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혁신 4년② 피해자는 떠나고 가해자는 남는다

2023년 06월 16일 15시 55분

2019년 스포츠 미투 사태, 2020년 고 최숙현 사건. 인권 침해와 폭력이라는 스포츠계의 오랜 병폐가 수면 위로 터져 나왔다. 당시 정부와 스포츠계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이른바 '메달보다 인권'이라는 구호 아래 일련의 스포츠 혁신 정책을 추진했다. 그 후 4년, 변화의 이정표와 현장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정책의 동력은 약화됐고, 스포츠 현장 곳곳에서는 역행이 감지된다. 혁신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누구보다도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는 유소년 스포츠 선수들이 위기에 놓여 있다. 뉴스타파가 유소년 스포츠의 인권 실태를 들여다봤다. - 편집자 주
2018년 2월, 경기도의 한 중학교 유소년 축구팀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폭행 가해자는 팀의 감독이었다. 감독은 생활 태도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합숙소 훈련장에 선수들을 세워놓고 뺨과 엉덩이를 때렸다. 
폭행 사실은 학부모들에게도 알려졌다. 감독은 아이들이 경기에 어떻게 기용될지 결정하고, 유소년 선수들의 진학 문제를 좌우한다. 대다수 부모들은 이 사건에 침묵했다. 문제 제기를 한  학부모는 임효준 씨가 유일했다. 임 씨는 폭력을 당연시하는 가해자와 학부모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왜 아이가 좋아하는 축구를 맞아가면서 해야 하느냐'라고 되물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임 씨의 아들은 폭행 이후 팀을 떠났다. 진학을 앞두고 중요한 시기였지만 당장 축구 선수로서 활동이 막혔다. 소속 팀이 없어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고, 훈련할 공간도 없었다. 
가장 막막한 건 진학 문제였다. 임 씨와 아들은 축구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여러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진학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어렵사리 기회를 잡아 임 씨의 아들은 아직까지 축구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힘든 시간이었다. 폭력 사건을 겪은 피해자가 오히려 '팀 탈퇴'라는 처벌을 받고 고통을 겪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폭행 드러나도, 징계 받아도... 가해자는 여전히 '감독님'

피해자 선수와 가족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가해자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폭행 사건 일 년 뒤인 2019년 4월, 감독은 아동학대 혐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축구협회는 법원 선고가 나온 뒤 감독에게 자격정지 1년 6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임 씨는 취재진에게 대한축구협회의 징계 처분을 ‘만들어냈다’라고 표현했다. 협회는 가해자 징계에 미온적이었다. 협회는 임 씨에게 재판 결과가 나와야 공정위원회 (체육단체의 징계 기구)를 열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징계를 원한다면 민원을 제기한 임 씨가 먼저 증거를 가져와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임 씨가 꾸준히 민원을 넣고서야 가해자에 대한 징계 처분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징계 후에도 가해자 감독은 축구팀에 남아 계속 활동했다. 경기 때 지도자 자격으로 벤치에 앉지 않았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 감독은 선수들과 만나 함께 있었다. '송년의 밤' 같은 팀 내부 행사에서는 그는 여전히 ‘감독님’으로 소개받아 무대 위로 나왔다. 해당 축구팀을 소개하는 홍보 자료에도 가해자 감독의 이름과 이력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나 마나한 협회의 자격 정지 처분에 임 씨는 다시 분노했다.
“자격정지가 됐으면 못 해야죠. 안 해야죠. 그런데 이름만 바꾸고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몸이 떨리고, 어떻게 해야 될지, 어디에서 방법을 찾아야 될지 정말 몰랐어요. 진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 임효준, 폭행 피해 선수 아버지
사건 이후, 바뀐 것은 팀의 간판뿐이었다. 팀 합숙시설로 가는 길목에는 예전 이름을 건 낡은 입간판이 서 있다. 이 축구팀은 이른바 ‘사설 클럽’이다. 징계를 받은 감독이 직접 운영하고, 감독의 가족이 회사의 대표자로 등록돼 있다. 유소년 선수들을 합숙시설에서 관리하고 교육과 훈련 등을 수행하는 공인된 교육 기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반 학원이나 다른 자영업과 다를 바 없다.
△ A 축구클럽으로 들어가는 입구. 이름을 바꾸기 전의 간판이 아직 걸려 있다. 폭행 이후 클럽은 간판만 바꾸고 계속 운영을 이어왔다.
임 씨는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해당 팀에서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감독이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개인 사업체이기 때문에 제재 방안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폭행 가해자인 감독은 본인의 활동이 지도자로서의 지도 행위가 아닌, 사설 클럽 대표로서의 경영 행위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자격정지 징계에 대해 ‘축구 관련 모든 활동의 정지를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축구팀 경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사례처럼 가족의 이름으로 등록된 사설 클럽의 경우, 협회가 징계 규정 위반 사실을 일일이 확인하고 단속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지도자가) 자격정지 징계를 받게 되면 임원으로도 협회에 등록을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만약 실질적으로는 경영을 하고 있으면서 임원으로 등록을 안 한 경우는 일일이 파악해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다”라고 말했다.
△ 대한축구협회 공정위원회 규정. 협회가 내리는 징계 처분, 징계를 결정하는 기구인 공정위 운영에 대한 규정이다. ‘자격정지’ 징계는 축구 관련 모든 활동의 정지를 의미한다고 나와 있다.

