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법원행정처 판사 분석
2018년 08월 13일 20시 54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시리즈를 2018년 8월부터 2019년 하반기까지 계속해서 보도합니다. 내년 2019년은 1919년 3.1 혁명 100년,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100년을 보내고 새로운 100년을 맞는 이 중요한 시점에서 이 특별기획을 통해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을 지배해 온 세력들을 각 분야 별로 분석하고, 특권과 반칙 및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통찰을 99% 시민 여러분과 함께 이끌어 내고자 합니다. 뉴스타파는 <民國 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 프로젝트를 통해 일제와 미 군정, 독재, 그리고 자본권력의 시대를 이어오면서 각 분야를 지배해온 세력들이 법과 제도를 비웃으며 돈과 권력을 사실상 독점하고 그들만의 특권을 재생산한 현재의 지배계급 시스템을 가감없이 들춰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미래 세대는 과거 지배 체제가 극복된, 그래서 보다 정의롭고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체제에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며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현직 부장판사의 말에 낭패감와 참혹함이 배어 나왔다.
그들 스스로 괴물이 됐어요. 판사가 모일 때마다 바로 바로 보고서가 만들어지고. 문건에 보면 정확히 나와 있잖아요. 핵심세력, 주변세력, 동조세력, 동료 판사들을 말살세력이라고 본 것 같아요.
지난 7월 한 지방법원 인근 찻집에서 판사를 만났다. 40대 후반의 부장판사였다. 현 시점의 사법부를 “날개 없는 추락”이라고 비유했다. 그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건 이제는 바로 옆 동료 법관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7월부터 현직 판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판사들로부터 양승태 사법부 체제가 어떻게 일선 법관들을 장악하고 통제해 나갔는지, 어떤 과정으로 순치시켰는지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MB가 들어와서 첫 번째 터진 사건이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촛불 개입 사태에요. 일선 판사들이 반발했죠. 그런데 양승태의 취임과 서기호 판사의 제명이에요. 양승태 대법원장이 돌아오면서 보수 드라이버가 된단 말이에요. 그런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들어서면서 법원이 상당히 숨 막히는 공간이 돼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2년) 당시 서기호 판사를 자른 다음에 뭘 강조 했느냐. 재임용이 되면 행정처에 불러서 이렇게 연회를 비슷하게 베풀어줬어요. 그러면서 저희한테 법복을 새로 입혀줬어요. 그런 퍼포먼스를 했거든요. 저도 당시 재임용되면서 갔었는데 양승태 대법원장이 그런 얘기 하더라고요. ‘법관들은 10년 임기로 돼 있기 때문에 당신들은 "세컨드 텀 저지(재임용 판사)다. 이 세컨드 텀 저지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거다. 퍼스트 텀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세컨드 텀 져지가 됐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헌법이 정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객관적 양심’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가장 즐겨 쓰는 말이에요. 그런데 객관적 양심이 아마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 나온 말일 겁니다. 객관적 양심이라는 거. 그건 헌재 결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말이에요. 양심 자체는 주관적이지 어떻게 양심이 객관적일 수가 있습니까? 그건 양심도 아니죠. 헌재 판결을 보십시오. 양심의 자유가 있어서 양심이라는 게 나오는 거예요. 그거를 말도 안 되는, 마치 바이마르 헌법 때나 통용 되고 일본 군국주의 시대에 통용되는 논리가지고 끊임없이 법관들을 억제하려고 한 거죠.
촛불 혁명이 있기 전까지 다 예상했던 게 정권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양승태 대법원장 다음에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이, 그 다음에도 행정처 거치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또 그 다음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같은 사람이 대법원장을 했을 거예요.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8년 8월 현재, 대한민국 판사는 2,933명이다.배석판사에서 대법원장까지 촘촘하게 피라미드식 계급 구조를 이룬다. 이 가운데 대법원장과 대법관, 고등법원장과 지방법원장, 고등법원 부장 등 고위직 판사는 314명이다. 승진과 보직 이동, 그리고 좌천, 재임용 탈락 등 당근과 채찍이 반복적으로 일상화된다. 여기에 출세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해지면서 사법부의 관료화는 심화되고 판사들은 철저히 획일화된다.법관은 이제 “법복 입는 관료”가 되는 것이다. 그 관료화의 정점에 법원행정처가 있다.
