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노 착취' 때문일까

2023년 01월 31일 14시 00분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해법

노동, 연금, 교육. 윤석열 정부가 주창하는 3대 개혁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노동개혁을 우선순위로 꼽고 있습니다. 지난달 청년들을 만나 '3대 개혁 중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것은 노동개혁'이라고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근로시간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을 노동개혁의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올해 초 발표된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 담겼습니다. 근로시간의 규제를 풀기 위해 기존 주 단위로 헤아리던 근로 시간을 월이나 연 단위로 바꾸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파견 대상을 확대하는 이른바 ‘파견 제도 선진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특히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는 윤 대통령이 누차 강조한 핵심 과제입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노동시장이 임금과 안정성 등 근로조건에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시장으로 나뉜 현상을 말합니다. 통상적으로 대기업 정규직에 해당하는 약 10%의 일자리를 1차 노동시장,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 90%의 일자리를 2차 노동시장으로 분류합니다. 두 노동시장은 상호 이동이 어려운 데다 임금, 근속연수 등 근로조건의 격차가 매우 큽니다. 소득불평등, 청년실업, 여성 고용 부진, 자영업자 양산 등과 같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이른바 상생임금위원회를 구성해 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에 대한 제도적인 해법을 찾겠다는 방침입니다. 중점적으로 논의하게 될 내용은 임금 체계 개편입니다. 현행 연공급제의 임금 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로 바꾸면 양질의 일자리를 더 늘릴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기조를 따라오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해 사회 전반의 임금 체계를 바꿔나가겠다는 계획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어서 노동계와 재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쟁점 사안입니다. 결국 정치권이 균형을 잡고 절충안을 만들어가야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윤석열 대통령과 여권의 생각은 다분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노동개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노- 간 비대칭 구조. 흔히 이를 이중 구조라고 쓰지만 정확하게는 착취 구조.

윤석열 대통령 2023년 1월11일 역대 경사노위원장 오찬
귀족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022년 12월 고위당정협의회
정부 여당은 연일 '노조 때리기'에 혈안입니다. 노-노 착취, 즉 귀족노조로 불리는 고임금 노동자들의 기득권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우가 악화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전경련이나 경총 등 사용자 단체가 꾸준히 제기해 온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인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노동계는 이처럼 재계의 논리를 대변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보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재벌과 대기업에 대해서만 법과 원칙을 완화해 준다(한국노총)”라고 하거나 “재벌 대기업과 경영계의 오랜 숙원을 민원처리하듯 앞장서서 개악에 나서고 있다(민주노총)”라며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양단의 대치가 펼쳐지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노사 양측 모두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인한 소득의 양극화, 불평등의 심화는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라면 노동자는 양질의 일자리를, 기업은 양질의 노동력을 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첫 단추부터 꼬여버린 노동 개혁, 어디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요? 윤석열 표 노동개혁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요?

