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증언... "양승태 입법로비는 거의 사찰 수준"

2018년 08월 22일 17시 37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410개의 재판거래 의혹 문건들. 여기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우리 사법부의 흑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시에 KTX 여승무원, 쌍용차 노동자, 위안부 피해자 등이 사법부에 의해 어떻게 삶을 유린당했는지를 보여주는 처절한 기록이다.

뉴스타파는 상고법원에 목을 맨 양승태 대법원이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대학을 상대로 벌인 로비와 회유, 전두환을 따라한 사법부 장악 시도 행태를 취재해 3회에 걸쳐 싣는다.

1. 양승태 대법원의 홍보 도구로 전락한 대학과 언론
2. 국회의원들의 증언..."양승태 입법로비는 거의 사찰 수준"
3. 판사모임 해체공작...양승태 대법원의 '전두환' 따라하기
- 편집자 주

국정원도 아니고 국정원도 그렇게 안 하는데 법원이 진짜 엉뚱한 짓을 한 거죠.

스파이가 있었나보죠. 국회에.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그런 일을 하라고 한 자리가 아닌데...사찰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지난달 31일 대법원 사법행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추가로 공개한 196건의 문건을 본 전현직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의 반응이다. 196건의 문건 가운데 117건은 국회 등 정치권과 관련된 문서였다.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회의원 등 정치권을 상대로 사찰 수준의 입법 로비를 벌인 정황이 곳곳에 들어 있다.  

법원행정처 문건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법안 찬성표를 얻기 위해 국회의원의 성향과 친분관계를 파악했다. 관련 상임위원들의 지역구 현안을 파악해 총선공약을 제시하는가 하면 개별 의원과 관련된 재판 내용까지 챙겼다. 법원행정처가 사실상 법무법인처럼 움직인 것이다.  

당초 법원행정처는 특조단이 파악한 410건의 문건 가운데 196건을 뒤늦게 공개하면서, 문건 속 내용들은 대부분 검토에 그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과연 그럴까. 뉴스타파는 문건에 등장하는 국회의원 등 관련자들을 직접 만나 문건 속 입법 로비가 얼마나 실현됐는지 확인했다.

홍일표 의원이 대표발의, 임종헌 전 차장 등이 공동발의 서명

지난 2014년 12월 19일. 여야 의원 168명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안을 공동발의한다.

법안에는 새누리당 의원 뿐 아니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64명도 서명했다. 대표 발의자는 판사 출신인 법사위 여당간사 홍일표 자유한국당 의원이었다. 홍 의원은 법안 발의 후 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직접 의원들에게 법안 설명을 하고 동참을 얻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확인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찾아와 동료 의원과의 친분관계를 이야기하며 설득하는 바람에 법안에 서명을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공동발의에 참여했습니다.

모 국회의원실 관계자

법원행정처에서 법안 공동발의할 때도 발의에 응해줄 것을 이야기했고, 어느 정도 그 공동발의 의원 숫자를 과도하게 늘리려 하고 또 발의하지 않는 의원에 대해서 아주 집요하게 이야길 해왔어요.

전해철 / 더불어민주당 의원(2014.06~2016.05 법사위 간사)

법원행정처가 일일이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공동발의 서명을 받았다는 주장은 법원행정처 문건 내용과도 일치한다.

법원행정처가 2014년 10월 작성한 문건을 보면, 법안 발의자 100명 이상이 목표라는 내용과 함께 공동 발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회의원 이름이 나열돼 있다. 심지어 의원별 맞춤형 설득전략도 세워놓고 있는데, “의원별로 담당 실국장을 배정해 논리적 근거 뿐만 아니라 친분관계, 의원 이해관계를 적극 활용해 설득하라”는 내용이다. 문건에 언급된 국회의원 중 60% 이상이 실제 법안에 서명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은 정부입법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당시 법원행정처는  국회를 통한 청부입법으로 법안발의를 추진했다. 법무부가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명백한 청부입법입니다. 원래가 국가 기관이 하는 건 정부입법하는게 원칙이죠. 그런데 법무부가 강하게 반대하니까 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법원행정처가 발의안 서명 100명 목표로 했는데 168명 됐잖아요? 국회의원들이 대법원에서 부탁하니까 그냥 쉽게 다 들어 준 거에요. 국회의원들이 영혼 없음이 드러난 겁니다.

