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의 습격
2016년 04월 23일 00시 34분
2018년 3월 12일 한국 YWCA, 경실련 소비자 정의센터 등 57개의 소비자/학부모/농민단체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GMO 완전표시제’ 국민청원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한 달 만에 21만여 명이 국민청원에 참여했다.
대한민국은 식용 GMO, 즉 식용 유전자변형작물 수입 1위 국가다. 식용 GMO의 수입품목은 대두(콩)와 옥수수인데, 2017년 한 해 동안 228만 2천 톤을 수입했다.
현행법규정에는 GMO 표시제가 시행되고 있다. 2017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유전자변형식품 표시제도 고시'에 따르면 유전자 변형작물을 원료로 사용한 가공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에 유전자변형식품임을 표시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 시중에 유통되는 가공식품들을 보면 GMO가 표시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도의 정제과정 등으로 유전자 변형 DNA 혹은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을 경우 GMO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 때문이다.
GMO 콩과 옥수수는 대부분 식용유나 전분, 전분당, 간장 등으로 가공되어 제품화되거나 식품첨가물로 쓰이는데, 식용유는 GMO 콩과 옥수수로부터 지방 성분만을 뽑아낸 것이고 전분과 전분당은 탄수화물만을 뽑아낸 것이기 때문에 유전자변형 DNA가 들어있는 단백질 성분이 거의 없다. 간장의 경우는 발효와 정제 과정에서 단백질이 분해된다. 현재의 기술로는 이들 제품에서 유전자변형 DNA를 검출하기가 불가능하다.
수입산 콩과 옥수수를 원료로 한 식용유, 간장, 전분, 물엿, 액상과당 등의 제품과, 콩기름(대두유) 또는 옥수수 전분과 물엿 등이 첨가된 빵,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 주류, 어묵, 햄, 참치 통조림 등 수많은 가공식품에 GMO 원료가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 제품은 모두 위의 예외조항에 따라, GMO 표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것이다.
청원 단체들이 주장하는 ‘GMO 완전표시제’의 핵심은 유전자변형 DNA의 검출 여부와 상관없이 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하여 만든 제품에는 모두 GMO 표시를 하자는 것이다. 이는 GMO를 사용한 식품인지 소비자들이 알고 선택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GMO 완전표시제'는 식품산업계에서 오랫동안 반대해왔다. 주무 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산업계의 반대와 정부 부처 간 이견을 이유로 ‘GMO완전표시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식품산업계가 GMO 완전표시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유전자변형 DNA가 검출되지 않는 제품에 대해 서류만으로 유전자변형작물을 원료로 사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구분유통증명서와 정부증명서 등의 서류로 원재료의 유전자변형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둘째, ‘GMO 완전표시제’를 실시할 경우 식품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결과를 보면 이런 주장이 무색해진다. 한국식품산업협회의
사단법인 농정연구센터의
한국식품산업협회 송성완 부장은 <뉴스타파 목격자들>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Non-GMO 콩을 사용할 경우 1.8L 한 병에 4천 원 하는 식용유 가격이 5천 원 정도로, 약 1천 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부터 중`고등학교 급식에서 Non-GMO 학교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경기도 광명시와 부천시의 사례를 통해 실제로 비용 상승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부천시의 경우 간장, 식용유, 전분, 물엿 등을 Non-GMO인 국내산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면서 급식비가 2.25% 정도 올랐다. 광명시는 Non-GMO 친환경 식재료 17가지를 사용하면서 3,000원 기준인 한 끼 급식 단가가 111원 더 올랐다고 밝혔다. 완전표시제를 실시할 경우에도 물가가 크게 상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Non-GMO 급식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시민사회의 GMO 완전표시제 시행 요구에 대해 산업계, 소비자단체, 전문가 그룹 간의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며 그동안 답변을 미뤄왔다. 식약처가 말하는 사회적 합의의 실체는 2013년에 구성해 활동중인 자문기구 ‘GMO표시제도 검토 협의체’다.
