, 대표이사도 강경모 의원에서 김 모 씨로 변경됐다. 강경모 의원이 상주시의회에 입성한 지 한 달여 만의 변경이다.
강경모 의원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에 당선된 뒤 같은해 7월 1일 현재 기준으로 첫 번째 재산 신고를 한 뒤 각각 2018년말·19년말·20년말·21년말 기준으로 모두 5차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재산을 신고했다. 올해 5월 선관위에 후보자 등록을 하면서 함계 제출한 재산 신고서를 포함하면 모두 6차례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이케이건설의 주식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강경모 의원은 옛 이름인 태광종합건설 시절은 물론 제이케이건설로 이름이 바뀐 후에도 이 회사의 주식을 전량 소유하고 있었다.
뉴스타파는 상주시청 계약정보공개시스템에서 강경모 의원이 제이케이건설 주식 보유 사실을 숨긴 이유를 찾아냈다. 제이케이건설은 강경모 의원의 임기동안 상주시로부터 모두 6억 원 상당의 공사 6건을 수주했다.
지방계약법은 지방의원 본인이 대표이거나 지방의원 본인,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지분이 50% 이상인 법인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영리 목적의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제이케이건설의 대표이사는 지난 2018년 8월 회사 이름을 바꾸면서 강경모 의원에서 김 모 씨로 변경됐다. 하지만 강경모 의원은 제이케이건설 주식 100%를 계속 소유하고 있다. 만약 강경모 의원이 태광종합건설이 아닌 제이케이건설의 주식 보유 현황을 신고했다면 제이케이건설은 상주시와 공사 계약을 맺을 수 없다.
즉 강경모 의원은 상주시로부터 계속 공사를 따내기 위해 이름을 바꾸면서 없어진 태광종합건설 명의로 재산 신고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