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살이 벌어진 1980년 5월 당시 전두환의 일정이 적힌 문서를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5월 1일부터 31일까지 일요일을 제외한 27일간의 일정이 손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뉴스타파는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가 확보해 보관하고 있는 서류더미에서 이 일정표를 발견했다.

1980년 5월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하며 사실상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었다. 전두환은 실권자답게 시간대 별로 숨가쁜 일정을 보냈다. 거의 매일 아침 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와 중앙정보부(이하 정보부)의 보고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계엄령 발동 이후 계엄군사령관이 아니면서도 수시로 청와대를 찾아가 대통령을 만났다.

광주학살 전후에 전두환이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뭘 했는지는 그 동안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1995년 검찰수사와 5공세력들이 스스로 기록한 ‘5공전사’, 그리고 2017년 전두환이 낸 자서전에 일부 일정이 기록돼 있지만, 전두환의 행적을 온전히 보여주지는 못했다. 뉴스타파는 광주학살 39년 만에 처음 확인된 이 일정표를 통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광주학살 당시 전두환의 행적을 다시 추적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전두환 일정표’는 27장짜리 손글씨 문서다. 1980년 5월 1일부터 31일까지 하루에 한 장씩 기록돼 있다. 일요일(5월 4일, 11일, 18일, 25일) 일정표는 여기에 들어있지 않았다. 문서는 국방부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가 확보한 5·18관련 기록더미에서 발견됐다.

이 기록에는 일정표의 주인이 누군지를 보여주는 흔적이 곳곳에 들어 있다. ‘보고 및 결제(보)’, ‘재경 부서장회의(중)’, 그리고 ‘청와대방문’ 같은 내용들이다. 문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취재진은 기록에 등장하는 ‘보’가 보안사령부, ‘중’은 중앙정보부를 뜻하는 표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1980년 당시 보안사와 정보부의 보고를 동시에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은 전두환 이외에는 떠올리기 힘들다.

‘전두환 자서전’에 등장하는 일정 4개, ‘전두환 일정표’와 정확히 일치

취재진은 이 일정표가 정말 전두환의 행적을 담은 기록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2017년 4월 전두환이 펴낸 자서전 ‘전두환 회고록’ 내용과 비교해 봤다. 전두환 자서전에 등장하는 총 5개의 일정과 대조했다.

확인 결과, 전두환이 자서전에서 밝힌 80년 5월 당시의 행적 5건 중 4건이 뉴스타파가 입수한 일정표 내용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머지 1건은 전두환이 일정표를 작성하지 않은 5월 25일(일요일)의 기록이어서 비교가 불가능했다. 아래 표는 뉴스타파가 입수한 ‘전두환 일정표’ 내용과 전두환 자서전을 비교한 것이다.

▲ 뉴스타파가 입수한 1980년 5월 ‘전두환의 일정표’

<'전두환 자서전'과 '전두환 일정표' 비교>

국방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가 확보한 5·18 관련 서류더미에서 이 문서를 처음 발견한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문서를 보는 순간 이것이 전두환의 일정표라는 사실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이재의 연구원은 5·18 관련 최초 기록으로 평가받는 출판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쓴 저자 중 한 사람이다.

전두환, 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유혈진압 후 ‘저녁 만찬’

뉴스타파는 새롭게 확인된 ‘전두환 일정표’를 통해, 광주학살이 벌어진 1980년 5월 전두환의 행적을 다시 살펴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가지 눈에 띄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전두환은 거의 매일 보안사와 정보부의 보고를 받았다. 오전 8시 보안사 보고를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딱 하루 예외적인 날이 있었다. 바로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있던 시민군을 공격해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80년 5월 27일이다.

이 날 전두환은 평소보다 1시간 이른 오전 7시에 보안사의 첫 보고를 받았고, 곧바로 총리실을 방문했다. 전두환이 보안사 보고를 받은 오전 7시는, 새벽 4시 30분쯤 시작된 전남도청 유혈진압이 끝나고 30분 정도가 지난 시간이었다.