민원 없으면 징계도 없다... '허점 투성이' 징계 시스템 

피해자가 떠나고, 가해자는 계속해서 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비단 이 클럽에서만 일어난 일일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폭행으로 형사 처벌을 받고도 계속 활동하고 있는 스포츠 지도자들을 조사했다. 관련 판결문과 현재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지도자들의 명단 등을 입수해 교차 분석했다. 유소년 선수를 폭행해 형사처벌까지 받았지만, 아예 협회의 징계 자체를 피해 간 사례가 확인됐다.
2013년부터 6년간 운영된 경기도의 한 고교 축구클럽. 2015년 6월, 팀 감독은 합숙소에서 휴대전화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고등학생 선수를 폭행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다. 다른 선수를 불러 피해 선수의 삭발을 지시하기도 했다. 감독의 폭행으로 피해자 선수는 팀을 떠났다.
하지만 가해자 감독은 계속 지도자 활동을 이어갔다. 폭행 이후 7월부터 이어진 연습 경기들에서도 폭행 이전과 다를 바 없이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듬해 2심에서 특수상해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음에도, 2019년 클럽이 문을 닫을 때까지 지도자 활동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 B 축구클럽 창단식. 고등학생 선수를 폭행한 가해자 감독은 본인이 직접 창단한 클럽에서 계속 지도자 역할을 했다.
취재진이 직접 확인할 때까지 대한축구협회는 해당 감독이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당연히 징계도 없었다. 협회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20만 명 등록 선수, 지도자를 일일이 확인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민원이나 제보가 있지 않으면 그걸 파악하고 징계를 내리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형사처벌을 받아도 피해자 선수나 가족이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협회가 사건을 알 수도, 징계를 내릴 수도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 사건의 폭행 가해자 감독은 현재 본인의 연고가 있는 지역의 체육회가 운영하는 축구팀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활동 중이다. 취재진은 팀의 등록 담당자를 통해 감독의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준비 없는 스포츠클럽법, '사각지대' 사설 클럽의 위험 커졌다

