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타파] 현대차그룹① "계약 해지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블루핸즈의 피눈물
2019년 06월 20일 19시 00분
<편집자주> 뉴스타파는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대기업 갑질 사례를 ‘갑질타파’라는 시리즈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공정위 등 감독 당국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짚어볼 예정입니다. 현대중공업, 롯데그룹에 이은 갑질타파 세 번째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입니다. jebo.newstapa.org 현대자동차그룹① "계약 해지 이유라도 알려주세요"...블루핸즈의 피눈물 현대자동차그룹② 세차만 하는 억대 연봉 낙하산...글로비스의 하도급 갑질 |
중소 물류회사를 운영하던 정인식(56) 씨는 지난 2011년 12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현대글로비스의 하도급업체(이하 A업체)를 인수했다. A업체의 매출은 100% 현대글로비스 물량이었다. 현대, 기아자동차에서 생산된 완성차를 수출 전에 최종 검사하고 선박에 싣기 전까지 이송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A업체의 매출, 나아가 생사는 원청인 현대글로비스에 있었다.
그런데 김경배 당시 현대글로비스 대표는 정 씨가 A업체를 인수할 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고 정 씨는 말했다. 업체를 인수하는 대신 ‘한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1년 11월 26일 A업체 인수를 위해 정 씨는 김경배 대표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경배 대표는 정 씨에게 처음으로 J씨를 언급했다. 당시 김경배 대표의 말은 이랬다고 한다.
평택항 물류기지 사업장을 인수해서 운영하면 매월 최하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가량의 순수 이익금이 발생하니 J를 채용해서 매월 세금 공제 후 1천만 원 씩 챙겨줘라. 현대글로비스에서도 오더를 받은 사항이니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느냐.
정인식 씨가 A업체 인수를 확정지은 2011년 12월 19일, 정인식 씨와 김경배 대표, J씨가 한 자리에 모였다. 해당 술자리에서 김경배 대표는 “앞으로 두 사람이 한 식구가 되었으니 서로 잘 지내기 바란다”며 건배를 제의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경배 대표는 “셋이 식사를 한 적이 전혀 없다”며 “2015년 이전에 J를 만난 적도 없고 지금도 잘 모른다”고 반박했다.
정인식 대표는 김경배 대표가 J의 채용을 요구한 이틀 뒤인 11월 28일 오후 서울 역삼동에 있는 현대글로비스 인근 커피숍에서 J를 처음 소개 받았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당시 현대글로비스 이건용 이사가 합석했다. J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건축사무소 대표 직함이 적혀 있는 명함을 건네며 “현재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튿날인 29일 오전 정인식 대표는 현대글로비스 사무실에서 이건용 이사를 다시 만났다. 이건용 이사는 J에게 지급해야할 임금 조건에 대해 “매월 네트(net, 세후 금액)로 1천만 원, 그로쓰(gross, 세전 금액)로 하면 1천500만 원 가량”이라고 언급했다. 이 내용은 정인식 대표의 2011년 다이어리에 적혀 있다. 이에 대해 이건용 전 현대글로비스 이사(현 현대로템 대표)는 “J의 급여는 정인식 씨가 결정했다”고 반박했다.
정인식 대표는 석연찮았지만 현대글로비스 측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J는 부사장 직함을 달았다. 정인식 대표는 J부사장에게 2012년 1월 급여로 세전 1천310만 원, 세후 1천203만 원을 지급했다. 현대글로비스의 요구 조건을 맞춘 것이다. 같은 달 사장인 정 씨 본인의 급여는 세전 600만 원, 세후 551만 원이었다.
J부사장은 1월부터 정인식 대표가 업체 내부 사정으로 사업을 접은 그 해 2012년 9월까지 매달 세전 1천310만 원의 월급을 받아 갔다. 합하면 1억 원이 넘는다. 매달 1천만 원의 고임금을 받은 J부사장은 과연 어떤 일을 했을까. 정인식 대표는 J가 하는 일이 없어서 비나 눈이 오면 더러워진 차를 닦는 일을 시켰다고 말했다. 정 씨의 증언이다.
J부사장이 출근은 하는데 할 일이 없어요. 그래서 저한테 부탁을 했어요. 하루 보내기가 힘들다 이거죠.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서 뭐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세차를 가르쳤어요. (한 달에) 1천만 원 받는 사람이 세차 일을 시작한 거예요.
당시 A업체의 직원이었던 임 모 소장은 J부사장과 관련된 형사 사건에서 정인식 대표와 같은 진술을 검찰에 했다. J부사장이 세차를 가끔 했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돌아 간단한 운전도 시켰다고 임 씨는 진술했다.
