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X파일] 검찰, 8년 전 '정영학 녹음파일' 확보하고 수사는 안 했다

2023년 03월 20일 16시 25분

① 2015년 LH 로비 수사하던 수원지검, '정영학 휴대전화 압수' 사실 첫 확인 
② 압수한 휴대전화 속 녹음파일엔 김수남, 윤갑근 등 고위 법조인 상대 청탁 정황 
③ 유동규 및 정치인에 뇌물 정황 담긴 녹음파일도 포함...검찰은 확보해놓고 수사 안 해
④ 압수 당시 김수남은 대검 차장, 윤갑근은 대검 반부패부장...정영학은 참고인 조사만 받아 
그동안 대장동 수사의 '스모킹건'으로 꼽히는 '정영학 녹음파일'은 2021년 9월과 10월, 정영학이 세 차례에 걸쳐 검찰에 스스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보다 8년이 앞선 2015년 초, 검찰이 '정영학 녹음파일'을 이미 확보한 사실을 뉴스타파가 처음 확인했다.

검찰, '뇌물과 로비' 정황 담긴 정영학 녹음파일 2015년에 압수  

2014년 7월, 예금보험공사는 저축은행 대출금 150억 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로 대장동 업자들을 수사 의뢰했다. 수원지검은 2014년 10월부터 남욱, 정영학, 조우형 등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불법으로 빼낸 자금이 LH공사와 정치인에게 뇌물로 건네진 혐의도 포착됐다.  
2015년 4월쯤 검찰은 정영학 자택을 압수 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정영학이 사용해 온 다수의 휴대전화를 확보했다. 휴대전화 안에는 정영학이 남욱, 김만배 등과 통화한 녹음파일이 저장돼 있었다.
이런 사실은 2021년 10월 13일, 검찰이 정영학을 불러 조사한 내용에서 확인된다. 이날 검사는 정영학에게 "2015년부터 2018년경까지 녹취자료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지난 1월 뉴스타파가 공개한 1,325쪽 분량의 '정영학 녹취록'에는 해당 기간의 녹취록이 없다. 정영학이 자신에게 불리한 녹음을 빼고 검찰에 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정영학 "2015년 초에 수원지검이 휴대전화 전부 압수해갔다" 

정영학은 검사의 질문에 "2015년 초, 수원지검에서 저희 집에 압수수색이 나와서 집에 있던 모든 핸드폰을 압수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녹취를 해두면 압수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녹취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
정영학은 2019년 중반부터 녹음을 다시 시작한 경위도 설명했다. 당시 대장동 초기 동업자인 정재창이 협박을 해왔고, 김만배는 정영학 소유인 천화동인 5호의 지분을 빼앗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방어할 목적으로 녹음을 다시 시작했단 것이다.  
2021년 10월 5일, 정영학은 검찰에 USB 3개를 제출했다. 여기엔 녹음파일 45개가 담겨 있었는데, 모두 2012년~2014년 사이에 녹음됐다. 정영학은 2015년 초에 이뤄진 압수수색 전에 녹음파일을 복사해 USB에 보관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검찰은 정영학의 2012~2014년 녹음파일 '원본'을 8년 전에 확보했단 얘기다.
▲정영학 검찰 진술조서(7회, 2021.10.13.) 정영학 녹취록이 4년간(2015~2018년)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검사가 물었다. 정영학은 2015년 수원지검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전례가 있어서 또 압수당할 우려가 있어 녹음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검찰, 김만배의 '로비 육성파일' 확보했지만 수사 안 했다  

문제는 정영학 녹음파일을 확보한 뒤 검찰이 한 행동이다. 정영학 녹취록 전반부(2012~2014년)에는 김수남, 윤갑근 등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 법조인들에 대한 김만배의 로비 정황이 나온다.
2012년 8월 18일자 녹음이 대표적이다. 여기서 남욱은 김만배가 김수남 수원지검장을 만나 어떤 사건을 없는 일로 해달라는 청탁을 했다고 정영학에게 전화로 말한다. 당시 수원지검은 대장동 업자들로부터 뇌물 받은 혐의로 최윤길 성남시의회 의장을 내사 중이었다. 이날 대화 후, '최윤길 내사 사건'은 실제로 없던 일이 됐다는 게 정영학과 남욱의 일치된 진술이다. 
▲정영학 녹취록(2012.8.18. 녹음) 김만배가 김수남 수원지검장을 만나 최윤길 내사 사건을 수사하지 말아달라고 청탁했다고, 남욱이 김만배로부터 전해 들은 뒤 정영학에게 전화로 설명하는 장면. 

구체적인 청탁 내용 나오지만, 8년 전 검찰은 정영학 녹음파일 '모르쇠' 

2013년 7월 2일자 녹음도 김만배의 고위 법조인 로비 의혹을 뒷받침한다. 이날 남욱은 정영학과의 통화에서 "검사장이 직접 전화하는 예가 없다"면서 "윤갑근 검사장이 직접 계장(수사관)한테 전화했다더라. 수사관이 대놓고 봐줬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수남, 윤갑근 등 최고위급 검사들의 이름과 청탁 내용이 녹음파일에 등장한다. 문제는 검찰이 2015년 초에 이러한 녹음파일을 확보하고도 아무런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원지검이 정영학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김수남은 대검찰청 차장이었고 윤갑근은 대검 반부패부장이었다. 이 두 명은 김만배로부터 어떠한 청탁도 없었고, 사건을 봐준 적도 없다고 일관되게 반박해오고 있다. 
▲정영학 녹취록(2013.7.2. 녹음) 녹취록 본문에 손글씨는 정영학이 검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필로 적은 것이다. 

남욱 "오늘 여기 쇼부는 다 끝났습니다"...2015년 검찰이 압수한 녹음파일 공개 

뉴스타파는 지난 17일, 2013년 4월 1일에 남욱과 유동규가 통화한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이 통화에서 유동규는 남욱에게 "한 개 반(1억 5천) 내일 되냐?"고 묻고, 남욱은 "7천 몇 백만 원만 만들었다"고 답한다. 실제로 이튿날인 4월 2일, 남욱이 서울 강남 유흥주점에서 유동규를 만나 7천만 원을 건넨 사실이 검찰 수사로 밝혀진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2013년 3월 20일, 남욱은 유동규와의 만남 결과를 정영학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이 날 녹음파일에는 유동규가 뇌물 3억 원을 먼저 요구했다는 발언이 나온다. 남욱이 "저도 좀 놀랐어요. 얼마나 그 세 장(3억)을 얘기해서...오늘 여기 쇼부는 다 끝났습니다. 형님"이라고 하자 정영학은 "이야, 대단하다"고 답한다.  
검찰은 2015년 초에 '유동규의 뇌물 요구와 상납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도 확보했다. 하지만 이 또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녹음파일을 만든 정영학은 참고인 조사만 받고 풀려났다. 무슨 이유였을까. 
뉴스타파는 8년 전 검찰이 확보한 2013년 3월 20일자, '정영학-남욱 통화 녹음파일'을 전격 공개한다. 
제작진
촬영정형민
편집정애주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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