사설 클럽은 학교 운동부나 기업・지자체가 운영하는 클럽과 달리,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다. 기본적으로 학교 바깥에 있는 운동부이기 때문에 ‘학교체육진흥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13세 미만 유소년을 가르치는 경우는 2020년 축구클럽 승합차 사고를 계기로 체육교습업으로 신고하도록 체육시설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그보다 나이가 많은 중고등학생 선수들이 있는 클럽 팀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해 6월부터는 스포츠클럽법이 시행됐다. 학교 운동부나 직장 운동부가 아닌 스포츠클럽이 지자체 등의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클럽 등록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김대희 부경대학교 교수는 “‘제도권 안에 들어가서 클럽 운영하기 싫다’라고 했을 때 그걸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나 법률은 없기 때문에 사각지대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 사설 스포츠클럽은 학생 선수들이 훈련하는 체육시설임에도, 학교체육진흥법과 체육시설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지난해 시행된 스포츠클럽법도 클럽 등록이 의무 사항은 아니다.
스포츠클럽법은 엘리트 체육 교육의 문제를 잡겠다며 추진됐다. 지역에 클럽이나 지도자, 인프라가 없어서 외지의 합숙시설을 이용하는 일을 줄이고, 유소년 선수들의 인권과 교육권 등을 최대한 보장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이 시행되면서 제도 밖 사설 클럽이 더 늘어나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제도가 본래의 취지를 이룰 수 있도록 보완 입법과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2020년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은 이미 이런 사설 클럽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특조단에 따르면, 사설 클럽 등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지도자들로부터 훈련받은 유소년 선수들이 인권침해를 더 많이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 밖 선수의 19.7%가 신체적인 폭력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학교 안 운동부 선수의 경우 이 비율은 13.8%였다. 
현재 사설 클럽 지도자들을 그나마 관리할 수 있는 기관은 지역 체육회나 종목 단체 같은 소속 단체 정도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사례처럼 이들 단체의 징계 시스템은 허점 투성이다.
일단 문제가 있어도 신고로 이어지기 어렵다. 폐쇄적인 스포츠계의 분위기로 인해 팀 지도자의 폭력과 비리를 선수가 스스로 알리는 사례가 적다. 인권위 특조단에 따르면, 학교 운동부를 제외한 스포츠계 인권침해 신고는 연평균 70여 건에 불과했다. 특조단 조사에서 5만 7천여 명 가운데 8000여 명이 신체 폭력 등의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것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치다.
어렵게 신고가 접수돼도 스포츠 단체는 소속 지도자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징계 여부를 판단하는 일에 미온적이다. 징계 양형 기준에 대한 규정은 있지만, 이른바 온정주의나 사적 관계가 작용하는 일도 많다. 
“저 사람은 옛날에 메달을 땄으니까, 성과를 냈으니까, 그동안 기여한 바가 크니까, 심지어는 나하고 친하니까. 처벌을 감경하는 겁니다. 운동하는 애들이 좀 맞을 수도 있지, 너무 과민하게 하는 거 아니냐, 그러면 저 지도자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사냐. 피해자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아닌 겁니다. 가해자를 걱정하는 분위기에서 회의가 열리다 보면 당연히 감경은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죠.”

- 김현수 전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
△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일부. 특조단은 ‘징계 전력자가 현장에 복귀하여 활동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징계자에 대한 사후 관리도 허술하다. 징계를 받아도 징계를 받은 사실이 공유되지 않거나, 같은 스포츠계 인사들끼리 암암리에 묵인해가며 활동을 이어간다는 문제가 있다. 문화연대 집행위원인 정용철 서강대 교수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다시 이력서를 내고 들어왔을 때 이걸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무력하다”라고 지적했다.

스포츠윤리센터 3년, 징계권도 없이 '비위 뿌리뽑겠다'?

2020년 출범한 스포츠윤리센터는 이러한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스포츠 비위 사건을 독립적 기구에서 직접 조사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기관이다. 센터는 문체부 장관을 통해 관련 협회에 징계를 요청할 수 있고, 각 협회의 징계 이력을 통합 관리한다.
△ 2020년 8월, 스포츠윤리센터가 업무를 개시했다. 스포츠 비위 사건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조직의 위치와 권한 등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출범 3년 차인 스포츠윤리센터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말한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직접 징계를 내릴 수 있는 징계권이 아니라, 징계를 권고하는 요청권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련 협회에서 센터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스포츠윤리센터는 수사권과 더불어 비위 행위자를 직접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석재 홍보・대외협력관은 “스포츠윤리센터에서 권고한 징계와 실제 징계 수위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직접 징계권이 필요하다”라며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권한이 주어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제작진
취재최윤정, 김용헌
촬영신영철, 이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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