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많이 힘들게 하셨던 분이셨어요. 화물차 운전을 하셨는데 사업주한테서 돈을 못 받아오니까 어머니 혼자 미용실 하시면서 저랑 남동생, 2명을 어렵게 키우셨거든요. 화물차 그만두시고 개인택시를 하셨어도 좀 많이, 돈을 많이 못 벌어오시는 편이었죠. 부부싸움도 많이 하셨고...이중훈 / '오송 참사' 희생자 고 이수영 씨 아들
제가 블랙박스 영상을 봤는데, 미호강이 범람해서 지하차도로 들어온 물이 앞창문을 깨고 들어왔어요. 아마 휩쓸려서 밖으로 나간 것 같아요. 또 물살이 세다 보니까 진흙, 펄 이런 게 많이 들어와 있었어요. 아버지는 안에서 발견되셨어요.이중훈 / '오송 참사' 희생자 고 이수영 씨 아들
오빠가 일이 끝나면, 일 끝났다고 전화해 주고, 언제 또 일 나가냐고 물어보면 '언제 간다'고 말해줬어요. 또 제가 '조심해서 일해' 이러면 '그럼 바보야, 내가 널 두고 어디 갈까 봐 그래?' 항상 그렇게 말을 해줬고요. 전화 통화 했을 때는 항상 먼저 사랑한다고 말을 해줬었어요.지상희 / '오송 참사' 희생자 고 지승훈 씨 동생
(블랙박스 영상을 보니까) 어떻게 이렇게 금방 물이 찰 수 있는지... 오빠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돌아가서 일을 못 가게 말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지상희 / '오송 참사' 희생자 고 지승훈 씨 동생
그날이 7월 15일 토요일이었는데 아내가 갑상선 암에 걸려서 3일 후에 수술 날짜를 잡아놨었어요. 저도 사고를 겪었지만, 또 바로 집에 가서 아내를 다음 날에 병원에 입원시켜야 되니까... 그런 것들을 준비하다 보니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아내 수술을 다 끝내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조금 숨을 돌리고 보니까... 저 때문에, 제가 차를 끌고 가면서 혹시 저를 보고 (지하차도로) 따라 들어와서 돌아가신 분이 없을까? 그런 죄책감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계속 눈물도 펑펑나고 '혹시 나 때문에 돌아가신 분이 있었을 거야’'라는 생각이 너무 힘들게 만들었어요.정영석 / '오송 참사' 생존자
'세월호 참사' 10주기, '이태원 참사'도 1주기가 지났고, 2주기도 얼마 안 남았잖아요. 오송 참사는 1년, 2년, 3년, 4년 과연 몇 년 동안 (진상규명 요구를) 해야 될까? 그 사람들이 언제쯤 처벌받을 수 있을까? 저는 그런 생각 때문에 유가족협의회 활동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요.이중훈 / '오송 참사' 희생자 고 이수영 씨 아들
저희가 계속 도청이나 정부 기관에 진상규명 요청하는 것도 힘들고, 검찰 수사를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지치기도 해요. 지금은 저희의 활동을 알아봐 주시는 분이 없지만, 혹시나 알아봐 주신다면 조금이나마 격려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이런 참사가 두 번 다시 발생되지 않게끔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관심과 힘을 주신다면 조금 더 안전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한 걸음 한 걸음 이렇게 가다 보면 좀 더 안전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이중훈 / '오송 참사' 희생자 고 이수영 씨 아들
취재 | 김성수 박상희 홍주환 |
영상취재 | 김기철 김희주 오준식 이상찬 |
편집 | 장주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KCIJ-Newstapa does not accept any advertisement or commercial sponsorship. Individual citizen's voluntary support sustains Korea’s only independent investigative newsroom. You can join our 'Defenders of the Truth'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