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타파] 현대중공업④ 앞에선 임금체불, 뒤에선 채용박람회
2019년 04월 29일 08시 00분
<편집자주> 뉴스타파는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대기업 갑질 사례를 ‘갑질타파’라는 시리즈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공정위 등 감독 당국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현대중공업, 롯데그룹, 현대차그룹, 코레일의 갑질 사례를 연속 보도했습니다. 이번 갑질타파는 (주)두산의 총괄기획사장이 주인공입니다. |
서울 종로구, 총 열여덟 세대가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단지 안에서는 어이없는 ‘분쟁’이 수년 째 이어지고 있다. 2014년 한 대기업 사장이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 일이다.
지난해 10월 이 타운하우스 주차장 기사 대기실에서 노트 한 권이 주민에게 발견됐다. 2018년 9월 18일 자 ‘상황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이 노트에는 “외부 순찰 중 윗집 주민과 마추쳤는데 ‘주차장에 왜 들어가려고 하느냐, 경호 맡은 집이나 들어가라’며 언성을 높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사설 경호원들이 작성한 일종의 근무일지였다.
일지에는 이웃 주민들의 동선을 감시하고 기록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특정 세대의 자녀가 언제 외출하고, 부부 내외가 언제 복귀했는지 등 입출입 시간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일종의 ‘사찰’이라고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웃을 ‘N1’, ‘N2’, ‘N3’식으로 표시해 자기들만의 암호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근무 일지에는 ‘200’이라고 지칭된 세대의 요구 사항도 적혀 있다. 가령 ‘외부 노출 시 최대한 밀착해 경호하고 차량 탑승 전 문 개폐 이상 유무를 체크하라’는 식이다. ‘200’이라고 지칭된 세대가 경호원을 고용했고, 경호원들이 이웃 주민의 동선을 일지에 기록으로 남긴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200’은 어떤 이유 때문에 타운하우스에서 사설 경호원까지 고용하고, 경호원들은 왜 이웃 주민들을 사찰한 것일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지난 8월 이 타운하우스를 찾아 경호원들을 만났다. 이들은 정장 차림으로 어떠한 신분도 표시하지 않은 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경비업법에 따르면 경비원은 소속 경비업체를 표시한 이름표를 부착하고 있어야 한다. 열흘 가량이 지난 뒤 취재진이 다시 방문했을 때 경호원들은 소속 업체와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있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들 경호원을 고용한 사람은 주식회사 두산의 사장인 이상훈 씨로 확인됐다. 주식회사 두산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에는 총 8명의 사장이 있는데 이상훈 사장은 그중 총괄기획 사장을 맡고 있다. 이 사장은 맥킨지 출신으로 2004년 두산에 입사해 2010년 사장으로 승진해 최근까지 계속 사장직을 맡고 있으며, (주)두산에서 연봉 랭킹 2위다. 좀처럼 언론에 잘 등장하지 않지만 지난해 5월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과 10대 그룹 경영인 간 정책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상훈 사장은 지난해 8월부터 사설 경호원을 고용해 자신의 집 앞과 주차장 기사 대기실에서 근무를 시키고 있다. 기사 대기실은 이웃 주민들이 함께 사용해야 하는 공용 구역이지만 이 사장이 고용한 경호원들이 24시간 상주하고 있다. 경호원들은 2인 1조 또는 3인 1조로 24시간 동안 이 사장 집 주변을 순찰하고 이웃 주민들의 동선을 파악한다. 이웃 주민들이 사생활 침해를 호소하며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7월 이상훈 사장의 경호원이 이웃 주민의 자녀를 몰래 휴대전화로 촬영하다 현장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압수된 두 대의 휴대전화에는 이웃 주민의 입출입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 등이 수십 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의 자녀의 사진이 찍힌 이웃 A씨 등 주민들은 경호원들을 경비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경호원이 작성한 근무일지에는 ‘주변인들의 접근을 경계하라’, ‘N(이웃으로 추정) 측 대응 시 움츠려 들지 말라’는 식의 지시사항이 적혀 있다.
경호원들이 속해 있는 경호업체는 “해당 주민이 집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시비를 걸면서 소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출입 여부만 간략하게 기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웃 A씨와 이상훈 사장은 한 주차장을 이용한다. 이 주차장에 댈 수 있는 차량은 모두 9대. 구석에 있는 두 자리는 기둥이 자리 잡고 있어서 주차하기가 불편하다. A씨 가족이 운전하는 차량은 3대, 이상훈 사장이 운전하는 차량은 1대다. 그럼 총 3~5대 정도를 더 주차할 공간이 있어야 하지만 이상훈 사장이 실제 사용하지 않는 차량을 렌트해 주차해놔 주차장은 꽉 차 있을 때가 많다. 취재진이 주차장을 찾았을 때도 렌트 차량 2대가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주차돼 있었다.
