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동(朝東)100년] ⑤ '제호 위 붉은 일장기' 조선일보 원본 첫 확인

2020년 03월 13일 08시 00분

뉴스타파는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디자인연구소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지면을 전수 분석해 조선일보가 모두 11차례에 걸쳐 1면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 인쇄한 사실을 확인해 보도한 바 있다.

조선일보가 제호 위에 일장기를 새긴 적이 있다는 건 언론 단체와 연구자들 사이에선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새해 첫날이나 각종 기념일을 맞아 모두 11번이나 일장기 제호 지면을 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또한 조선일보가 제호 위에 일장기를 당시 붉은색으로 컬러 인쇄했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국회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열람 가능한 일제강점기때 조선일보 지면은 원본이 아닌 흑백 PDF 파일이나 마이크로 필름 형태였기 때문이다.

취재진은 컬러 인쇄 여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먼저 조선일보가 일장기를 컬러로 인쇄하는 방안을 내부에서 논의했다는 조선총독부 비밀문서를 찾아냈다.

1938년 일제 종로경찰서장이 경기도 경찰부장에게 보고한 <조선일보사의 비국민적 행위에 관한 건>이다. 이 문서에는 조선일보 주필 서춘을 중심으로 1937년부터 1면에 붉은 일장기를 인쇄하자는 내부 논의가 있었다는 내용의 일제 경찰의 첩보가 기록돼 있다.

▲ 1938년 일제 종로경찰서장이 경기도 경찰부장에게 보고한 문건. 1937년부터 1면에 붉은 일장기를 인쇄하자는 조선일보 내부 논의가 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자료)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1936년 말에 당시 주필이던 서춘이 ‘37년 신년호부터 붉은색 일장기를 인쇄해서 내보낸다’라고 하는 것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부의 반발 등 조선일보 내부의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실제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신 조선일보는 1937년 신년호부터 일왕 부부의 사진을 크게 싣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붉은색 일장기’ 내부 검토, 조선총독부 비밀문서에 확인

취재진은 지난 2월 조선일보에 PDF 형태로 제호 위에 흑백 일장기가 확인되는 1940년 1월 1일자 신문의 원본 열람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조선일보 측은 “(조선일보를) 폄하하고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후 뉴스타파는 조선일보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 등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한국연구원에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신문 원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취재진은 한국연구원의 협조를 얻어 연구원 귀중본실에 보관돼 있는 조선일보 원본을 볼 수 있었다.

김상원 한국연구원 원장은 “일제강점기에 발행한 한글 신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50-60년대 인사동 고서점 등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문 원본을 수집해 소장해 왔다”고 말했다.

8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온 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원본은 누렇게 변색돼 있었다. 신문지는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바싹 말라 있었다.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신문을 들췄다. 히로히토 일왕 부부의 사진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80년이 흘렀지만 조선일보 제호 위 일장기는 여전히 붉은 색으로 선명하게 인쇄돼 있었다.

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원본, 제호 위에 선명한 ‘붉은 일장기’

취재진은 1월 1일자뿐만 아니라 1월 3일, 5일자에도 조선일보 제호 위에 일장기를 컬러 인쇄했음을 확인했다. 붉은 일장기가 제호 위에 새겨진 조선일보 신문 ‘원본’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조선총독부 기관지나 일본어 신문이 본국을 향한 충성의 표시로 제호 위에 붉은 일장기를 인쇄한 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민족지’임을 내세운 조선일보도 똑같은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 한국연구원이 귀중본실에 보관하고 있는 1940년 1월 1일자 조선일보 1면 지면 원본. 제호 위 붉은 일장기가 선명하다.

▲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1940년 2월 11일자 1면.

조선일보는 지난 3월 5일 창간 100년을 맞아 기사 아카이브를 공개하면서 붉은 일장기가 인쇄된 지면도 함께 공개했다. 뉴스타파가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지면을 전수 분석해 11차례나 1면 제호 위에 일장기를 올려 인쇄한 사실을 파악했는데, 확인 결과 이 11건의 지면 모두 붉은색으로 일장기를 컬러 인쇄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일왕이나 일제에게 특별한 날인 경우 그 날짜 신문 제호 위에 붉은 일장기를 새겨 올렸다. 그 날의 의미를 이해하면 일제를 향한 조선일보의 충성이 더욱 확연해진다.

우선 2월 11일은 일본의 ‘기원절’이다. 첫 일왕으로 알려진 ‘신무천황’(神武天皇)이 즉위했다는 날이다. 3월 10일은 일제 육군기념일이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제가 봉천(奉天)전투에서 승리한 날을 기념했다. 3월 21일은 ‘춘계황령제’(春季皇靈祭)인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을 맞아 일왕이 역대 일왕을 기려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이날은 지금도 일본에선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일왕 생일, 일왕 제삿날, 야스쿠니신사 합사 기념으로 ‘붉은 일장기’

4월 3일은 ‘신무천황제’(神武天皇祭)로 ‘신무천황’의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4월 30일은 히로히토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 다음 날이다. 일본은 2005년부터 히로히토 생일을 ‘쇼와의 날’로 지정했다. 5월 27일은 일제 해군기념일이다. 1905년 러시아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날을 기념했는데,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이 기념일은 폐지됐다. 또 7월 7일은 ‘지나사변’, 즉 중일전쟁 3년을 기념하는 날로 이 때도 조선일보는 제호 위에 붉은 일장기를 새겨 넣었다.

1940년 4월 25일 조선일보는 제호 위에 ‘정국신사임시대제일(靖國神社臨時大祭日)’을 기념하는 ‘붉은’ 일장기를 올렸다. ‘정국신사(靖國神社)’, 즉 야스쿠니 신사는 일제가 저지른 침략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특히 침략 전쟁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돼 있다.

일제는 1940년 4월 23일부터 4월 25일까지 중일전쟁 등에서 사망한 1만 2천 799주(柱)의 새로운 ‘호국영령’을 야스쿠니 신사에 ‘신진(神鎭)’ 즉 신으로 모시는 행사와 제사를 지냈다. 조선일보는 일제의 야스쿠니 합사 제사를 기념해 제호 위에 ‘붉은 일장기’를 인쇄한 것이다.

이처럼 일왕과 일제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에 제호 위에 붉은 일장기를 새겨 일제에 충성을 다한 조선일보는 1940년 8월 동아일보와 함께 폐간된다. 당시 두 신문은 왜 폐간했을까. 뉴스타파는 두 신문의 폐간 과정에서 벌어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다음 편(3월 16일)에서 공개한다.

뉴스타파는 조선일보 창간일인 3월 5일부터 동아일보 창간일인 4월 1일까지 조선과 동아 두 신문의 정체를 알리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하고 이를 토대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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