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천공이라는 무속인이 대통령 관저 후보지는 물론 국방부 영내를 휘젓고 다녔다는 폭로가 큰 논란이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방부 대변인이었던 부승찬 씨가 재직 시간에 쓴 일기를 정리해 출판한 책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만약 사실이라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심각한 국정 문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천공 관련 의혹 말고도 우리 국방과 안보와 관련해 주목할만한 다른 얘기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을 만나 책에 담지 못한 얘기들을 직접 들어봤습니다.
'졸속 대통령실 이전'이 초래한 안보 공백과 기회 비용
부승찬 전 대변인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3월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 직후 추진된 대통령실 이전 과정의 '무리수'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부 전대변인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 불과 4일 만인 3월 14일, 대통령직 인수 위원회 소속 김용현 청와대이전 TF 부팀장(현 대통령실 경호처장)이 국방부를 찾아 '3월 말까지' 청사를 비워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국방부는 인수위 측에 너무 급박하다고 양해를 부탁했지만 인수위로부터는 어떤 피드백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국방부는 4월 8일부터 이사를 하게 되는데요, 부 대변인은 이날 일기에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썼습니다. 대통령실 이전과 그에 따른 국방부 청사 이전의 전체 과정에 대해서는 "인수위와 소통과정에 어떤 협의도 없었으며 그냥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문제는 대통령실 이전이 '안보'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부 전 대변인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은의 입장이라면 대통령실 이전에 대해 '참 고맙다'는 얘기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용산 대통령실까지 접근한 북한 무인기 사태도 대통령실을 이전하지 않았더라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부 전 대변인은 또 "대통령실의 졸속 이전으로 인해 그동안 한미간에 진행되어 온 용산 미군기지 이전 관련 협의도 전부 어그러지면서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한국 측이 모두 부담하게 됐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이예람 중사 사건 수사 실패 원인은 국방부의 제식구 감싸기"
부승찬 전 대변인의 일기에서 유독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군인들의 죽음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성폭력과 2차 가해로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예람 중사 사건에 관한 것인데요, 부 전 대변인은 자신의 일기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혹은 잘못 알려졌던 사실들을 털어놨습니다. 그의 고백에는 당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군이 보여준 부끄럽고 참혹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부 전 대변인에 따르면, 국방부 조사본부는 "무리하게 입건하면 자칫 우리들이 고소된다"며 책임을 수사 심의위에 넘겼습니다. 수사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만든 국방부 수사심의위원회가 사실상 군사 경찰과 군 검찰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쓰인 것이죠. 국방부 검찰단의 대표적 부실 사례로 꼽히는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 불기소에 대해서는 (전 실장은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첫 수사의 책임자로서 부실 수사와 허위 보고, 부당한 사건 개입 등 여러 비위가 있었지만 국방부 감찰단은 전 실장을 기소하지 못했고 특검 수사를 거친 뒤에야 기소되었습니다. ) "전익수 실장을 실세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부 전 대변인은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의 수사를 가로막는 군 검찰과 사법부의 권력이 마치 '철옹성' 같았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국방부의 제식구 감싸기가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수사의 가장 중요한 실패요인이라는 것이죠.
뉴스타파와 가진 인터뷰에서 부승찬 전 대변인은 이밖에도 문재인 정부의 '남북 관계 중심주의'가 국방과 안보에 미친 영향, 일방적인 한미 관계, 시대에 뒤떨어진 군대 내부 차별을 넘어서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변희수 하사의 죽음 등에 관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놨습니다.
윤석열 시대, 흔들리는 국방과 안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방과 안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중국과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과 긴장에 불을 붙인 건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었습니다. '선제공격'이나 '핵무장' 같은 극단적 언사를 서슴치 않는 윤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매우 위험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단순하고 거친 전략과 언행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해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뉴스타파가 국방부 전 대변인의 기록과 생각을 소개해드린 것은, 단순히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졸속으로 추진된 대통령실 이전이 초래한 안보상의 문제들, 국방과 안보는 흔들리든 말든 정치적 유불리만을 따지는 정체 세력들, 성폭력과 2차 가해가 습관처럼 반복되고 있는 구시대적인 군 문화를 방치한다면 언젠가는 국방과 안보에 구멍이 뚫릴 것이고 우리 모두 그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