이재화 / 변호사(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

홍일표 의원은 “법원행정처 사람들이 내부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상고법원안이 국회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얻은 건 사실”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홍 의원의 말에 의심을 갖게 하는 정황은 문건 곳곳에서 확인된다.    

2016년 3월, 홍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였다. 그런데 법원행정처는 검찰이 이 사건을 기소도 하기 전에 사건내용을 파악한 뒤 무죄전략까지 짜 줬다. 홍 의원이 기소된 건 2017년 3월, 법원행정처가 방어논리를 담은 문건을 작성한 건 기소 5개월 전인 2016년 10월이었다. 법원행청저가 법안 발의에 대한 대가로 홍 의원의 구명에 나선 것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지난 16일, 홍 의원은 기소된 후 1년 6개월이나 지나 벌금 1000만원의 1심 형을 받았다.  

법원행정처 문건 속 국회의원 재판거래 의혹

재판 개입 의혹이 제기되는 국회의원은 더 있다. 2015년 5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전략’ 문서. 법원행정처가 야당 설득 거점 의원으로 전병헌 전 의원을 지목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전 전 의원이 최근 개인 민원으로 법원에 먼저 연락했고 민원이 해결될 경우, 이를 매개로 접촉, 설득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전 전 의원은 상고법원 법안에 서명을 한 의원 중 한 명이었다.

임종헌 전 차장의 USB에서 확인된 문건에 따르면, 2015년 4월 법원행정처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전 전 의원의 손 아래 동서인 임 모 보좌관의 석방을 검토했다. 임 씨의 형량을 항소심에서 징역 8개월로 줄여야 석방이 가능하다는 전략이었는데, 실제 이 보좌관의 형량은 대법원에서 징역 8개월로 감형됐다.

전 전 의원이 법원행정처에 요청한 민원이 자신의 보좌관에 대한 재판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 그러나 전 전 의원은 “법원에 연락해 민원을 얘기한 적이 없고, 임 보좌관의 형량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홍일표, 전병헌 사례처럼,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설립에 우군이 될 국회의원 재판은 유리하게 검토한 반면, 반대 입장인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재판을 통한 압박전술을 쓰기도 했다. 상고법원 입법에 대항해 대법관을 증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던 서기호 당시 정의당 의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법원행정처는 한 문건에서 서 의원에 대한 대책을 이렇게 적었다.  

‘동조세력 확산을 방지하여 고립시키는 전략’
‘서기호 의원이 제기한 판사 재임용 탈락 무효 소송에 대해 7.2 변론종결을 통해 심리적 압박을 주는 방안 검토 필요’

그런데 이 문건내용은 그대로 현실화됐다. 서 전 의원의 말이다.

실제로 7월 2일날 변론 종결이 됐어요. 그리고 뭐 한 달 후에 패소 판결이 선고됐죠. 제 입장에선 조금 더 심리할 것이 남아있는데, 좀 되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요. 또 이렇게 지금 계속 나오고 있는 재판거래나 재판 개입 이런 의혹들이 내 문제이기도 하구나... 막상 저도 그 피해 당사자가 되어보니 그 재판 거래로 인한 피해를 당하셨던 분들의 심정을 저도 좀 공감이 많이 가기도 했습니다.

서기호 변호사 / 전 정의당 의원, 전 판사

이 외에도 법원행정처는 여당 의원들을 설득할 거점 의원으로 김무성 의원을 지목하면서, 김 의원이 “최근 한명숙 의원 정자법위반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바 있다. 대법원에서 (한명숙 의원이) 무죄를 받을 경우 (상고법원) 설득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문건에 적었다.

또 야당의원에 대한 설득 창구로 지목된 이춘석 의원에 대해서는, 이 의원 지역구의 박 모 익산시장의 선거법위반 재판을 거론하면서 “고법에서는 당분간 이 재판을 신속하게 처리하기보다는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실제로 박 시장 재판은 선거법 위반 사건 처리 기한을 넘겼고, 대법원에서 시장직 상실형이 확정됐다.

