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혁신 4년① 인권 사각지대 '학교 밖 합숙소', 또 아이가 죽었다

2023년 06월 09일 18시 35분

2019년 스포츠 미투 사태, 2020년 고 최숙현 사건. 인권 침해와 폭력이라는 스포츠계의 오랜 병폐가 수면 위로 터져 나왔다. 당시 정부와 스포츠계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이른바 '메달보다 인권'이라는 구호 아래 일련의 스포츠 혁신 정책을 추진했다. 그 후 4년, 변화의 이정표와 현장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정책의 동력은 약화됐고, 스포츠 현장 곳곳에서는 역행이 감지된다. 혁신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누구보다도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유소년 스포츠 선수들이 위기에 놓여 있다. 뉴스타파가 유소년 스포츠의 인권 실태를 들여다봤다. - 편집자 주
  1. 인권 사각지대 '학교 밖 합숙소', 또 아이가 죽었다
  2. 피해자는 떠나고 가해자는 남는다
  3. 스포츠 혁신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지난해 4월 김포FC 18세 이하 팀 소속 선수 정 모 군이 김포시 마산동 소재 합숙소 4층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 군이 마지막으로 남긴 SNS 글에는 코치진의 정서적인 학대, 동료 선수의 괴롭힘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8개월간 조사를 벌여 실제 정 군에 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또한 올해 1월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김포FC 코치진 3명, 중학 시절 감독 1명, 중학 시절 괴롭힘을 가한 동료 선수 1명 등 총 5인의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대한체육회 측에 요청했다. 
스포츠윤리센터 심의위원회는 결정문을 통해 정 군 죽음 이면에 상시 합숙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합숙 생활 도중 있었던 식사시간 규율, 휴대전화 사용 제한, 삭발 등의 벌칙이 신체의 자유와 사생활을 제한한 기본권 침해라고 봤다. 상시 합숙은 지도자와 선후배 사이의 규율이 밤낮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오랜 시간 스포츠계 폭력의 근원 가운데 하나로 지적받았다.  

합숙소 내 괴롭힘, 아이는 혼자 견뎠다

정 군은 제주도에서 자랐다. 중학교 1학년이 됐을 때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유소년 축구팀에 합류했다. 평일에는 화성에서 합숙 생활을 하며 축구팀에서 훈련을 하고, 주말에는 제주도 본가나 경기도에 있는 친척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 정 군이 중학 시절 생활했던 유소년 축구팀 합숙소. 
합숙 생활은 정 군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중학교 2학년 때 함께 생활한 동료 선수 김 모 군의 괴롭힘이 1년 가까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 군은 정 군에게 자신이 먹은 식기를 치우게 했고, 양치할 땐 치약을 짜게 했다. 우유 간식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배식을 돕다가 이 장면을 목격한 한 학부모가 보다 못해 감독에게 항의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 군은 이러한 동료 선수의 괴롭힘에 대해 생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팀 지도자들은 어린 정 군에게 합숙소 안의 문제는 합숙소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해왔다.
“(아이가 중학교 3학년 때) 그러더라고요. A라는 아이가 후배를 때렸는데 팀에서 가해 학생에게 뭐라고 한 게 아니라 피해 학생에게 뭐라고 했다는 거죠. 이런 일이 있으면 절대 부모님께 이야기하면 안 되고 코치, 감독님께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자체적으로 여기서 해결해야 한다.” 

유소년 축구선수 故 정ㅇㅇ 군의 아버지
학부모의 항의를 받고도 팀 감독은 가해자 김 군에게 가벼운 경고 조치로 사건을 무마했다. 김 군은 연령별 국가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선수였다. 정 군이 세상을 떠난 이후, 스포츠윤리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감독은 합숙시설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한 일부 학부모의 항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몰랐다고 항변했다. 학부모들의 생각은 다르다. 어른의 차별이 낳은 부조리였다.
“감독님이 아예 밀어주는 애를 누구든 건들 수가 없잖아요. (중략) 다른 선수들은 그거에 10분의 1만 버릇없는 행동만 나와도 애들 죽어요.”

