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뿐인 화학사고 대책, 주민 불안감 가중

2014년 09월 12일 22시 00분


전국에서 유해화학물질 누출사고가 잇따르자 지난해 7월, 정부는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링크)’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1년, 우리는 화학 사고로부터 얼마나 안전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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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안양 박달동의 한 페인트 공장에서 희뿌연 연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장과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 사이의 거리는 불과 30여 미터. 반나절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결국 공장으로 모여들었다.

머리가 아프고 목이 따갑다며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업체 측은 페인트 원료인 에폭시를 냉각하는 과정에서 생긴 수증기라며 괜찮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공장 관계자는 재빠르게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소방방재청과도 협의했지만, 유해 성분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안양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은 공장 관계자의 인터뷰 직후 “인터뷰하는 분이 소방방재청에서 무해하다고 했다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결국 연기의 정확한 정체가 뭔지, 유해한지 아닌지 주민들에게 제대로 답을 해주는 기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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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사고가 나면 일단 소방서에서 출동해 사고를 수습하지만 소방서는 무슨 물질인지, 어떻게 방제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은 뉴스타파가 지난달 26일 보도했던 인천 아세트산비닐 누출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방제 작업에 나섰던 인천 서부소방서 관계자는 “(소방서는) 화재 쪽을 담당한다.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나면 환경부에서 와서 처리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학물질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가 없다 보니 지난달 24일 충남 금산군 조정리의 불산 유출 현장에서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이 ‘소석회가 빗물에 섞여 일어난 일'이라는 업체의 말만 믿고 불산 유출 사실을 모른 채 돌아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불산 피해를 입은 조정리 이장 황규식씨는 ‘소방서에서 출동했다가 업체 말만 믿고 돌아갔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화학물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라며 정부의 사고 대처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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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에 없는 ‘현장수습조정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종합대책을 보면 화학사고 현장은 ‘현장수습조정관’이 화학사고 현장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도록 되어있다. 사고가 나면 현장에서 화학물질 정보와 대응 방법을 제공하고 관계 기관의 역할을 조정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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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뉴스타파가 취재한 최근의 화학사고 세 건 가운데 현장수습 조정관이 현장에 있었던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금산 불산 누출 사고는 사고 규모가 작았고, 인천 아세트산비닐 누출 사고와 안양 에폭시 수증기 누출 사고는 법에 명시된 유독물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인천과 안양의 사고를 관할했던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현장에 나가 현장수습조정관에 준하는 역할을 다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은 누가 현장수습조정관 역할을 했는지 체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인천 아세트산비닐 유출 당시 방제작업을 했던 인천소방서 관계자는 ‘그 사람들(현장수습조정관)이 총괄하는 건지 뭔지 모른다. 그 사람들이 아마 어떤 조치를 취한 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직 직원이 지키는 화학사고 콘트롤타워 상황실

화학사고가 나면 소방서에 방제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 역시 지난해 정부의 종합대책 마련 발표 이후 설립됐다. 바로 올해 1월 문을 연 화학물질안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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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이 기관을 화학사고가 나면 즉시 방제 정보를 제공하고 전문기술을 제공하는 콘트롤타워라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화학물질 전문가가 사고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24시간 지킨다는 상황실을 직접 찾아가보니 고작 두 명씩 돌아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모두 계약직 직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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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화학물질안전원은 그냥 대전에 하나 있는 전문기관이다. 환경부가 화학 사고의 콘트롤타워고 화학물질안전원은 전문 지식을 지원하는 소속기관'이라며 이제와서 화학물질안전원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화학물질 유출 사고. 정부가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 1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안전을 외치는 것은 그 때 뿐이고 정작 주민들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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