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가짜집회 카톡방] ① "미희 설렁탕집 들어간다"...사찰 증거 입수

2023년 09월 25일 17시 00분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의 가짜집회에 참가한 경비용역들이 일반인·기자들을 사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물적 증거가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용역들이 미행·감시 보고를 하기 위해 사용한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 대화 내역을 입수했다.
현대차는 서울 양재동 본사 주변 모든 구역에 집회 신고를 낸 뒤 경비업체 용역들을 집회 참가자로 위장시켜 ‘알박기’하는 수법으로 해고노동자 등이 신고한 다른 집회·시위 개최를 방해하고 있다. (관련 기사: 현대차의 13년 집회방해와 검은 옷 청년들)
입수한 자료를 보면 위장집회 용역들은 ‘양재통합방 1’, ‘양재통합방 2’라고 각각 이름 붙인 카카오톡 오픈채팅 대화방 두 곳을 사용한다. 제보자에 따르면, 이 카톡방에서 위장집회 용역 100명 가량이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 보고를 올린다.
취재팀이 입수한 자료는 지난 7월 25일 화요일과 26일 수요일, 이틀간 문제의 카톡방에서 오간 대화 내역 중 일부다.
검은 옷을 입은 청년들이 '불법집회 Out'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앞 인도에 줄지어 서 있다.

현대차 용역, ‘미희’ 집중 감시...통화 내용까지 캤다

‘박미희’라는 인물은 현대차에 눈엣가시같은 존재다. 박 씨는 2013년 기아차 대리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다 대리점 비리를 기아차 본사 임원에게 내부고발한 뒤 해고됐다. 이후 10년째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1인 시위와 집회를 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현대차의 위장집회 용역들의 핵심 임무는 그런 박 씨가 본사 담장과 맞닿은 인도 위에서 집회·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장소를 선점하고, 그를 감시하는 것이다.
용역들은 카톡방 안에서 박 씨를 ‘미희’라고 부른다. 박 씨가 눈에 띄자 용역들의 손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박 씨의 행동과 동선이 카톡방 안에서 실시간 중계됐다. 박 씨가 ▲집회물품을 옮기는 모습 ▲횡단보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 ▲길을 건넌 뒤 이동한 장소 등 일거수 일투족을 분 단위로 보고한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위장집회 용역들의 시위자 감시 보고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올라오고 있다. 
박미희 씨에게 확인한 결과, 위장집회 용역들이 보고한 박 씨의 동선은 같은 날 실제로 박 씨가 움직인 경로와 일치했다.
7월 26일, 한 용역은 ‘박 씨가 식사를 하러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고 카톡방에 보고했다. 실제로 박 씨는 현대차 본사 앞에서도 간판이 보이는 맞은 편 설렁탕집에서만 식사한다. 박 씨는 용역들이 주변 인도를 모두 장악한 탓에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 도로 위 안전지대에서 집회를 연다. 그런데 안전지대 위에 집회 물품을 두고 자리를 비우면 용역들이 구청에 박 씨의 물품을 철거해달라는 민원을 넣거나 경찰에 신고를 한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 창가 자리에서 안전지대가 바로 보이는 설렁탕집 한 군데밖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보통 저희들은 일체 다른 데 못 가고요. 이 장소(안전지대)가 보이는 곳, 이 앞에 그 집(설렁탕집)밖에 못 갑니다. 왜냐하면 잠시라도 저희들이 안 보이면 사람이 없다, 그걸로 해서 (용역들이) 구청 부르고, 경찰 오고 해서 물건을 어쩌든지 이거(집회 물품) 들어내려고…

-박미희 /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
“미희 차 빠졌습니다. 전화하는 거 들어보니 구청 간다고 했습니다.”(용역 권모 씨 보고) 
카톡방 대화 내역을 보면 위장집회 용역들은 박 씨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전화 통화 내용을 엿듣기도 했다. 사실상 도청이나 다름없는 행위까지 벌이는 것이다.
현대차 위장집회 용역이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 박미희 씨의 통화를 엿들은 기록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남아 있다.
취재진은 용역들이 박 씨를 감시·보고한 카톡방 내역을 그에게 직접 보여줬다. 박 씨는 놀랍지 않다고 했다.
(감시받고 있다는 걸) 늘 느끼고요. 여기(안전지대 건너편 인도)에 오늘은 지금 카메라가 없어요. 좀 이따 사람들이 많이 오고 하면 여기 카메라를 항상 딱 대기를 시켜놔요. 그래서 저희들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 ‘기분 나쁘다. 우리가 범죄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닌데 늘상 저렇게 우리가 (용역들에게) 촬영을 당해야 되냐’ 그러면 경찰이 와서 항상 하는 소리가 ‘촬영하는 거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박미희 /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

“미희 남친, 신호대기중” 집회 돕는 동료들도 감시

현대차 위장집회 용역들은 박미희 씨의 집회를 돕는 동료들의 동선과 동향도 감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의 집회에 자주 참가하는 한 남성을 카톡방 안에서 ‘미희 남친’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현대차 위장집회 용역들은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 박미희 씨의 동료들까지 별명이나 실명으로 언급하며 촘촘하게 감시했다.
남친이라는 용어를 쓰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7월 말경에요, 김OO 동지라고 있어요. 그 사람이 여기서 저랑 같이 제일 많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 사람을 지칭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박미희 / 기아차 대리점 해고노동자

집회 취재하는 기자들 뒤밟고, 대화도 엿듣고

현대차 사옥 주변 집회를 취재하려는 기자들도 현대차 위장집회 용역들의 감시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용역들은 기자들이 집회 현장에서 박미희 씨나 경찰들과 나누는 대화도 엿듣고 상세히 보고하기도 했다. 이날 용역들이 감시한 기자들은 뉴스타파가 아닌 다른 매체 기자 2명이다.
현대차 위장집회 용역 한 명이 기자들의 대화를 엿듣고 단체 대화방에서 그 내용을 보고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카톡방의 존재는 앞서 뉴스타파를 찾아온 경비업체 내부 제보자의 증언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해준다. (관련 기사: "시위자·기자 동선 보고"...현대차 용역의 '사찰' 증언)
뉴스타파는 또 위장집회 용역 카톡방 대화 내역 안에서 현대차 측이 용역들로부터 직접 본사 주변 시위자, 노조 관계자 사찰 보고를 받아온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용역들에게 전파된 ‘어떤 전화번호’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2편에서 계속)
제작진
취재김지윤 홍우람
영상취재정형민 이상찬 오준식
편집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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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