법원장은 제 상급자가 아니거든요. 제 업무와 관련해 저를 불러서 물어볼 권한도 없어요. 대법원도 상급기관이 아니거든요. 모든 법관은 독립돼 있어요. 그런데 지금 그렇지 않잖아요. 여러 가지 각종 선발성 인사들이 있고, 법관 2,900여 명이 되는데 900명 이상이 1년마다 보직을 옮기잖아요. 여기에 사무 분담도 중요하죠. 선호하는 사무 분담이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해외 연수, 수석부, 연수원 교수 등 지금의 고등판사 제도. 이런 것들을 통해 각종 선발성 인사들이 있어요. 판사들이 늘 사법행정권자를 인식할 수밖에 없어요. 그건 명확해요.
(윗 사람에게 잘 보이면) 보장되는 게 많잖아요. 예를 들어서 이번에 그 외국 파견 얘기가 나왔잖아요 그만큼의 어떤 보장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2년, 어떤 사람은 10년 가까이 행정처에서 근무하면 완전히 그 사람은 핵심세력이 되는 거고…
“괴물이 됐다”
“사법부 관료를 심화시킨 조직이다”
“양승태의 친위부대 역할을 했다.”
“재벌들이 만든 구조본부처럼 단순 사법행정을 넘어 모종의 기획을 했다”
“사법부의 성골, 진골이다”
“보직 희망원을 안 받는 곳이에요”
이번 취재 과정에서 다양한 취재원들이 법원행정처를 지칭한 말이다. 대법관을 겸하는 법원행정처장을 정점으로 30명 안팎의 판사들이 재판 대신 사법행정 업무를 하는 곳이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모두 33명의 판사가 근무한다.
법원행정처의 본래 목적은 판사의 재판을 보조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법관에 대한 감시, 감독기관으로 변질됐다. 보이지 않는 사법권력의 핵심이 된 것이다. 이 곳을 거쳐간 판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역대 법원행정처 차장은 모두 34명이다(현직 제외). 이 중 27명이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영전했다. 5명은 대법원장과 국무총리가 됐다. 영전하지 못한 채 퇴직한 이는 강형주 (2014-2015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 (2015-2017 법원행정처 차장) 등 2명 뿐이다. 두 명 모두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해 관여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2000년 이후 임명된 대법관 42명 가운데 법원행정처 출신은 절반 이상인 23명이다. 또 점차 법원행정처를 거치는 횟수도 크게 늘어난다. 차한성 전 대법관은 대법관이 되기 전까지 모두 6번의 법원행정처을 거쳤다. 근무 기간만 11년 2개월이다. 34년 법관 생활 중 32%를 법원행정처에서 보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경우 1987년 판사가 임명된 이후 2017년 퇴직때까지 5차례, 8년간 법원행정처를 거쳤다. 박병대 전 대법관은 6번,11년 동안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역시 법원행정처에서 4차례, 6년 10개월 동안 근무했다.
뉴스타파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에 파견돼 근무한 판사 140명도 분석했다.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의 41% 가량이 두 차례 이상 법원행정처로 보직발령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출신 대학으로 보면 서울대 출신은 79.3%고, 그 다음이 고려대 10%였다. 두 개 대학 출신을 합하면 89.3%에 이른다. 또 근무 이후 인사발령을 통해 타 법원 등으로 근무지를 옮긴 판사의 82%가 서울 지역 법원에 발령받았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 근무 판사의 자세한 분석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면 된다.
지난 7월, 현직 판사가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임용 8년차 류영재 판사였다. 그는 자신을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판사로서 소명의식이 투철하지 않다”고 했다.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사법농단 사태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자신을 포함해 많은 판사들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법농단 사태를 이렇게 규정했다. “민주화 투쟁으로 사법부 독립을 갖다 준 국민들을 세게 배신한 행위”.
류영재 판사는 “판사 내부의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뉴스타파를 찾았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들이 이번 사안을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와의 인터뷰는 2시간 반 동안 계속됐다.
2시간 반 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그동안 양승태 사법부 체제가 어떻게 사법부를 장악하고, 판사들을 어떤 방식으로 통제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의 증언은 부끄러운 사법부의 민낯이다.