하지만 김무성 의원과 이춘석 의원은 모두 “법원행정처 문건의 내용은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친분있는 판사 통해 회유 압박…“상고법원 찬성하라”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안을 반대했던 국회 법제사법위원들을 상대로도 압력에 가까운 설득작업을 벌였다. 특히 ‘키맨 5인방’ 관리에 집중했다. 서기호, 전해철, 이한성, 김도읍, 김진태 의원이었다.

윤성원 당시 사법지원실장, 이규진 양형위원이 찾아왔습니다. 시종일관 상고법원 논리를 계속 들이대면서 찬성해 줄 수 없냐고 설득했습니다.

서기호 / 변호사(전 판사, 전 정의당 의원)

(법원행정처 사람들이) 내용을 설명하는 것 이상의 것을 이야기하면서 설득했습니다. 너무 심해서 ‘압력행사로 보일 수 있다. 적절하지 않다’고 얘기한 기억이 있습니다

전해철 의원

임종헌 전 차장뿐만 아니라 실장급 부장판사들도 많이 찾아 왔습니다. 법안 심의 일정을 잡아달라고 하길래 일정은 잡아주면서 대신 찬성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대법관 수를 늘리면 되는데 왜 자꾸 상고법원을 할라고 하느냐고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한성 전 의원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법조계를 상대로도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 상고법원과 관련된 대법원 개최 토론회에 나갈 예정이던 변호사에게까지 회유 전화를 돌릴 정도였다.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 겸임하고 있던 윤성원 부장판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일 공청회 때 개인적 의견을 말하는 건 좋은데, 상고법원이 위헌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이재화 / 변호사(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

취재진은 왜 사법부가 국회와 법조계를 상대로 로비를 시도했는지 묻기 위해 이재화 변호사, 서기호 전 의원이 지목한 윤성원 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현 광주지법 법원장)을 찾아갔다. 윤 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고 회유한 게 맞느냐는 질문에 “지금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며 답변을 피했다.  

▲상고법원을 반대하는 변호사와 국회의원을 상대로 직접 회유에 나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윤성원 광주지법 법원장(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

법원행정처는 법사위원들의 반대로 상고법원안이 진척되지 않자, 새로운 동력을 얻기 위해 청와대로 눈을 돌렸다.  2015년 6월 4일 작성된 ‘이정현 의원 면담 주요 내용’이라는 제목의 문건. 이 문건에는 서울 종로의 한정식집에서 이 의원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등이 따로 만나 면담한 내용이 담겨있다.

면담 자리에서 임 전 실장 등은 이 의원에게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면담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고 이 의원은 곧바로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호성 당시 부속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면담을 추진했다.  두 달 뒤인 2015년 8월 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통령 박근혜를 만났다.

취재진은 이정현 의원에게 연락해 문건 내용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문건을 보지도 못했고 특별히 할 말도 없다”고 답한 뒤 더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두 번에 걸쳐 410건에 달하는 법원행정처 문건이 공개됐지만, 여전히 3건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60쪽에 달하는 ‘20대 국회의원 분석’ 문건도 그 중 하나다. 최근 박주민 의원은 이 60쪽 문건 중 자신과 관련된 부분을 법원행정처에서 받아 공개했는데, 내용이 충격적이다. 박 의원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대학시절 지도교수까지 적혀 있다. 박 의원은 “거의 사찰 수준”이라고 말했다.

▲ 박주민 의원이 법원행정처에 요청해 받은 <20대 국회의원 분석>문건 중

나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만 쓸 수 있는 내용입니다. 행정권 남용, 사찰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박주민 / 더불어민주당 의원

남은 3건의 문서에 얼마나 더 충격적인 내용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재판거래 단서가 되는 문건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지만, 이를 수사하기 위한 검찰의 영장청구 대부분은 기각되고 있다. 사법부의 제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 특별재판부 설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는 이유다.

서울중앙지검 영장전담판사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영장 발부여부를 결정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설령 기소가 되더라도 판사들이 전현직 고위 판사들에 대해 제대로 된 판결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거죠. 국민들이 수긍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다룰 특별재판부가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재화 / 변호사(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

취재 : 홍여진
촬영 : 김기철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