GMO 표시제도 검토협의체 위원은 모두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식약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명 가운데 8명은 소비자단체, 8명은 식품산업계, 4명의 학계 전문가다. 식품산업계 측 8명 위원 중 4명은 GMO 작물을 직접 수입하는 식품기업 소속이다.
그런데 <뉴스타파 목격자들> 취재결과, GMO 표시제도 검토협의체 운영과 위원 자격과 관련해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됐다.
첫째 회의 내용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GMO 표시제도 검토협의체는 회의록을 대외적으로는 물론 위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운영규정에도 회의록 작성과 비치 의무 조항이 없다.
대신 참여 위원들에게는 엄격한 비밀유지 의무를 강조한다. 검토협의체에 소비자단체 측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의 윤철한 팀장은 “제도적으로 회의 내용 공개를 막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식약처가 납득하기 어렵게 검토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는 소비자단체 측 일부 위원들의 자격과 적절성 논란이다. 식약처의 GMO 표시제도 검토협의체 운영규정에는 위원의 자격 조항이 있는데, 이 중 4조 2항을 보면 ‘소비자단체 또는 소비자 관련 기관의 소속인 자’가 소비자단체 측 위원의 자격요건이다.
그런데 식약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소비자단체 측으로 분류돼 있는 정해랑 위원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대표로 있는 ‘영양과 미래’는 주식회사 형태의 연구개발 업체다 소비자단체라고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또 이 업체는 식약처와 식품산업계 등의 연구용역을 다수 수행한 바 있다.
정해랑 위원은 목격자들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자신이 “소비자단체 측 위원으로 추천된 것인지 몰랐다”고 답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은 정해랑 위원이 소비자단체 측 위원으로 선정된 경위와 적절성 여부에 대해 식약처에 질의했지만 식약처는 답변하지 않았다.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자격으로 검토협의체 위원이 된 조윤미 C&I소비자연구소 대표는 2016년에 녹색소비자연구소를 탈퇴한 후에도 위원직을 유지하고 있어 위원 자격 논란이 제기된다. GMO 검토협의체 운영 규정에는 ‘위원의 임기는 해당 직위를 유지할 때까지’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격자들 제작진은 조윤미 위원이 계속 위원직을 유지하게 된 경위와 함께 규정 위반에 해당하는 것 아닌지 식약처에 물었지만 역시 답변을 받지 못했다. 조윤미 위원은 목격자들 제작진에게 “녹색소비자연대 탈퇴 이후에도 위원을 계속해도 되는지 식약처에 물었고 식약처에서 문제 될 게 없다는 답변을 받아 계속 활동했다”고 해명했다.
소비자단체 측 위원인 한국소비자연맹의 이향기 부회장은 이해상충 논란이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유전자변형작물 개발을 추진해온 농촌진흥청 바이오그린21 사업단으로부터 2015년도까지 GMO 홍보, 교육, 조사 사업 등으로 11건의 지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GMO 표시제를 검토해야 하는 소비자 단체 측 위원으로서의 입장과 이해 상충의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식약처는 관련 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위원 활동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답했다.
목격자들 제작진은 이향기 부회장 측에 연락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이 부회장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그가 속해 있는 소비자연맹 측은 이향기 부회장의 이해상충 문제를 인정하고 검토협의체 파견 위원 교체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공교롭게도 위 3명의 소비자 측 위원들은 2016년 7월 개최된 검토협의체 회의에서 식품산업계와 함께 GMO 완전표시제에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GMO 표시제도 검토협의체의 비공개 운영과 일부 위원의 대표성에 대한 논란은 검토협의체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불신하게 만들고 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제기한 식약처 GMO 표시제도 검토협의체의 투명하지 않은 운영과 일부 위원들의 자격 논란과 관련해 결국 식약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토협의체를 새롭게 구성하여 제도 개선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새로 구성할 위원의 선정 방법과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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