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동(朝東)100년] ⑦ 45년 전 신새벽, '진짜 기자'들 거리로 내쫓기다

2020년 03월 17일 08시 00분

45년 전 오늘, 1975년 3월 17일 새벽. 200명 넘는 괴한들이 술냄새를 풍기며 동아일보사 공무국 출입문을 해머로 부수기 시작했다. 당시 동아일보 사옥(현 일민미술관) 3층과 4층에선 동아일보, 동아방송 언론인들이 자유언론 실천을 외치며 닷새째 농성 중이었다.

젊은 언론인들은 각목 등을 손에 든 괴한들에게 강제로 끌려 나왔다. 이렇게 동아일보사에서 쫒겨난 이들 중 대다수는 두 번 다시 신문사에 돌아가지 못했다.

▲ 1975년 3월 17일 거리로 내몰린 동아일보, 동아방송 언론인들

농성에 참여했다가 거리로 쫓겨난 정연주 기자는 “일생을 되돌아보면, 1974년 10월 24일 그날과 75년 3월 17일 이날 현장에 참여했던 것이 내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그의 나이 29살, 기자 생활 5년차를 맞고 있었다.

이에 앞서 1975년 3월 11일, 자유언론수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던 조선일보 기자 30여 명이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 가운데 32명도 영영 이 신문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 1975년 3월 11일, 자유언론수호를 외치다 농성 6일만에 쫓겨난 30여명의 조선일보 기자들 (출처: <자유언론, 내릴 수 없는 깃발 - 조선투위 18년 자료집>, 사진: 김천길 기자)

13년이 지난 1988년, 국회 언론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동아일보 회장 김상만은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편집국 사원들이 공장을 점거해서 신문을 낼 수 없었기에, 할 수 없이 공장문을 뚜드려 깨고 탈환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동아일보 주필이던 이동욱은 “각목은 위협이었다. 직원들이 순순히 다 나와서 한 명도 다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 탄압은 극심해졌다. 독재 권력과 사회 부조리를 고발했던 뜻있는 기자들은 테러를 당했고, 수시로 정보기관에 끌려갔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언론사에 상주했고 편집을 간섭했다. 동아, 조선 두 신문은 박정희와 유신 찬양 기사로 도배됐다. 민주화를 바라는 목소리는 지면에서 사라졌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민주화 요구하는 데모도 1단으로 조그맣게 보도되다가 그것마저도 나중에는 없어져 버리고 보도를 못했어요. 가까스로 생존을 유지해가면서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 상태, 견디지를 못해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인권 운동, 노동 운동은 전혀 보도되지 못했어요. 물가가 폭등하는데 물가인상에 관한 것도 기사를 쓸 수가 없었어요. 도농 간의 소득 격차에 대해서도 쓸 수가 없었고, 그냥 온갖 것을 금기했어요.”

신홍범 전 조선일보 기자, 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

취재 현장에서 젊은 기자들은 “도둑 앞에서 꼬리치는 강아지”라며 조롱당했고, “개와 기자는 접근 금지”라는 푯말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낀 동아와 조선의 젊은 기자들은 자유언론수호 실천을 잇따라 선언했다. 정보기관원들의 언론사 출입 금지를 요구했고, 기자가 중앙정보부나 수사기관에 연행되면 전 사원이 퇴근을 하지 않고 풀려날 때까지 회사에서 기다리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젊은 기자들은 무엇보다 제대로 된 기사를 내보기 위해서 싸웠다. ‘1단 기사 깨기’부터 시작했다. 신문 지면에서 1단은 세로 최소 단위(3.3cm)로 가장 작게 쓴 기사를 의미한다. 당시 유신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는 보도되지 못했다. 또한 보도되더라도 모두 1단으로 처리됐다. 기자들은 편집국 간부들과 싸우며 기사를 키워 나갔다.

▲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수호실천선언 이후 20여일 만인 11월 21일자 동아일보 7면, 유신독재 시위를 하다 구속된 대학생들을 석방하라는 가족들의 시위 사진과 함께 “기본권 회복을 기원”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젊은 기자들의 저항은 권력과 사측에 의해 꺾이고 말았다. 1975년 자유언론을 수호하기 위해 나섰던 언론인들은 동아일보에서 134명, 조선일보에서 32명이 해직됐다. 1988년 언론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당시 동아일보 회장 김상만은 이렇게 주장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이 무더기로 쫓겨난 이후, 언론은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암흑 시대로 들어갔다.

“저는 처음부터 동아일보 경영진은 박정희 권력하고 맞서서 싸울 의지가 없었다고 봅니다. 되새겨 보면 당시 경영진은 전혀 의지가 없었어요. 동아일보든, 조선일보든 경영진이 만약에 현장에 있는 기자들, 저항하고 있던 기자들하고 정말 소통을 제대로 했다면, 유신 정권의 서슬퍼런 권력 치하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가라고 소통을 제대로 했더라면, 옳은 길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길을 모색했다면…”

정연주 전 동아일보 기자, 전 KBS 사장

젊은 기자들이 독재에 맞서 저항하며 자유언론을 지키려 나섰을 때, 동아와 조선의 사주는 독재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갔을까. 거대신문 사주와 권력의 유착을 다음(3월 20일) 편에서 공개한다.


제작진
취재박중석 김용진 조현미 홍주환
데이터최윤원
촬영최형석 신영철
편집박서영
그래픽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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