정 군 유소년팀 학부모
정 군은 동료 선수 약 30명과 함께 합숙소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떨어진 중학교를 다녔다. 합숙소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학생 간 괴롭힘이었다. 학교와 팀은 별개라고 하기 힘들 정도로 밀접한 관계였다. 팀은 매일 대형버스로 학생들을 학교까지 실어 날랐고, 학교는 팀이 신입생 환영회나 졸업생 환송식 같은 행사를 개최할 때면 공간을 내어줬다. 학교에 소속된 남학생 3명 중 1명꼴로 이 팀 선수였다. 유소년팀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학부모 역할을 하며 학교와 소통했다. 하지만 학교는 정 군을 보호하지 못했다.  
△ 정 군의 중학교는 정 군이 소속된 축구팀에 행사 장소를 빌려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합숙소 내부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출처 : 정 군 중학시절 축구팀 SNS)
학교는 축구팀 합숙소에서 벌어진 문제에 침묵했다. 사건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유소년팀의 한 학부모는 축구팀에서 벌어진 괴롭힘 사건을 학교 측에 알렸다. 그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으나 학교가 묵살했다고, 스포츠윤리센터에 진술했다. 
학교는 취재진에게 학부모로부터 학폭위 개최를 요구받은 사실이 없다며 학부모의 진술 내용을 부인했다. 어디까지나 학교 밖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축구팀 합숙소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사하거나 감독할 수 없는 위치라고 말했다. 정 군이 세상을 등진 지금도 학교는 같은 입장이다. 
“글쎄요 합숙소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학교 운동부가 아니라 저희 관할이 아니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나 그런 권한이나 의무가 있지는 않은 걸로 제가 알고 있거든요. (중략) 그냥 근처에 테니스 클럽에서 테니스 치는 선수나 태권도 학원에서 태권도 하는 선수나 똑같은 상황인 걸로.”

정 군이 다녔던 중학교 관계자

24시간 계속된 통제, '내일이 두렵다'

정 군의 고통은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도 계속됐다. 정 군은 중학교 졸업 이후 K리그2 소속 김포FC 18세 이하 팀에 합류했다. 이번에도 합숙 생활이 계속됐다. 합숙소라고 하지만 실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다세대 건물이다. 
코치진은 이 합숙소에서 24시간 선수들과 생활하며 선수들을 통제했다. 선수 모두가 2주에 1번만 출석하면 되는 방송통신고에 학적을 뒀기 때문에 코치들과 함께하는 물리적인 시간은 중학생 때보다 더 늘어났다. 
문제는 코치진이 일정한 기준 없이 학생 선수들을 일상적으로 통제했다는 것이다. 정 군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리를 삭발해야 했다. 식사 중 휴대폰을 봤다는 이유로 휴대폰을 빼앗겼고, 훈련 중에도 욕설을 듣는 일이 반복됐다. 자신의 행동이 팀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 
△ 김포FC 유소년 선수 합숙소. 이곳에서 코치진은 일정한 기준 없이 학생들을 일상적으로 통제했다. 
“(예전에 한번은) 밥을 먹으면서 휴대폰을 봤나 봅니다. 근데 총 24명의 아이 중에 우리 아이가 휴대폰을 본 걸 가지고 23명 전체 우리 아이까지 24명의 핸드폰을 일주일간 압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거는 본보기식 그래서 이 아이는 그 23명의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눈치와 시기와 미움을 받았겠습니까.” 

유소년 축구선수 故 정ㅇㅇ 군의 아버지
정 군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날에 윤 모 코치는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개진 상태였다. 윤 코치는 휴대폰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정 군에게 과격한 말을 쏟아냈다. 새벽 운동과 관중석 청소를 벌칙으로 지시했고, 정 군이 머리 흉터 때문에 특히 꺼려 했던 강제 삭발 벌칙도 내렸다. 정 군과 같은 방을 썼던 동료 선수는 스포츠윤리센터에 다음 날 예정된 체벌 때문에 정 군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날 밤, 정 군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정 군은 SNS에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축구를 안 하고, 일반학생이었다면, 이보다 행복했을까.’ ‘내일이 두렵다.’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 ‘늘 위태롭고 불안했다.’

