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공짜 취재'] ① 호텔서 공짜 숙박과 코스 요리...여행기자 팸투어
2020년 08월 18일 10시 10분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언론 사업은 뉴스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지만 사실은 그 속에 담긴 신뢰를 판다고도 할 수 있다. 2020년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40개 국가 언론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21%였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다. 그것도 5년 연속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망하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 왜일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의 기이한 수입구조에 주목했다. 그중 하나가 기사를 가장한 광고다. 또 하나는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홍보, 협찬비다. 이 돈줄이 신뢰가 바닥에 추락해도 언론사가 연명하거나 배를 불리는 재원이 되고 있다. 여기엔 약탈적 또는 읍소형 광고, 협찬 영업 행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뉴스타파는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추적 결과물은 언론개혁 계기판 역할을 할 뉴스타파 특별페이지 ‘언론개혁 대시보드’에 집약해서 게재한다. -편집자 주 |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총 73곳의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243차례에 걸쳐 17억 5000만 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취재 편의’, ‘취재지원’ 같은 명목으로 언론사에 제공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2016년 9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이 시행된 이후 언론사에 흘러간 자금도 9억 7000만 원(204건)이 넘었다.
뉴스타파는 지난 수개월 간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공기관이 언론사에 돈을 지원하면서 내건 명목은 대부분 ‘프레스투어’나 ‘팸투어’였다. 기관 자체 혹은 기관이 운영하는 각종 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지난 4년간 언론사에 가장 많은 취재비를 제공한 기관은 자원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다. 가스공사는 2016년에만 두 번에 걸쳐 기자들에게 해외출장 기회를 제공하며 2억 8300여만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2위는 2억 6700여만 원을 쓴 한국전력공사, 3위는 한국관광공사(2억4600여만 원)였다. 한국전력공사나 한국관광공사 역시 기자들을 대상으로 국내외 출장 기회를 제공하며 공적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4위는 대구광역시(8000여만 원), 5위는 기상청(7800여만 원)이었다.
언론사에 대한 취재지원은 공기업이나 지자체에서만 벌어지는 문제는 아니다. 삼성과 LG, 현대차, SK 등 국내 대기업과 수많은 중소기업이 가입된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같은 곳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한상의는 매년 재계 인사들을 모아 3박 4일 일정의 ‘대한상의 제주포럼’을 제주도에서 열고 있다. 여기에 대한상의 출입기자들을 초청해 항공권과 특급호텔 숙박비, 식사 등을 제공했다. 행사에 참여한 기자들은 행사를 홍보하는 기사를 써 왔다. 그 과정에서 대한상의의 ‘취재지원’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취재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기사지만, 대한상의의 제주포럼 기사는 청탁금지법의 저촉을 받지 않고 있다. “대한상의의 공식행사이기 때문에 청탁금지법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다.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최자가 참석자에게 통상적인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 숙박, 음식물 등의 금품 등”을 법 적용 예외조항으로 두고 있는 청탁금지법 제8조 때문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출입언론사당 1명의 기자에 한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예전부터 기자들한테 포럼 취재 요청을 해 왔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로부터 이미 ‘지원해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받은 상태”라고 밝혔다.
언론전문가들은 권익위의 유권해석에 문제를 제기한다. “예외조항으로 인해 청탁금지법이 느슨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언론사의 보도 관행도 지적하고 있다. 취재원으로부터 금전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기사의 경우, 설사 청탁금지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 해도 ‘취재 지원’ 사실을 독자들에게 투명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역 언론이라든가 중소규모 언론사들 중에는 양질의 기사를 쓰고 싶은데 그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경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실적인 측면을 감안했을 때 취재지원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들의 취재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취재지원을 통해서라도 대중들에게 유익한 뉴스 콘텐츠가 많이 제공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문제는 취재지원을 받은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하느냐 입니다.”