일정표에 따르면, 전두환은 전남도청을 유혈진압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5월 27일 저녁 ‘만찬’을 가졌다. 하지만 누구와 벌인 만찬인지는 기재하지 않았다.

전두환이 광주학살 전후 중요한 고비고비마다 청와대를 방문한 사실도 일정표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전두환은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5월 17일에는 청와대를 2번 방문했으며,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표가 벌어지기 바로 전날인 5월 20일 오후에도 청와대를 찾아가 대통령을 만났다. 5월 20일은 전두환이 주도해 시위진압에 소극적이었던 광주지역 작전책임자의 교체(윤흥정→소준열)가 결정되고, 특전사령관 정호용이 공수부대원 1300여 명을 광주에 추가 투입하는 등 유혈진압을 본격 준비한 날이었다.

광주에서 집단발포가 벌어지기 전날인 5월 20일 전두환이 청와대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 일정표가 공개되기 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전두환 일정표’와 5·18 주요 사건일지>

공수부대 추가 투입된 5월 20일 ‘전두환의 청와대 방문’ 최초 확인

그 외에도 전두환은 광주 주남마을에서 양민 10여 명이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하고, 특전사령관 정호용이 광주를 방문해 강경진압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5월 23일 오후에도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만났다.

1996년 전두환의 내란혐의 공소장에 따르면, 당시 정호용은 전두환이 써 준 친필메모를 들고 광주를 방문한 뒤 메모를 작전책임자인 소준열 전교사령관에게 전달했다. 당시 전두환의 메모에는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두환의 80년 5월 행적과 관련해 그 동안 가장 많은 관심을 끈 문제는 ‘광주학살이 벌어질 당시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했는지’ 여부였다. 5·18 당시 광주에서 활동했던 전직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 씨의 증언이 나오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김 씨는 지난 5월 1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벌어진 80년 5월 21일, 전두환이 광주를 방문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용장 씨의 발언은 전두환이 그동안 해 온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어서 큰 관심을 끌었다. 전두환은 2016년 언론과의 인터뷰, 2017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모두 “(나는) 광주학살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사이의 그 어느 시간에도, 전남 광주의 그 어떤 공간에도 (나는) 실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었다.

광주항쟁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80년 5월 당시 ‘전두환의 광주 방문 여부’는 5·18진실규명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럼 뉴스타파가 확보한 전두환의 일정표에는 전두환이 광주에 왔다고 지목된 80년 5월 21일이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

▲ 지난 5월 13일, 1980년 5월 당시 미군 정보요원으로 활동했던 김용장 씨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김 씨는 이 날 “전두환이 1980년 5월 21일 광주를 방문했다”고 주장했다.(왼쪽) ‘전두환의 일정표’에는 5월 21일의 일정이 ‘석가탄일’이라고만 기재돼 있다.

전두환 광주 방문 지목된 5월 21일, 일정표엔 ‘석가탄일’로만 기재

1980년 5월 당시, 전두환은 거의 매일 여러 개의 일정을 숨가쁘게 소화했다. 일요일에는 일정표를 작성하지 않았다. 5월 4일과 11일, 18일과 25일의 일정표가 남아 있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가 벌어졌고, 전두환이 광주에 갔다고 지목된 5월 21일은 공휴일이었지만 일정표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일정표엔 ‘석가탄일’이라고만 기재돼 있을 뿐, 하루 종일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뭘 했는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일정표 자체를 만들지 않았던 4번의 일요일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1980년 5월 ‘전두환의 일정표’는 5월 31일까지 기록돼 있다. 그리고 일정표가 끝나는 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는 마지막 관문 역할을 해 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즉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오후 1시 30분에 첫 회의를 시작했고, 전두환이 이 회의에 참석했다고 기록돼 있다. 전두환은 당시 국보위의 최고실세인 상임위원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