핵심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90%에 이를 정도여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재벌기업 중심의 성장 구조 속에 자츰 벌어지던 대기업-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급격히 심화됐습니다.  파견법, 기간제법이 시행되면서 사내하도급과 비정규직이 급증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다음 표는 2021년 기준 300인 이상 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300인 이하 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비교한 것입니다.
▶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놓았을 때 대기업 비정규직 69, 중소기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각각 59와 46 수준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을 100%으로 놓았을 때 중소기업 정규직의 임금은 59%로 대기업 비정규직의 임금 69%보다도 적습니다.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대기업의 비정규직은 중소기업의 비정규직보다도 1.5배나 더 많은 임금을 받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도 무시할 순 없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보다 더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임금격차 해소방안에 관한 정책연구(2022)에서도 전체 임금 불평등에 미치는 요인 가운데 사업체 내의 임금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보다 사업체 간의 임금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이 2배 정도 크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말처럼 대기업 노동자가 중소기업 노동자의 몫을 빼앗아가기 때문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지난 2000년대 이후 많은 연구가 이뤄져 왔습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의 송상윤 연구위원이 기업규모간 임금격차 원인 분석 논문에서 내린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규모간 임금격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노동자 특성이다. 학력이 높고 경력이 긴 숙련 노동자의 대기업 쏠림 현상이 임금격차를 확대시킨다. 
  • 원하청기업 간 수직관계로 인한 구조적 문제, 성과급 지급과 성과공유제도가 기업 규모간 임금격차를 확대시킨다.
부경대 경제사회연구소 문영만 연구교수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 및 결정요인 논문에서도 비슷한 요인들을 지적합니다.
  • 근속연수와 학력의 차이가 임금격차를 높인다.
  • 노조조직률이 높을수록 임금수준을 높인다.
  • 중소기업의 대기업에 대한 거래 집중도가 높을수록 임금을 낮춘다. 기술혁신과 연구개발비, 자본 집약, 노동생산성 변수가 중소기업 임금을 높인다.
정리하면, 임금격차의 요인은 크게 노동자 측면과 기업 측면 2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노동자 측면을 보면 대기업 노동자일수록 △ 학력이 높고, △ 근속연수가 길고, △ 노조 가입률이 높기 때문에 임금 격차가 생긴다는 것이고, 기업 측면에서 보면 △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수직적인 관계로 인한 불평등한 구조 등이 임금 격차를 확대시킨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을 보든 대기업 노동자의 기득권이 이른바 '노-노 착취'를 낳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부추기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정부가 연일 '노조 때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2차 노동시장 노동자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선 오히려 이들에게 노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부는 이 점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현 정부의 인식처럼 이른바 ‘귀족 노조’와 저임금 노동자의 대립 구도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를 보는 것은 잘못된 비교 방법”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구조 문제로 바라봐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대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과하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 사실무근이라면, 2차 노동시장의 저임금 구조를 만드는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요?
다음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지난 10년간 소득소득분배율 추이입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 가운데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합니다.
2021년 중소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은 81.6%, 대기업은 56%로 나타났습니다. 2017년 이후 소폭 줄어들던 격차는 2020년부터 다시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이 82%나 된다는 것은 기업이 100만 원을 벌어도 80만 원 넘게 인건비로 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60~40%밖에 되지 않는데 이렇게 인건비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중소기업의 이윤이 적고, 추가 인건비를 지급할 여력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대기업은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면서도 노동소득분배율이 훨씬 낮습니다. 중소기업에 비해 생산성이 높아 이익을 많이 남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벌어진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 임금격차에도 불구하고 임금 상승의 여력은 오히려 대기업 쪽에 있는 셈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노동소득분배율은 인건비를 부가가치, 즉 인건비, 영업잉여, 금융비용 세가지 요소의 합으로 나눈 수치입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만들어낸 부가가치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 부가가치는 인건비와 영업잉여, 금융비용의 합.
▶2021년 기준 대기업의 영업잉여가 중소기업의 3배 가까이 되고 있다. 
부가가치 구성요소 가운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은 영업 잉여(노란색 부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 부분입니다.  2021년 기준 대기업의 영업잉여 비중이 중소기업에 비해 3배 가까이 높습니다. 
같은 100만 원을 벌어도 중소기업은 인건비로 약 73만 원을 지불하고 10만 원을 남기는 데, 대기업은 43만 원 정도만 인건비로 지불하고 30만 원을 남겨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책적 수단을 고려하기 이전에 일단 중소기업의 숨통부터 틔워줘야 하는 셈입니다. 역시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습니다.
문영만 부경대 경제사회연구소 연구교수는 “중소기업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을 위해서는 영업잉여의 핵심인 영업 이익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부품 단가 현실화와 기술혁신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합니다.

불평등한 원하청 구조 해소가 선결 과제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중소기업의 인건비 비중과 대기업의 인건비 비중은 격차가 크다. 
돈 많은 대기업은 임금 인상의 여력이 되고, 중소기업은 임금에 짤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당연하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인건비 비중 격차가 가장 큰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은행 경기본부 보고서는 대기업 인건비 비중이 낮은 이유를 우리 사회 특유의 대기업-중소기업 관계, 원하청 구조에서 찾습니다. 외주가공비 등을 통해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의 인력을 이용하고, 압도적인 협상력의 차이로 인 중소기업의 몫으로 돌아갈 이윤까지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정 거래 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도급법의 실효성을 확보하도록 하고, 대기업에 대한 중소기업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문가들은 정말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중소기업의 노조조직률을 높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해소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윤석열 대통령은 누차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당연한 해법 대신 '노조 때리기'에 몰두하는 걸까요? 
고용노동부는 다음 달 초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시켜 연말까지 임금 격차 개선을 위한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오는 3월에는 정부 부처 합동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종합 대책도 내놓겠다는 계획입니다.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대책에 제대로 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해소 방안이 포함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제작진
그래픽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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