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 있는데 또 만든다…참사 한 달 ‘경찰 대혁신 TF’가 하는 일

2022년 12월 01일 20시 00분

“주최가 없는 행사에 적용할 안전관리 매뉴얼을 새로 만들겠다”며 경찰청이 특별팀을 운영 중인 가운데, 주최자가 없는 다중운집 행사에 대한 초동 조치 매뉴얼은 이미 나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2014년 경찰이 만든 기존 안전관리 매뉴얼 전문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다. 
매뉴얼이 없었던 게 아니라,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기존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은 게 문제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이에 따라 경찰 TF가 내놓을 새 매뉴얼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주최 없는 행사의 안전 매뉴얼” 주문하자 경찰 TF 만들어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10월 31일 브리핑에서 “이번 사고와 같이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인파사고 예방 안전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집단 행사인 이태원 핼러윈 데이에 적용할 수 있는 안전관리 시스템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지적이었다. 
그 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 회의 자리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을 향해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라고 호통까지 쳤다. 이틀 뒤, 경찰청은 ‘경찰 대혁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경찰 업무를 쇄신해 참사의 재발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TF의 주된 목표는 “주최자가 없는 다중운집 상황을 포함해 경찰 안전관리 매뉴얼을 정비하는 것”이다.  
경찰 대혁신 TF가 새로 정비하겠다는 매뉴얼은 2014년 경찰청 경비과가 발행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경찰청의 주장대로 이 매뉴얼만으로는 부족한 걸까. 뉴스타파는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실을 통해 매뉴얼을 입수했고 286쪽에 달하는 내용 전문을 확인했다.
▲ 2014년 경찰청 경비과가 발행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

2005년 상주 참사를 계기로 안전 매뉴얼 제정

이 안전관리 매뉴얼은 2005년 10월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이 사고로 공연을 보러 온 시민들 5천여 명이 출입문 쪽으로 몰리면서 11명이 숨지고 158명이 다쳤다. 재발 방지책으로 경찰은 민간이 주최하는 수익성 행사를 대상으로 한 ‘수익성 행사 관리 매뉴얼’을 내놨다. 소개글에는 “민간 주도의 민·경 공동경비 형태를 고려해 제작됐다”고 써 있다. 

2006년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로 확대 개편

이듬해인 2006년 경찰은 ‘혼잡경비 실무 매뉴얼’이라는 이름으로 매뉴얼을 확대 개편했다. 당시 경찰청은 “행사의 종류와 숫자가 늘어나고 행사 안전의 취약 요인도 그만큼 증가해 포괄적인 종합 지침서로써 매뉴얼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혼잡경비란 조직되지 않은 군중의 무질서와 혼잡 상태를 예방하고 정비하는 경찰 업무를 말한다. 이번 이태원 핼러윈 데이에도 경찰은 혼잡경비에 근거해 적극 대처했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2014년, 다중운집 행사를 “정부·민간, 옥내·옥외, 국내·국제, 수익·공익성 여부 불문”으로 규정

더 나아가 가장 최근인 2014년에 개정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에는 경찰이 관리하는 다중운집 행사란 무엇인지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정부·민간, 옥내·옥외, 국내·국제, 수익·공익성 여부 불문”한 모든 행사라고 적혀 있다. 
또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각종 행사’에 모인 군중으로 인한 혼란을 막고 피해를 줄이는 ‘경찰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경찰 스스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를 경찰 본연의 직무로 설정한 것이다. 
▲ 용산경찰서가 2017년부터 올해까지 작성한 핼러윈 데이 생활안전, 치안대책 문건들.
뉴스타파가 확보한 2017년~2022년 용산경찰서 생산 문건에 따르면, 용산경찰서는  실제 이 매뉴얼대로 행사 주최가 없는 핼러윈 데이 때마다 생활안전, 치안대책을 세웠다. 용산서의 ‘2020년 핼러윈 데이 종합 치안대책’에는 “인구 밀집으로 인한 압사 및 추락 등 안전사고 상황 대비”라는 문구도 등장한다. 경찰 통제선을 설치하고 기동대를 배치하는 계획도 세웠다. 

“첩보로 위험 인지” 등 경찰 안전 조치 상세히 담겨

제3판에 해당하는 2014년 매뉴얼에는 이태원 핼러윈 데이에 적용 가능한 세부적인 안전조치 사항들도 다수 담겨 있다. 몇 가지를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 주최자가 제출하는 안전관리 계획 말고도 관련 첩보나 현장 답사를 토대로 행사의 위험성을 인지한다.
  • 주변 지하철역에 참가자가 몰릴 가능성은 없는지, 이동로가 좁거나 경사가 가파르지는 않은지, 위험 요소들을 따져보고 경력을 배치한다.
  • 거대 인파가 운집하거나 극단적으로 혼잡해진 상황에서는 인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안전 통로를 확보하고,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통해 인파 분산을 유도한다.
▲ 경찰청의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 내용 일부. 거대 인파가 운집하거나 극단적으로 혼잡해진 상황에서 경찰이 해야 할 안전 조치들이 자세히 적혀 있다.
8년 전에 만들어진 매뉴얼에 이런 안전 조치 내용이 모두 들어 있었다. 하지만 2022년 올해 이태원 골목길에서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은 행사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용산경찰서 정보과 형사는 “10만 명 인파가 몰릴 것이다,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부 보고를 올렸고, 이태원파출소장은 윗선에 교통기동대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 통제선 설치도, 기동대 배치도 없었다. 서울교통공사와 연계해 지하철 무정차 통과도 이뤄지지 않았다. 

