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프로젝트] ⑤ 광주학살 다음날 "일찍이 보지 못한 조치" 협박
2019년 09월 16일 08시 00분
뉴스타파는 <민국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의 일환으로 ‘전두환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전두환 세력이 쿠데타와 광주학살로 정권을 탈취한 뒤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이 땅에 정의를 세우기 위한 기획입니다. 12.12군사반란 40년을 맞아 준비한 ‘전두환 프로젝트’는 오는 12월까지 방송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유혈진압한 사건. 내년이면 ‘광주학살’이 벌어진 지 40년이 된다. 하지만 전두환과 그의 일당들은 학살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은 채, 여전히 사회지도층 행세를 하며 잘 살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대저택에 살고있는 전두환은 10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으면서도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고, 광주학살 당시 특전사령관이었고 전두환 정권에서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낸 정호용은 ‘부동산 재벌’이 됐다. 전두환의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도 전두환이 대기업 돈을 뜯어 설립한 재단을 물려받아 개인재산처럼 운영하고 있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결과, 12.12군사반란에서 5·18로 이어진 쿠데타에 참여했던 전두환 세력 대부분은 서울 강남 등 부촌의 대저택과 고급아파트에서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가해자들과는 달리, 광주학살 피해자들의 삶은 회복되지 않았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주는 고통만큼이나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 5·18기념재단이 2006년에 펴낸 ‘5·18민주유공자 생활실태 및 후유증실태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5·18 피해자의 40% 이상이 최저생계비(당시 월 117만 원)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80년 5월 이후 가정이 파탄난 사람이었다.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건 경제적 고통만이 아니다. 광주학살 피해자들은 지난 40년 간 전두환과 공범들, 그리고 그 후예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쏟아내는 망언에도 시달려야 했다. 지난 2월, 자유한국당이 개최한 자칭 ‘5·18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나온 이종명, 김순례 의원 등의 발언은 대표적인 경우다.
종북좌파들이 지금 판을 치면서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 세금을 축내고 있습니다.
5·18 폭동이라고 했는데, 10년, 20년 후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습니다.
망언이 터져나온 뒤, 광주학살 피해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왔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길바닥에 텐트를 설치하고 ‘5·18 농성단’이라고 적힌 깃발을 내걸었다. 근처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 쓰고 텐트에서 먹고 자는 농성은 현재 240일을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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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포기하고 천막 생활을 이어가는 ‘5·18 농성단’이 요구하는 건 단 하나, 바로 ‘광주학살의 진실규명’이다.
5월 21일 계엄군에 의해 집단발포가 됐던 그 당시의 학살이, 그동안 근거 자료들을 없애버려서 규명하는데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많은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기록들도 재점검하면서 다시 한 번 이 문제를 규명해서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역사를 바로세울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한다는데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이렇게 5·18농성단이 꾸려지게 됐습니다.
지난 8개월 간 ‘5·18 농성단’은 전두환을 비롯해 노태우, 최세창(5·18 당시 제 3공수여단장), 신우식(5·18 당시 제 7공수여단장), 최웅(5·18 당시 제 11공수여단장) 등 광주학살의 책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과를 요구하고 책임을 물었다. 5·18의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 기대했던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이 자유한국당의 방해로 가로막히고, 광주학살의 또 다른 책임자인 노태우의 아들 노재헌 씨가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농성단의 활동은 계속됐다.
“광주 5·18과 연관이 없는 제삼자가 보기에 ‘40년이 흘렀지 않느냐. 이제 그만 좀 해라’라고 하는 국민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광주에서 피해를 봤던 피해자의 넋두리로서의 행동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세우는, 역사 속에서 잘못된 것을 밝히고 넘어가자는 굉장히 역사적인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수차례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지만, 집단발포를 명령한 최종책임자조차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지난 40년 간 ‘화해’와 ‘국민화합’을 말하는 여론에 밀려 학살의 가해자들에게 피해보상 책임을 묻지 못했고, 또 묻지도 않았다.
그래서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의 핵심 과제는 12.12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을 거쳐 권력을 손에 넣은 전두환과 그의 잔당들의 부정축재재산을 환수하는 것, 그리고 광주학살에 대한 민사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18은 역사가 되어지기 전에 신화가 되어버렸습니다. 마치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어’ 같은 식이죠. 그 비참하고 험난한 역사적 사실은 거의 묻혀 버렸고요. 이것이 모두 광주학살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책임자에게 형사책임과 함께 민사적인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8월부터 총 10회에 걸쳐 ‘전두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12.12군사반란 40년을 맞아 아직 끝나지 않은 전두환 시대를 다시 조망하고, 12.12에서 5·18로 이어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세력에게 다시 역사적 책임을 묻기 위해 준비한 기획이다. 이 기획을 통해 뉴스타파는 10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는 전두환 일가가 감춰놓은 차명재산을 찾았고, 전 씨 일가가 3대에 걸친 재산상속에 시동을 건 사실도 확인했다. 대통령 퇴임 후 전두환이 어떻게 국민 세금을 챙겨 갔는지도 파헤쳤다. 또, 5·18 당시 발언내용과 일정표를 통해 전두환의 당시 행적을 추적했고, 5·18 직후 작성된 외무부 문서를 통해 광주학살 직후 신군부가 벌인 만행을 고발했다.
오는 11월 다시 시작되는 ‘전두환 프로젝트’는 전두환이 권력을 찬탈한 시작점이 됐던 12.12군사반란 40년이 되는 시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취재 | 한상진 강민수 |
촬영 | 이상찬 오준식 |
편집 | 정지성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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