-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지원기관과 언론)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거죠. 우선 공공기관과 기업 입장에서는 ‘지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기사에 들어가면 뭔가 기사의 공신력이 좀 떨어지고 홍보 효과가 덜하잖아요. 그러니 안 쓰길 원하는 거고요. 언론사도 ‘취재원에게 지원을 받고 기사를 썼다’는 게 떳떳하거나 자랑스럽지는 않으니까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죠.”
- 정연우 세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실제로 뉴스타파가 프레스투어나 팸투어를 통해 만들어진 기사들을 확인했지만, 취재원에게 취재비를 지원받아 기사를 썼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공개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취재원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사형 광고’인데도 이런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철저히 숨기고 있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취재원으로부터 취재지원을 받아 기사를 작성하고도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은 기사를 작성해 온 기자들에게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기자들은 ‘관행’이라고 변명했다. 아래는 몇몇 기자들이 보내온 입장.
“이미 선배들이 몇십 년 동안 기사에 그런 문구를 안 써왔기 때문에 이걸 써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사에 ‘취재지원 받았습니다’라고 쓴다고 해도 위에서 지우라고 하지 않을까요.”
- 중앙일간지 소속 A 기자
“지원받았다는 걸 굳이 안 쓰려고 하죠. 저는 나름 열심히 쓴 기사인데, 그런 문구가 하나 들어가면 독자들이 ‘편향적으로 썼겠구나’라는 색안경을 낄 수도 있잖아요.”
- 중앙일간지 소속 B 기자
언론전문가들은 “우리 언론이 ‘취재 지원’ 사실을 감춰온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언론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개인 블로거나 유튜버가 맛집에 대한 평가를 쓸 때도 ‘이 평은 식당에서 제공한 음식을 먹고 쓴 것입니다’, ‘이거 제 돈 먹고 썼어요’라고 밝힙니다. 내가 쓰는 이 평이 공정한 것인가 아니면 좀 기울어졌을 수도 있다는 것을 투명하게 밝히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 일부 언론들이 내놓는 팸투어 기사는 개인 블로그만도 못한 윤리 기준에서 쓰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 제정임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이 기사가 누구의 지원으로 나왔는지는 기사의 신뢰도를 판단하는 대단히 중요한 정보입니다. 그걸 감추는 것은 심하게 얘기하면 독자들에게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 정연우 세명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영국의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매년 전세계 각국 언론을 대상으로 뉴스 신뢰도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대상 국가는 약 40개. 2020년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21%로 꼴찌였다. 덴마크(46%), 멕시코(39%), 영국(28%), 타이완(24%) 등의 언론 신뢰도가 한국 보다 높았다. 한국 언론 신뢰도는 2018년 이후 계속 떨어져 5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기자단체인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에 연락해 한국 언론이 어떻게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보는지, 또 취재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사실상 홍보나 다름없는 기사를 작성하는 행태는 어떻게 보는지 등을 물었다.
두 단체는 모두 “교통·숙박·식사 등 전반적인 취재경비를 지원을 받았을 경우, 이 사실을 꼭 기사에 명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방송기자연합회는 “조만간 내부 윤리강령을 제정해 ‘취재지원 사실을 언론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원칙적으로는 언론사가 취재비를 자체 부담하는 것이 맞고 언론인 투어 등 취재지원 사업이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취재지원 사업을 아예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취재비를 많이 쓸 수 있는 대형 언론사와 취재비가 부족한 소형 언론사 간 취재력·정보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편의를 제공받았다면 반드시 이런 사실을 기사를 통해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
“기관과 기업이 계획한 홍보 행사에 초청을 받아서 가고, 숙박·식사 등 편의를 제공받는다는 것 자체가 국민 정서에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취재 편의 제공과 관련한 구체적인 윤리규정이 필요하다.”
-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의 '기자투어' 지출 내역은 ‘언론개혁 대시보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스타파 ‘언론개혁 대시보드’ (http://pages.newstapa.org/n1907/#/part4)
취재 | 홍주환 |
촬영 | 이상찬 오준식 김기철 |
편집 | 윤석민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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