매뉴얼 39개 초동 조치 중 “경찰서장 신속히 현장 도착” 있어

2014년 매뉴얼에는 ‘사고 발생 시 초동 조치 체크리스트’가 3쪽에 걸쳐 정리돼 있다. 신고접수·긴급출동, 최초보고·현장확인, 상황보고·전파 등 7개 항목 아래 경찰이 지켜야 할 39개 초동 조치를 제시하고 있다. 
이중 “경찰서장이 신속 임장해 현장지휘본부로 전환했는지”를 묻는 부분도 있다. 참사 당시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은 참사 현장 인근 차도, 관용차 안에서 50분을 앉아 있다가 사고 발생 50분 뒤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 
“지휘관 및 참모에게 즉시 유·무선 보고했는지”를 확인하는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 매뉴얼 지침과 달리 윤희근 경찰청장은 10월 29일 자정을 넘겨서 첫 보고를 받았다. 
“유관기관 및 민간인력이 효과적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현장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지” 묻는 항목에도 답은 “아니요”였다. 구급대원이 현장 진입을 못 한다며,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은 사고 직후 1시간 동안 경찰에 20차례나 출동 요청을 해야 했다. 

“2014년 매뉴얼은 주최 있는 행사에만 적용”…경찰 책임 회피

이미 매뉴얼에 경찰이 해야 할 행동 수칙이 담겨 있었지만, 매뉴얼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책임은 누구도,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있다. 
경찰 대혁신 TF 관계자는 2014년 판 매뉴얼이 “주최자가 있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매뉴얼”이라면서 “주최자가 없는 경우까지 포괄하는 매뉴얼을 제작하려는 것”이라고 기존 경찰 입장을 되풀이했다. 
2014년에 제작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은 주최자가 있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매뉴얼입니다. 주최자가 없는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나) 이런 관계 기관들에 정보가 전혀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사전에 안전 관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없다고 봐야죠. 이런 경우까지 포괄하는 안전관리 매뉴얼을 이번에 제작을 하려고 하는 거고요.

경찰 대혁신 TF 관계자
경찰 대혁신 TF에는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을 비롯한 경찰청의 국장급 고위직 16명이 내부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홍기현 경비국장은 10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대규모 인명 피해는 예상하지 못했다. 주최자 없이 모인 대규모 인파에 대비한 경찰 매뉴얼은 없다”고 주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경찰 대혁신 TF 회의에 참석 중인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대표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지난 회의 때도 ‘매뉴얼이 없어서 우리가 대처를 못 했겠냐?’는 의견을 냈었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주최자가 없어도 정부 기관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니 계속 매뉴얼이 있다, 없다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은 매뉴얼이 없어 책임을 못 지니, 매뉴얼을 새로 만들어 다음부터는 상황에 맞춰 책임을 지겠다는 게 경찰의 태도라는 것이다. 수도권 소재 경찰서 경비과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주최가 없다면 경찰이 어느 정도까지 경비 활동을 할 것이냐는 내용이 매뉴얼에 반영될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매뉴얼의 부재만을 탓하면 정부 기관의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경찰, 올해 새 매뉴얼 발표…뉴스타파, 2014년 매뉴얼 전문 공개

경찰 대혁신 TF는 올해 안에 새 안전관리 매뉴얼을 포함한 종합 혁신계획을 수립해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기존의 매뉴얼이라는 대책이 있는데도 또다시 대책을 만들겠다며 시간은 가고 있지만, 책임을 지려는 당국과 공직자는 보이지 않는다.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윤석열 대통령 (2022.11.7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 이렇게 많은 다수의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퇴를 안 하십니까?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 누차 말씀드렸습니다만 제 현재의 자리에서 제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책임을 가장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2022.11.14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중 
▲ 경찰 대혁신 TF의 계획이 담긴 경찰청 보도자료 내용 일부. TF는 올해 12월 안에 새 매뉴얼을 포함한 종합 혁신계획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각종 ‘TF’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경찰 대혁신 TF,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단장을 맡은 범정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TF 등이다. 이들 TF에서 여러 대책을 쏟아내겠지만, 과연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는 지켜볼 일이다. 
뉴스타파는 2014년 경찰청이 발간한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 전문을 <뉴스타파 데이터 포털>에 공개한다. 이 매뉴얼에는 안전을 위한 경찰의 초동 조치와 경찰서장 등 지휘관들의 행동 수칙이 담겨 있다. 이 매뉴얼만으로도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지, 새 매뉴얼이 필요할지, 직접 판단해 보길 바란다.
제작진
영상 취재오준식
편집윤석민 정지성 김은
CG 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 허현재
데이터최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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