지난 5월 이웃 A씨는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이용해 집에 도착했다. 당시 기둥이 있는 모퉁이 자리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A씨의 대리운전 기사는 가로주차를 했다. 그런데 얼마 후 경호원이 A씨에게 차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A씨가 차를 빼는 사이 경호원은 경찰에 음주운전 신고를 했다. 심지어 경호원은 A씨의 차량이 주차장 입구를 막았다며 업무방해 혐의로까지 신고했지만 최근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해 경호업체는 “주차장 입구 부분에 주차를 해서 차량이 나갈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 근무자(경호원)가 경찰에 음주운전으로 신고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소 고발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상훈 사장은 A씨를 비롯한 이웃들을 상대로 관리업체 변경을 결정한 입주민 회의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5건의 가처분 신청과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소송에 대형 로펌까지 선임했다. 결과는 대부분 기각 또는 각하였다. 거기에 타운하우스 관리업체까지 가세해 주민을 상대로 업무방해 혐의 등 4건의 형사고소를 했지만 모두 무혐의로 끝났다. 관리업체가 입주민을 형사고소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주민들은 관리업체가 이런 일을 벌이는 뒷배경으로 이상훈 사장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실제 이 업체는 이상훈 사장과 같은 로펌을 선임해 법적 대응을 했고 현재 진행 중인 민사소송도 있다.
대기업 사장의 지위를 악용한 갑질의 흔적도 발견됐다. 지난 2017년 비싼 관리비 등에 불만이 있었던 주민들은 입주민 회의와 찬반투표를 통해 관리업체를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새로 선정된 업체는 임시 계약 기간에 계약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해당 업체의 담당자와 임원은 주민 B씨를 직접 찾아와 “두산 건설 쪽에서 회사로 전화가 온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B씨에 따르면 두산 건설 쪽 관계자가 업체 측에 전화를 해 ‘앞으로 아파트 관리업체 선정에 아예 입찰을 못 하게 하겠다’는 식으로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B씨는 해당 관리업체 관계자에게 “약간 암시를 준 건데 과대 해석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기존 관리업체, 타운하우스 이름을 두산건설 쪽 관계자가 직접 언급했다”는 게 업체 측의 대답이었다.
당시 관리업체 관계자와 주민과의 통화 녹취를 확인해보니 두산 측의 압박이 있었다는 사실을 업체 측이 분명히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관리업체는 임시 계약 기간 도중 결국 계약을 포기하고 떠났다. 이에 대해 주식회사 두산 관계자는 “두산 건설 측 관계자에게 이 같은 일이 있었는지 수소문해봤지만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취재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상훈 사장 부부가 해당 타운하우스로 이사 오기 전 한남동 고급 빌라에 살 때도 이웃 주민과 비슷한 갈등을 겪으며 형사 소송을 벌였다는 점이다.
이 사장 부부는 2011년 위층도 아닌 아래층에서 소음이 발생한다며 관리사무소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그런데 관리실장이 자신의 민원을 뜻대로 해결해주지 않는다며 빌라 관리업체 본사에 관리실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관리실장이 입주민들에게 이상훈 사장 세대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를 하기도 했다. 관리업체가 실제 관리실장을 인사 조치하려 하자 입주민들은 이에 반발해 관리업체를 바꾸고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그대로 근무하게 했다. 관리실장은 4년에 걸친 법정 싸움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상훈 사장과 부인 정 씨는 새로 이사 온 타운하우스에서도 이웃 주민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뉴스타파는 이상훈 사장과 부인 정 씨, 그리고 한 경호원이 대화한 녹취 파일을 입수했다. 이 녹취 파일에서 정 씨는 “4호 남자가 도박을 하는 것 같다”, “(이웃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정신병이 있는 것 같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 녹취 파일을 보면, 이상훈 사장 부부는 오히려 이웃들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호원을 고용하고 이웃들의 동선 등을 파악한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는 이상훈 사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직접 연락을 취하고 관리사무소와 두산 측에 질의서를 전달했다. 이 사장은 법률 대리인을 통해 “두산건설 측 관계자에게 관리업체 변경과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한 사실이 없다”며 “요사이 대기업의 분위기나 업무 체계상 가능한 일도 아니다”고 밝혔다. 또 경호원들이 이웃 주민의 동선을 기록하고 동영상 촬영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뉴스타파의 질의를 받고서야 해당 내용을 확인했다”며 “이웃집 자녀가 먼저 촬영을 해 경호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대응한 적이 있었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반론보도] 「두산 총괄사장의 갑질」 관련 본지는 지난 10월 16일 「두산 총괄사장의 ‘괴상한 갑질’」 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주)두산 총괄기획 이상훈 사장이 주거하는 타운하우스에 경호원을 고용하여 이웃 주민을 감시하고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는 취지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상훈 사장은 “안전상의 이유로 경호업체 직원을 고용한 것이고, 경호 과정에서 이웃 주민을 감시하거나 사찰하도록 지시한 바 없으며, 이웃 주민이 경호업체를 경비업법 위반 등으로 경찰에 고소한 형사 사건은 불기소처분되었다. 이웃 주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신규 관리업체 선정 과정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관리업체 선정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대표하여 소송을 제기한 것이고, 해당 소송의 기각 또는 각하는 타운하우스 관리단이 소송 당사자능력이 없다는 법원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두산그룹과 무관한 사적 분쟁이다”라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
취재 | 조현미 |
촬영 | 김기철 |
편집 | 정지성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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