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박정희 독재' 끌어들여 '대통령실 앞 집회 금지' 주장

2022년 08월 22일 17시 48분

경찰이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세력의 반헌법적 행태를 끌어 들여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금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금지' 문제를 두고 참여연대와 소송 중인 경찰은 최근 법정에서 박정희가 군사쿠데타 직후 만든 독재 기구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만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의 입법 취지에 따라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를 막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들고 나왔다. 

경찰과 참여연대, '대통령실 집회금지처분 취소 소송' 재판 시작  

지난 18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참여연대와 경찰의 '대통령실 앞 집회금지처분 취소 소송' 1심 첫 변론기일이 진행됐다. 참여연대가 경찰의 집회금지처분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한 지 3개월 만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5월 용산 대통령 집무실 근처에 집회신고를 했다가 금지당했다.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도 관저에 포함된다'는 논리를 들어 용산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를 막았다. 경찰은 참여연대 외에도 여러 시민단체가 낸 대통령실 주변 집회 20여 건을 모두 불허한 바 있다.  
본안 소송에 앞서 진행된 집행정지 가처분 사건에서 법원은 일관되게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은 다르기 때문에 집회를 불허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결정에 승복하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와 경찰이 벌이고 있는 소송은 앞으로 비슷한 내용의 여러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찰은 참여연대를 포함 총 6개 시민·노동단체와 소송을 진행 중이다.
'대통령실 앞 집회금지처분 취소 소송'의 핵심 쟁점은 '대통령 집무실이 대통령 관저에 속하는 개념으로 봐야 하는가'이다. 집시법은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서는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집무실이 관저에 포함된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앞으로 용산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시위는 완전히 금지된다. 반대로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서로 다른 공간이라는 판단이 나오면, 대통령실 주변 집회는 법적으로 가능해진다. 
지난 18일 첫 변론기일에서도 경찰과 참여연대는 기존 주장을 반복하며 다퉜다. 경찰은 "집시법상 관저를 '대통령의 주거 공간'으로만 사전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관저는 대통령 집무실도 포함하는 개념이다"라고 주장했고, 참여연대는 "집시법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집회금지구역'이라는 조항이 없다. 대통령 관저가 집무실도 포함한다고 보는 건 과도한 법 해석"이라며 맞섰다. 
이렇듯 쟁점이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판이 빨리 끝날 것으로 기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양측이 각자의 주장을 하는 변론기일은 한 번으로 족해 보인다. 새로운 내용이 나올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일반적이라면 바로 선고기일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찰, "집시법 제정 취지 살펴야 한다"며 기일 추가 요청

그런데 경찰은 법정에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집시법에 있는 대통령 관저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면, 집시법을 처음 만들 때의 입법 취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지난 17일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도 경찰은 집시법의 제정 목적을 언급하며 이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시법은 처음 만들 때부터 대통령 관저와 주요 공관을 집회금지구역으로 규정했는데, 가장 중요한 대통령 집무실을 집회금지구역에서 뺐을 리 없다는 논리였다. 아래는 경찰이 법원에 낸 준비서면 내용 중 일부다.  
제정 집시법이 일반적인 중앙관서까지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대통령의 집무실은 더더욱 보호 대상에 해당하였음에 의문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제정 집시법의 구조, 문언 및 입법 목적을 정리하면.. (중략).. '대통령 관저'는 당연히 대통령의 집무실과 거주지를 포괄하는 용어로 해석돼야 합니다. 

'대통령실 집회금지처분 취소 소송' 경찰 측 준비서면 (2022.8.17)
이런 주장을 하면서 경찰은 재판부에 "집시법 제정 당시의 입법 취지와 대통령 관저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찾을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경찰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10월 6일 추가 변론을 진행하기로 했다. 참여연대의 소송 대리인인 김선휴 변호사는 "증거 조사보다는 법리 판단이 쟁점인 사건이고, 이미 양측 모두 집시법의 법률 해석에 대한 주장을 제시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첫 기일에서 변론이 종결될 것으로 봤다. 지금처럼 법률상 근거 없이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 침해가 장기화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이 주장한 '집시법의 입법 취지'... 확인 결과 핵심은 '친-독재와 억압'

그럼 경찰이 법정에서 주장한 '집시법의 입법 취지'는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집시법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집시법은 지난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등 군부세력이 국회를 해산하고 만든 초헌법적인 독재 기구다. 입법·행정·사법 3권을 모두 장악했고, 헌법마저 뛰어넘는 조치와 정책을 일삼았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8월 '집회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만들어 자신들이 정한 11가지 경우를 제외한 모든 집회를 금지했다. 그리고 1962년 12월 31일, 이 임시조치법을 폐기하고 지금의 집시법을 처음 만들었다.
1962년 당시에도 우리 헌법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를 규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함부로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같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집시법을 제정하며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이 폐지될 때까지는 시위를 주최하고자 하는 자는 48시간 전에 관할경찰서장 또는 경찰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만들어 넣었고, 이를 어기면 5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반헌법적인 집회 허가제'가 법률에 명문화된 것이다. 
박정희 군부세력은 또 집시법에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집회·시위는 금지"라는 조항을 넣어 사실상 국가가 마음대로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후 이 조항은 수많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데 사용됐다. 대통령 관저와 중앙관서, 서울시청과 부산시청 같은 지방관청, 기차역 주변 200m 이내 등이 집회·시위 불가 지역이 됐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의 박정희. 박정희는 1961년 7월부터 대통령 취임 전날인 1963년 12월 16일까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지냈고, 그사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집시법의 입법 취지는 국가최고재건회의 회의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새 헌법의 발효시까지는 원칙적으로 시위는 하지 못하게 하고, 단 평화적인 시위에 한하여 허가제로 함으로써 점차 훈련을 시키는 방향으로 함이 좋겠음.

국가최고재건최고회의 상임위원회 회의록 중 박정희 발언 (1962.12.31)

1962년 집시법 제정 취지에 '2022년 경찰 주장'은 없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경찰은 대통령실 앞 집회를 막기 위해 반헌법적으로 만들어진 집시법의 입법 취지까지 끌어들였다. 하지만 경찰이 원하는 바를 이루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가 집시법이 만들어진 1962년 당시 각종 기록을 확인했지만 '대통령 관저가 집무실을 포함하는 개념',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모두 집회금지 구역에 해당한다'는 등의 내용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확인한 기록은 국가재건최고회의 회의록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업무 일지다.  
뉴스타파가 대통령기록관을 통해 확보한 1962년 12월 31일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업무일지. 여기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는 내용만 있을 뿐, 경찰이 찾겠다고 주장한 '대통령 관저의 의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1963년 내무부 치안국(현 경찰청)에서 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해설'도 찾아봤다. 하지만 집시법에 있는 주요 조항의 의의와 내용을 상세히 해설한 35쪽 분량의 이 자료에서도 '대통령 집무실과 대통령 관저의 범위는 어떻게 되는지', '대통령 집무실이 관저와 하나의 공간이기 때문에 집회나 시위를 불허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