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두환 프로젝트] ⑤ 광주학살 다음날 "일찍이 보지 못한 조치" 협박

2019년 09월 16일 08시 00분

뉴스타파는 <민국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의 일환으로 ‘전두환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전두환 세력이 쿠데타와 광주학살로 정권을 탈취한 뒤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이 땅에 정의를 세우기 위한 기획입니다. 12.12군사반란 40년을 맞아 준비한 ‘전두환 프로젝트’는 오는 12월까지 매주 월요일 방송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집단발포와 학살 과정에 전두환이 직접 관여한 정황을 보여주는 기록을 뉴스타파가 확인했다.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다음날인 1980년 5월 22일, 전두환이 언론사 대표들을 모아놓고 발언한 내용을 받아 쓴 것으로 추정되는 2건의 문서다. 하나는 손글씨 메모, 또 하나는 이 메모 내용을 번역해 실은 것으로 보이는 일본어판 소책자다. ‘광주 민중의 결기’라는 제목의 이 소책자는 광주항쟁 다음달인 1980년 6월 일본 도쿄에서 발행됐다. 뉴스타파는 최근 5.18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 2개의 문서를 입수했다.

뉴스타파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이 문서에 따르면, 전두환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3시간 가량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광주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있으며, 시가전을 각오한 일대 작전을 펼쳐 2시간 이내에 광주를 진압하겠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광주학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전두환의 그간의 입장을 뒤집는 내용이다.

전두환은 그 동안 광주학살의 책임을 부정해 왔다. 30여년 전인 1997년에 이미 광주학살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전두환은 시종일관 책임을 회피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2017년 자신이 낸 자서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그때 어떤 놈이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그러겠어. 나는 광주사태하고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야.

전두환 인터뷰 (2016.6. 신동아)

1980년 5월 당시 나는 광주의 어느 곳에도 실재하지 않았다. 광주사태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광주에서 진행된 작전에 조언이나 건의도 할 수 없었다.

전두환 회고록 (2017. 4.)

하지만 뉴스타파가 ‘전두환 프로젝트’ 취재과정에서 입수한 전두환 발언록 메모와 일본어 책자는 전두환의 이 같은 주장을 뒤집는 문건이다. 손글씨 메모는 5장이고, 이를 번역 수록한 ‘광주 민중의 결기’라는 제목의 일본어 소책자는 광주항쟁 다음달인 1980년 6월 일본의 대표적인 월간지 ‘세카이’에서 발행됐다.

"2시간 이내 광주 진압 자신"... 집단발포 다음날 '전두환 발언' 추정 문건

전두환의 발언내용 일어 번역본은 ‘광주민중의 결기’ 62쪽에 상자기사 형태로 들어 있다. 제목은 ‘전두환이 보도기관 대표에게 한 광주사태 설명’. 최근 일본에서 이 소책자를 발굴한 광주항쟁연구가 김용철 씨는 이 소책자의 입수과정, 소책자가 갖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랫동안 5.18민중항쟁과 관련된 일본자료를 찾는데 주력해 왔다. ‘광주민중의 결기’도 그런 과정에서 찾아낸 자료다. 주목할 부분은 상자기사로 인용된 광주학살 다음날의 전두환 발언이다. 이 기사를 통해 당시 전두환이 광주상황을 일일이 보고받고 있었고, 작전계획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었음이 전두환 자신의 발언으로 확인됐다. ‘광주학살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전두환의 그간의 주장을 180도 뒤집는 내용이다.

김용철 (광주항쟁 연구가)
▲ 1980년 6월 일본에서 발간된 소책자 ‘광주 민중의 결기’. 이 책자의 62쪽에는 집단발포 다음날인 5월 22일, 전두환이 언론사 대표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들어 있다. 전두환은 기자간담회에서 “2시간 내에 광주를 진압할 자신이 있다” 등의 내용을 발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두환,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후 4차례에 걸쳐 기자간담회

광주학살이 벌어진 1980년 5월, 전두환이 언론사 관계자들과 수차례 간담회를 가진 사실은 1980년 당시 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가 작성한 문서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직접 서명한 ‘광주소요사태, 중진언론인 국민계도유도계획’이란 제목의 문서다.

이 보안사 문서에 따르면, 전두환은 1980년 5월 22일부터 총 4번에 걸쳐 언론사 대표, 편집국장, 정치부장, 사회부장을 서울시내 여러 호텔로 불러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가졌다. “광주사태의 실상을 언론인들에게 정확히 알린다”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보안사 문건에는 당시 전두환이 언론인들에게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5.18연구자인 김용철 씨가 발굴한 일본문서(‘광주 민중의 결기’)와 전두환의 서명이 들어 있는 보안사 문서를 확인한 뒤, 1980년 5월 당시 전두환이 정말 일본어 소책자에 수록돼 있는 것과 같은 내용의 발언을 했는지 확인해 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 전두환의 발언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담긴 5장짜리 손글씨 문서를 확인했다. 역시 오랫동안 5.18을 연구해 온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이 보관하고 있던 문서였다. 문서의 제목은 ‘전두환 CIA부장서리의 발언’. 문서에는 1980년 5월 22일 신라호텔에서 이 문서가 작성됐다고 적혀 있었다.

