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활동비를 포함한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예산과 수의계약 정보의 공개를 가리는 행정소송에서, 피고인 대통령비서실이 이번 소송과 관련 없는 국가안보실 예산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하며 비공개를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공개를 요구하며 행정소송에 들어간 예산 항목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달가량 대통령비서실이 쓴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 집행내역이다. 같은 기간 대통령비서실이 맺은 수의계약 내역도 포함한다.
그런데 대통령비서실은 2023년 5월 11일 2차 변론에서 ① 대통령비서실과 직제가 다른 국가안보실 예산 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하며 “대통령비서실 예산의 비공개”를 주장하고, ② 이전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에서도 수의계약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펼치며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다.
별개 기관인 ‘국가안보실’ 예산 제시하며 “비공개” 주장
올해 3월 23일 첫 재판에서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소송 대상인 대통령비서실 예산 정보를 직접 비공개 열람·심사한 뒤 공개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대통령비서실에 예산 자료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비서실은 5월 11일 두 번째 재판에 예산 자료 일부를 A4 용지 파일 하나에 담아 재판부에 가져왔다. 비공개 열람·심사에 참조해달라며 의견 진술서도 함께 제출했다.
그런데 이날 대통령비서실이 제출한 예산 자료는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 국가안보차장실, 통일비서관실 등이 쓴 특정업무경비 집행 내역이었다. 대통령비서실이 아닌 국가안보실 소관 부서들이다.
▲ 대통령실 조직도 (출처 : 대통령실 홈페이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공개된 대통령실 조직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로 나뉜다. 국가안보실장 아래에 제1차장과 제2차장이 있고, 제1차장 밑에 통일비서관, 제2차장 밑에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이 배치돼 있다.
정부조직법에도 제14조(대통령비서실)와 제15조(국가안보실)에 따라 대통령비서실은 국가안보실과 별개 기관으로 구분된다. 대통령령으로도 ‘대통령비서실 직제’와 ‘국가안보실 직제’가 따로 마련돼 있다.
정리하면, ‘대통령비서실’이 쓴 예산 집행내역을 공개해달라는 행정소송인데도, 대통령비서실이 아닌 ‘국가안보실’이 쓴 예산 집행내역을 재판부에 제출하며 비공개를 주장한 것이다.
대통령비서실 측이 법정에 가져온 국가안보실 예산 자료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비공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정보들이다. “국가 안보 등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정보”를 비공개 대상 정보로 정한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2호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통령비서실 측은 2차 변론에서 특정업무경비와 업무추진비 내역이 공개되면, “국가 안보와 관련된 국정 활동 및 활동 주체 등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2차 변론 중 재판부는 “국가 안보와 관련한 부서라고 할지라도, 안보와 무관하게 특정업무경비를 쓴 내역도 있을 것 아니냐”고 말했고, 피고 측 최지우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은 “전부는 아니고 저희도 이게 (총무비서관실에서) 샘플로 몇 개만 받은 것”이라고 답했다.
국가 안보와 관련되거나 관련되지 않은 예산 내역을 특정해야 한다는 재판부의 지적에도 대통령비서실 측 행정관은 “그렇게까지 정리가 될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날 재판부는 대통령비서실 소속 부서들의 예산 집행내역을 정보공개법에 명시된 비공개 사유별로 분류해 제출할 것을 대통령비서실에 다시 요청했다.
원고 소송대리인을 맡은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뉴스타파 전문위원)는 5월 15일 재판부에 낸 준비서면에서 “원고가 정보공개 청구한 정보는 대통령비서실에 관한 정보이지, 국가안보실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면서 “원고가 공개 청구한 기간 대통령비서실 각 부서의 수의계약 내역과 특수활동비 등 집행내역 및 지출증빙 서류를 제출할 것을 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비서실도 수의계약 비공개했다”…확인해보니 ‘거짓’
대통령비서실은 수의계약 내역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단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비서실은 ‘비공개심리 의견진술’ 문서와 법정 변론에서 “국가 중요시설 및 군사보호구역에 관한 계약은 대통령비서실이 발주한다”고 주장했다. 이 중 “시설 공사, 시스템망 구축 및 보수 등이 공개될 시,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들은 수의계약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비서실이 발주처인 경우 (조달청 나라장터 홈페이지에서) 검색이 되지 않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중 6개월의 기간을 무작위로 정해 대통령비서실이 낸 입찰 공고를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조회했다. 2018년 1월 1일부터 그해 6월 30일까지, 대통령비서실이 낸 입찰 공고가 8건 검색됐다. 이중 2건은 수의계약이었다.
▲ 2018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이 올린 입찰 공고 현황을 조달청 나라장터 홈페이지에 검색한 결과. (출처 : 나라장터 홈페이지)
지난해 6월, 용산 대통령실 청사 공사에 모 업체가 수의계약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만 해도 나라장터 홈페이지에서 해당 계약 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계약정보 서비스를 일시 중단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나라장터 홈페이지에서 대통령비서실 계약현황 조회 서비스가 중단됐고, 지금까지 나라장터 홈페이지에서 대통령비서실이 체결한 계약들은 찾을 수 없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예정이어서 비공개해야” 기존 주장 반복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어서 비공개 결정이 맞다”는 등 기존 주장도 되풀이했다.
첫 변론 이후 5월 3일, 대통령비서실은 재판부에 낸 준비서면에서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관리는 대통령기록물법에서 정한 바에 따른다, 비공개로 분류된 대통령기록물은 공개할 수 없다, 공개 청구 정보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가지정될 예정이어서 비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변론은 지난 2월 28일 대통령비서실의 준비서면 내용과 대부분 동일하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 여부를 정보공개법 제9조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대통령기록물법 제16조에도 명시돼 있다.
또한 공공기관이 해당 정보를 비공개로 분류해 관리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을 갖지는 않는다. 더구나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돼 비공개되는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다음 날부터다. 임기 중에는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이 불가능하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은 특수활동비 집행내역과 관련해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특수활동비 세부 집행내역와 지출증빙 서류 일부를 “보관·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비서실은 감사원의 계산증명지침에 따라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수령한 “영수증 및 집행내용 확인서”만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특수활동비를 언제, 어디서, 얼마나 썼는지 등이 담긴 지출증빙 서류는 없다고 했다. “지출결의서, 내부 결재서류, 현금수령증”이 보관·관리하는 유일한 지출증빙 서류라는 것이다.
이는 검찰이 특수활동비를 쓰는 방식과 유사하다. 지난 4월 13일 대법원 판결로 공개가 확정된 검찰의 특수활동비 등 예산 공개 소송에서도 검찰은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6월 23일 검찰이 공개할 특수활동비 정보는 “집행 건별로 집행 일자와 집행 금액” 그리고 “집행 명목과 수령인 성명은 제외한 지출결의서, 내부 결재 서류, 현금수령증 등의 지출증빙 서류”다. (관련 기사 : ‘윤석열 특수활동비’ 6월 23일 공개된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정용석 부장판사)는 대통령비서실이 예산 자료를 보완해 제출하는 대로 공개 여부를 다시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7월 6일 서울행정법원에서 3차 변론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