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에 유해물질 유출... 세월호 이후도 안전대책은 제자리
2014년 08월 26일 23시 59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국가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존립 이유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정부의 무기력함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정부는 부랴부랴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안전 예산’ 이라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내년도 안전 예산을 전 분야에 걸쳐서 가장 높은 수준인 17.9%로 확대해서 14조6000억 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안전 예산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박근혜 정부의 ‘독창적’인 예산 분류 기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OECD, 즉 경제협력개발기구는 각국 정부의 예산을 12개 분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중 안전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항목은 ‘공공질서·안전 분야’입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 376조 원 가운데 이 분야에 편성된 예산은 16조9000억 원입니다.
하지만 이 예산의 대부분은 국민의 안전과는 무관한 법원과 검찰, 경찰 조직 등의 인건비와 기본 경비 등입니다. 이 분야 예산에서 재해 예방과 복구 등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재난 관리 비용은 1조2000여 억 원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밝힌 안전 예산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시정 연설에서 밝힌 안전 예산 14조 원은 도대체 어떤 항목으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요?
세월호 참사로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에 대한 전국민적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지난 5월 기획재정부 2차관을 팀장으로 관계부처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 등 20여명으로 ‘안전 예산 민관합동 테스크 포스(TF)’를 꾸렸습니다. 민관합동 TF는 ‘각종 재난을 예방·대응해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 활동을 지원하는 예산’을 ‘안전 예산’으로 정의하고, 불과 3달 만에 328개 사업을 안전 예산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를 통해 각종 재난과 재해에 대비하는 실질적인 안전 예산뿐아니라 댐과 하천 관리 등 SOC(사회간접자본) 예산도 안전 예산에 모두 포함됐습니다.
뉴스타파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사업 설명 자료를 바탕으로 안전 예산으로 분류된 사업을 일일이 검증해 봤습니다. 또 직접 현장을 찾아 사실관계를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통령이 말한 안전 예산 14조6000억 원 가운데 국민 안전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예산이 무려 4조 원 가량으로 추산됐습니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따져 보겠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노후 수리시설의 개보수’ 사업이 국민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며 관련 사업비 5300억 원 전액을 안전 예산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러나 농림부가 국회에 제출한 설명 자료에는 이 사업 관련 예산이 재해 대비에 3600억 원, 영농편의에 1700억 원으로 명확히 나눠져 있었습니다. 즉 농림부는 국민의 안전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논밭에 물을 대는 영농 편의 사업까지 안전 예산에 포함시켜 규모를 부풀린 겁니다. 이와 함께 다목적 농촌 용수 개발 등 국민의 안전과 거리가 먼 농림부 사업이 안전 예산 항목에 포함된 것만 모두 5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총사업비 526억 원이 투입되는 충남 태안군 안흥외항 정비공사. 수산업 기반시설 확충을 위한 사회간접자본, 즉 SOC 사업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이 사업이 내년도 안전예산안에 버젓이 포함돼 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안흥외항을 비롯해 전국의 10여 개 국가 및 지방 어항 공사비 2500억 원을 안전예산으로 분류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또 부산신항 등 새로 만든 항구에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해저 바닥을 깊게 파는 항로증심준설 사업비 1200억 원을 안전 예산에 집어넣었습니다. 바닷길을 새로 만드는 사업인데도 이를 안전 예산으로 잡은 겁니다.
충북 단양 수중보 건설 사업은 관광용 사업이 안전 관련 사업으로 둔갑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총사업비 560억 원 중 내년에 79억 원이 투입되는데, 단양군청의 담당 공무원조차 왜 이 사업이 안전 예산으로 분류됐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에 제출한 사업 설명 자료에는 이 사업의 목적이 ‘충주댐 내 단양지역의 적정 수위 유지와 호반 여건 조성을 위한 수중보 건설로 관광산업 육성 등을 통해 댐건설로 낙후된 지역경제 활성화’로 돼 있습니다. 부항댐과 성덕댐 건설 사업 등도 사업 목적이 ‘지역 경제발전과 주민 생활환경 개선’이지만 국토교통부는 이를 모두 안전 예산으로 이름표만 바꿔 달았습니다.
심지어 4대강 관련 사업비도 안전 예산에 포함됐습니다. 내년에만 1900억 원이 투입되는 국가하천 유지보수 사업은 여주 이포보 등 4대강 16개 보 등을 관리하기 위해 2012년부터 시행된 사업입니다. 지역 주민들조차 안전예산의 기준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 합니다.
경기도 여주시에 사는 윤근상 씨는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이 많지 안전 사고라던지 위험성은 크게 없다”며 “이런 곳이 왜 안전 예산에 들어가는 지 의아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이들 사업 역시 안전 예산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첨단도로 교통체계, 국가 중요시설 방호비 등 국토교통부 소관 안전 예산 가운데 국민의 안전과 거리가 먼 예산은 4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밖에 경찰청은 과속과 신호위반 등 무인단속장비 운영비 928억 원을, 미래창조과학부는 재난 사고와 관련이 없는 뇌과학원천기술개발 사업비 100억 원을 내년 안전예산에 포함시켰습니다.
내년 안전 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해대책 예비비입니다. 기획재정부가 1조3000억 원을 책정한 것을 비롯해 6개 부처에서 모두 2조2천여 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예비비는 실제 사업비가 아닙니다. 예산 편성 과정에서 예상할 수 없는 지출을 위해 만든 것으로, 특별한 재난 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대부분 불용 처리합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책정한 재해대책 예비비 2000여억 원 가운데 실제 집행한 금액은 지난 8월말 현재 고작 3%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재해대책 관련 예비비를 안전 예산에 포함시킨 것은 예산 규모를 실제보다 커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줄뿐 국민의 안전과는 상관 관계가 크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은 “재해대책 예비비를 많이 늘리면 그만큼 국민의 안전이 확보되냐”고 반문하며 “예비비를 실제 예산인 것처럼 포장한 것은 있지도 않은 예산으로 생색내는 공무원들의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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