▲ 1980년 5월 22일 전두환의 기자간담회 발언내용을 적은 것으로 보이는 손글씨 문서를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이 공개하고 있다. 문서에는 1980년 5월 22일 신라호텔에서 전두환이 발언한 내용을 적었다고 기록돼 있다.

1999년 독일인 목사 슈나이스 자택에서 발견된 5장짜리 손글씨 문서

확인결과, 손글씨 내용은 5.18연구가인 김용철 씨가 공개한 일본어 소책자 내용과 동일했다. 일본어 소책자의 내용이 손으로 쓴 5장짜리 한글 문서를 번역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서를 공개한 정 전 회장은 “이 손글씨 문서의 내용은 5.18 광주학살에 대한 전두환의 책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말했다.

전두환은 언론사 대표들에게 ‘광주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보고받고 있다’거나 ‘곧 광주를 유혈진압한다’고 발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진압날짜까지 특정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자신이 광주유혈진압의 실권자이며 작전지휘관이라는 사실을 본인이 시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문서입니다. ‘광주학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전두환의 그간의 주장이 왜 거짓말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문서라고 평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전두환이 언론사 대표들에게 말했다는 문서 내용 중 시민군이 장갑차 20대를 훔쳤다거나 조직폭력배들이 시위를 주동한다는 내용 등은 모두 허위사실입니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

취재진은 정수만 전 회장이 공개한 5장 분량의 문서를 꼼꼼히 살펴봤다. 군이 광주 외곽을 포위하고 있고, 2시간 내에 광주를 진압할 자신이 있다는 내용과 함께 전두환이 “신군부에 맞서는 언론인은 언제든지 체포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정수만 전 회장의 주장대로, 광주학살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알지도 못했다는 전두환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었다.

정 전 회장은 이 5장짜리 손글씨 문서를 “독일에서 1999년경 발견했다”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한국에서 활동하며 민주화인사들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슈나이스 목사의 독일 자택에서 이 문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슈나이스 목사는 1980년 5월 당시 독일 NDR방송국의 일본특파원이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에게 광주소식을 처음 알렸던 인물로, 2011년 ‘오월어머니상’을 받기도 했다.

뉴스타파는 슈나이스 목사와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을 거쳐, 광주항쟁 39년만에 확인된 이 문서의 주요 내용을 공개한다.

전두환 CIA 부장서리의 발언
5월 22일 각 언론기관장과의 간담
오후 3시 신라호텔


<광주사태>
1. 군이 광주 외곽을 포위하고 고립화 함으로써 목포등지에서의 유입인원 차단.
2. 광주비행장에 무전연락실 설치 현지상황 수시보고, 파악
3. 혼란 계속되고 있으며 무기탈취는 보도내용보다 많다. 광주시내 철물상회도 주요 약탈 대상이었다.
4. 고교생이 M1 총을 들고 파출소에 들어가면 순경이 총을 버리고 달아나는 일들이 많았다.
5. 앞으로 무기탈취를 당한 자는 군법회의회부 방침이다.
6. 군 장갑차(아세아 자동차 출고예정분 포함) 20대 탈취 당했다.
7. 공수단복장 괴한 10대 트럭 분승 무등산으로 올라가며 ‘드디어 호남군인 일어나 경상도 군인 죽이려 궐기했다’고 선동. 이들이 해안을 통해 일북 기도할 가능성 있어 해군이 해상봉쇄 중.
8. 미항모 5월 23일 진입.
9. 군은 시가전 각오한 일대 작전을 준비중이다. 군에는 고도의 훈련받은 병력 많다. 작전할 경우 2시간 내 진압할 자신있다. 그러나 이 작전은 될 경우 양민이 인질로 붙잡힐 가능성이 우려된다.


<언론문제>
1. 현지기자들의 사태보도 허용하겠다.
2. 광주시민들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KBS광주 중계소 방송듣고 이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 아님을 확인하였다. 정확한 사실을 말해 줄 필요가 있다. 5월 23일 오후부터 개성있는 보도를 하도록 풀겠다. 그러나 검열은 형식상 받아야 한다.
3. 최근의 언론 내부실태 잘 알고 있다. 누가 어떻게 노는지 알고 있다. 경영권을 경영권자가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이것은 주요 문제다. 사태해결 후에도 계속된다면 조사한 바에 따라 체포도 불사하겠다. 그러나 그런 일 없도록 내부적으로 노력해 달라.
5. 군은 결심한 이상 물러설 수 없다.
6. 언론 간부, 경영인도 동조내지 묵인하는 행동을 한다면 일찌기 보지 못했던 조치를 취할 각오가 돼 있다.

* 24일 기해 광주 시가전 각오. ‘대작전 펴겠다’

※ 전두환 CIA 부장서리의 발언 문서 원본 보기(링크[뉴스타파 DATA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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