4년 전 이미 '합숙 전면 금지' 선언...유명무실한 스포츠 혁신

또 아이가 죽었다. 정 군이 합숙소에서 겪은 괴롭힘 피해와 코치진의 인권침해는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숙소는 오랜 시간 운동부 폭력의 근원으로 평가받았다. 지도자가 24시간 선수들을 통제할 수 있고, 선배가 폐쇄적인 공간에서 동료 선수를 괴롭힐 수 있는 구조적인 환경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운동부 합숙소 전반을 조사해 이 같은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평일 휴대폰 압수, 이성 교제 시 삭발 벌칙, 샴푸 꼭지 한 방향으로 정리, 관등성명 외치기, 삭발 강요, 선배들의 빨래 강요 등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들이 보고됐다.
정부 당국은 합숙소에 내재된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교육부는 2013년 제정된 학교체육진흥법을 바탕으로 학교 운동부 합숙소를 규제하고 있다. 교장에게 책임을 부여해 운동부의 상시 합숙을 근절토록 하고, 집이 원거리인 학생을 위한 기숙사만 운영할 수 있게 규정했다. 기숙사 운영 시에도 학교 측이 지도자가 아닌 인원에게 기숙사 관리를 맡겨 학생 선수가 쉴 땐 쉴 수 있게 해야 한다.
체육계 구조 혁신을 목표로 2019년 출범한 민관합동 스포츠혁신위원회 역시 교육당국 지침에 발맞춰 합숙소를 전면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스포츠혁신위는 합숙소는 운동 기능 향상을 유일한 목표로 학생선수들을 일상적으로 통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폭력적인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당시 학교 운동부 10곳 중 4곳이 합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용수 스포츠혁신위원은 권고문을 발표하며 합숙소가 교육당국의 방침대로 별도의 사감 선생님을 배치한 기숙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이 먼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휴식 공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하지만 교육당국의 규제와 달리 정 군은 선수 생활 내내 상시 합숙을 하며 코치진과 함께 생활했다. 그 과정에서 괴롭힘과 인권침해에 노출됐다. 당국의 규제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 운동부는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학교 운동부와 학교 밖 운동부다. 학교 운동부는 교육부의 통제를 받는다. 상시 합숙, 코치진의 합숙소 통제는 원칙적으로는 금지돼 있다. 합숙을 하더라도 학교의 관리·감독 아래 있다. 문제는 학교 밖 운동부다. 학교 밖 운동부는 관리·감독 주체가 모호하다. 
△ 학교 밖 운동부가 운영하는 합숙소는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있다. 정 군이 몸담았던 팀들이 아무런 규제 없이 합숙소를 운영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막상 상시 합숙 중에 문제가 발생해도 인권보호를 위해 나서는 곳이 없다. 정 군이 통학했던 중학교는 전교 남학생 3명 중 1명이 소속되어 있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축구팀 합숙소에서 발생한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 일어난 문제이기 때문에 조사를 하거나 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였다. 
김포FC는 유소년선수들의 합숙시설을 운영하면서도 정작 교육당국이 세운 지침에서 벗어나 있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상시 합숙 시설을 운영할 경우 코치진이 아닌 별도의 전담 관리자를 두도록 하고 있고, 관리자와 학생은 상호 존중 속에 생활하도록 하고 있다. 훈육과 벌칙 역시 코치진, 관리자가 임의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육적인 방식에 의해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침은 학교 밖 운동부인 김포FC 합숙 시설에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김포FC 측은 합숙 시설 운영 자체에 대해 김포시 당국에 보고할 뿐, 별도의 합숙 시설 운영 규정이나 유소년 선수 훈육 기준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사각지대에 속해있는 학교 밖 운동부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이다. 취재진이 대한축구협회 팀 등록 현황을 살펴봤더니 지난 5년간 학교 축구부가 166개 줄어든 사이 학교 밖 축구부(클럽팀)는 250개 늘었다. 교육부는 학교 밖 운동부가 합숙소를 얼마나 운영하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역시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이유다. 
△ 교육당국의 관리·감독 밖에 있는 학교 밖 운동부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뉴스타파는 대한축구협회 자료를 토대로 지난 5년간 학교 안밖 축구부의 증감 추이를 분석했다.
학교 밖 운동부는 기존 학교 운동부보다 상시 합숙 시설을 이용하는 비중이 높다. 2019년 황대호 경기도 의원이 지도자 협회를 통해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기도 소속 학교 밖 축구부·야구부 140팀 가운데 90%가량이 합숙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같은 해 학교 운동부에서 합숙소를 운영하는 경우는 10팀 중 4팀꼴이었다. 

“학교 밖 운동부, 교육부가 관리·감독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선 학교 밖 운동부에 대한 관리·감독을 교육부가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은서 축구선수 학부모연합회 대표는 학교 밖 운동부일지라도 같은 팀 소속이면 같은 학교로 통학하는 현장의 관행이 있기 때문에 “학교에 책임을 지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스포츠혁신위원회가 합숙소 전면 폐지를 권고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선언과 현장의 괴리는 크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 역시 2021년 4월 학교 밖 운동부에 대한 관리·감독을 교육부가 맡을 수 있게 학원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미 시행 중인 체육시설법으로도 학교 밖 운동부의 합숙시설 관리·감독이 가능하다며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권고 당시 스포츠인권특별단장이었던 김현수 전 단장은 취재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체육시설법에는 체육 교사를 관리·감독할 근거가 없어 교육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봤습니다. 학원법이 이미 지식, 기술, 예능, 개인 교습 이런 것들을 관리·감독하고 있거든요. 그 대상에 체육만 추가를 해주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습니다. 권고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서 (인권위 내부에선) 이해가 안 된다는 의견들이 있었어요.”

김현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
제작진
취재김용헌, 최윤정
데이터오나영
촬영신영철, 이상찬, 최형석
편집김은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