J부사장이라는 사람은 하는 일 없이 빈둥대다가 현장에 내려와서 심심하고 하니까 뭐 자기가 할 만한 일 없겠냐고 하며 다가와서 처음에는 차량 세차하는 일을 가르쳐서 일부 하였고, 그것도 필요할 때만 세차를 하는지라 또 다른 일 좀 하게 해달라고 하여 정인식 대표와 상의 끝에 차량을 검사장으로 입고시키는 차량의 운전 등을 시켜서 하게 하곤 했습니다. J부사장은 저희 현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이 예우를 해줘야 하는 해당사항이 없는 불필요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저희 직원들로서는 저런 사람을 정인식 대표가 왜 고임금을 주고 대우를 해주고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정인식 대표는 A업체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게 된다.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였다. 주요 혐의 중 하나는 J에게 고액의 임금을 책정하는 과정에서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정 대표에게 2014년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8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주주들의 고소 사건으로 인해 A업체는 2012년 9월 현대글로비스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했다. A업체는 다른 현대글로비스 하도급업체 대표 한 모 씨에게 넘어갔다. 이때도 현대글로비스는 J부사장의 채용을 요구했다고 한 대표는 취재진에게 말했다. 구체적으로 J의 채용을 요구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자 “이건용 현대글로비스 이사”라고 답했다. J부사장을 계속 채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현대글로비스 측에서도 별다른 말은 없었다고 한다. J부사장은 계속 월 천만 원 이상의 임금을 받았다.
한 대표도 이후 2014년 12월 현대글로비스로부터 업체를 정리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2015년 1월 결국 업체는 J에게 넘어갔다. J는 사장이 돼 평택항 수출차량기지 내 현대글로비스 업무를 위탁받아 최근까지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측의 요구로 J를 채용했다가 업무상 배임죄를 받게 된 정인식 대표는 2014년 2월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대표를 강요죄로 고소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소인인 정인식 대표를 불러 조사하지도 않았다.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당시 경찰의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대표는 이건용 이사가 A업체와 계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인식 대표가 경험이 없어 불안하니 함께 일할 능력있는 사람을 추천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J는 이건용 (현대글로비스) 이사가 추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경배 대표는 뉴스타파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정인식이 해당 업무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는 얘기는 (이건용 이사에게) 한 적은 있다”면서도 “J를 채용하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건용 이사는 경찰 수사에서 “정인식 대표가 이 방면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이 일과 관련해 IT 재고관리, 실적 관리 시스템 등 IT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던 J를 소개했다”며 “J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으며 가깝게 지내온 사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당시 하도급업체는 현대글로비스가 구축해놓은 전산 시스템에 따라 업무만 수행할 뿐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IT 전문가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 또 정인식 대표가 J를 소개받을 당시에는 IT 전문가가 아닌 건축사무소 대표였다. 결정적으로 J는 A업체에서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세차와 간단한 운전만 담당했다.
정인식 대표가 물류 업무에 경험이 없어 J를 소개했다는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대표의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정인식 대표는 A업체를 인수할 당시 이미 중소 물류회사의 대표였다. 정인식 대표 다음에 업체를 인수한 한 대표는 현대글로비스 출신으로 누구보다 글로비스 물류 업무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글로비스 측은 J의 채용을 요구했다.
이건용 당시 현대글로비스 이사는 경찰 조사에서 J에 대해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으며 가깝게 지내온 사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인식 대표는 J와 이건용 이사가 서로를 깍듯하게 대했다고 기억했다.
서로 정부사장님, 이건용 이사님 하면서 존댓말을 쓰면서 서로 극진하게 대했습니다. 술도 어느 정도 거나하게 취하면 그냥 평상시 흔히 쓰는 말투가 다 나오게 돼 있잖아요. 절대 두 사람은 흐트러지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대리를 불러줄 때도 항상 깍듯하게. 둘이 고교 동창이라는 얘기도 고소하고 나서 처음 들은 얘깁니다.
이건용 당시 이사는 정인식 대표로부터 업체를 인수한 한 대표에게도 J의 채용을 요구한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현대글로비스의 하도급업체 대표를 맡고 있는 J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현대글로비스가 회사 차원에서 J의 소송을 도운 정황도 확인됐다. 하도급업체 A의 한 주주는 2013년 9월 J와 정인식 대표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J가 부당하게 퇴직금 800여만 원을 받았다는 이유였다.
당시 사건 기록을 보면 J의 소송 대리인으로 모 법무법인과 담당 변호사 3명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A업체 주주들이 2012년 10월 현대글로비스를 상대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했을 당시 현대글로비스의 소송 대리인이었다. J에게 소송을 제기했던 주주는 “J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바로 현대글로비스에서 대응을 했다”며 “변호사가 J만 소송에서 빼주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경배 당시 현대글로비스 대표는 현재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위아 대표, 이건용 당시 현대글로비스 이사는 현대로템 대표를 맡고 있다.
취재: 조현미
촬영: 정형민
디자인: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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