류영재 판사의 인터뷰 내용은 공개된 방송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민국100년, 사법 70년 취재를 한창이던 지난 7월 말, 뉴스타파 취재팀은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와 사무총국(법원행정처 역할)의 문제점과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 법원행정처는 일제의 사법 시스템 잔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번 일본 최고재판소와 사무총국에 대한 취재를 통해 한국 법원행정처의 폐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일본 최고재판소 장관(대법원장)에 임명된 오타니 나오토, 그의 경력을 보면 우리와 사정이 아주 비슷하다. 오타니는 최고재판소 판사(대법관)와 장관이 되기전까지 사무총국에 6번 근무했다. 43년 법관 경력 중에서 16년 동안 재판에 참여했을 뿐 나머지는 사무총국 등에서 사법 행정업무를 본 것이다.
취재진이 만난 한 퇴직판사는 일본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이 법관들을 통제하고 관료화시키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타자와 사다오 변호사는 36년 동안 판사직을 마치고 지금은 일본 민주변호사협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기타자와 사다오 변호사는 일본에서는 판사가 좋은 판결을 내렸다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무총국을 거치지 않고서는 최고재판소 판사(대법관) 등 고위직에 오를 수 없다고 했다.
일본에 만난 퇴직 판사와 학자들이 한결 같이 표현하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손타쿠(忖度)다. 번역하자면, “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알아서 행동한다.”는 뜻이다. 손타쿠는 일본 판사들의 몸에 배인 습성이 됐다고 지적했다. 독립적으로 재판해야 할 판사들이 인사권을 준 상급자의 눈치를 끊임없이 본다는 것이다. 그 정점에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이 있다고 했다.
전직 판사 출신인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 법과대학원 교수는 일본의 판사들은 이제 “법복입는 관료(공무원)”이 됐다고 말한다. 세기 히로시 교수는 30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며 사무총국에서 두번 근무한 엘리트 판사였다. 퇴직 후 <절망의 재판소> <검은 거탑 최고재판소>의 저서를 통해 일본 최고재판소의 수직적 관료화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랫레이스(rat race 무한 생존경쟁)”, “판사들의 송곳니를 뽑아버리는” 등의 표현으로 일본의 관료화된 사법 시스템과 순치된 판사들의 현실을 고발했다.
일본도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길기 때문에 보직 이동을 통제하고, 승진을 통제하고, 이것은 최고재판소가 판사들을 통제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의 판사들은 랫레이스(rat race 무한 생존 경쟁), 출세를 위한 경쟁을 하게 되고, 모두 위를 보게 됩니다. 그 출세 경쟁에서 이긴 자가 고등법 원장이나 대법원 판사가 됨으로써 그 사람들이 통제를 하는 것입니다. 시스템 그 자체가 결국 판사들의 송곳니를 뽑은 것 같은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일본의 특징입니다.
퇴직 판사인 기타자와 사다오 변호사는 일본 사법부가 스스로 사법 독립을 후퇴시킨 원인으로 2차 대전 패전 이후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최고재판소라고 하더라도 전후 사법제도 개혁을 하게 되었는데, 일본의 고위관료는 전쟁책임을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사법성(司法省)이라는 곳이 있는데, 사법성의 주류가 대법원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에 사무총국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습니다. 그때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총국은 민주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보신과 출세를 위해 법과 정의를 버린 법복 입은 관료들에게 바른 판결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사법부 역시 조직의 이익을 추구했던 그저 “법복만 입은 관료”집단은 아니었을까.
류영재 판사와 한승헌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법원 구성원으로서 예전의 흑역사를 반성을 하고 어 이제 정말로 재판만 바라보고 당사자만 바라보고 재판을 해도 부족할 판에, 이제는 정권이 우리한테 고문을 하지 않아도 인사권을 건드리지 않아도 우리가 스스로 사법 독립을 팔아먹었는데 왜 이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가 그러면 사법부 내부에서 견제 역할을 하지 못했는가에 대해서 참담함을 느끼게 되는 거죠. 앞으로 사법개혁이 어떻게 될지 국민들이 법관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한다라고 판단을 해도 저는 사실 할 말은 없다고 생각을 해요 한 번 우리가 세게 배신한 거니까 다만 그래도 이제 알아주셨으면 좋겠는 건 그렇다고 해도 독립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원을 포기할 순 없다는 거죠.
과거사에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 일에도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오늘과 내일에 대한 어떤 바른 판단 이걸 제대로 못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지금처럼 뭘 그렇게 덮어두기에 급급한 이런 사례면은 절대로 우리 사법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데이터 최윤원, 임송이
촬영 최형석, 오준식
내레이션 손정은
편집 윤석민, 정지성
CG, 타이틀 정동우
리서처 민길주, 전인화, 홍은아
취재 연출 박중석, 박정남, 문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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