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먹는 언론...고용노동부 3년 언론홍보비 500억
2019년 10월 18일 16시 09분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언론 사업은 뉴스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지만 사실은 그 속에 담긴 신뢰를 판다고도 할 수 있다. 2019년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38개 국가 언론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22%였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다. 그것도 4년 연속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망하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 왜일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의 기이한 수입구조에 주목했다. 그 중 하나가 기사를 가장한 광고다. 또 하나는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홍보, 협찬비다. 이 돈줄이 신뢰가 바닥에 추락해도 언론사가 연명하거나 배를 불리는 재원이 되고 있다. 여기엔 약탈적 또는 읍소형 광고, 협찬 영업 행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뉴스타파는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추적 결과물은 언론개혁 계기판 역할을 할 뉴스타파 특별페이지 ‘언론개혁 대시보드’에 집약해서 게재한다.-편집자 주 |
언론사들이 대학에서나 볼 수 있던 이른바 ‘최고위 교육과정’을 잇달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벌써 11년간 21기까지 수료생을 배출한 언론사도 나올 정도다. ‘포럼’, ‘아카데미’, ‘라운지’, ‘리더쉽’ 같은 이름들을 달고 있지만, 운영 방식은 대부분 비슷하다. 일주일 또는 한 달에 한 번 호텔같은 곳에서 식사와 함께 강연하는 식이다. 강사는 대부분 유력 정치인이나 저명 기업인이다. 수강생들도 대부분 기업 대표나 임원,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같은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다. 수강비용은 최소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이 넘는 경우도 많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최고위 교육과정’ 대부분은 그저 언론사들의 변종 돈벌이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세금으로 등록비를 낸 뒤 강의는 듣지 않는 공무원, 광고비라고 생각하고 돈만 내는 기업 임원, 수강료는 지불하지 않고 이름만 등록한 국회의원들이 즐비했다. 뉴스타파는 언론사가 운영하는 ‘최고위 교육과정’ 수료자와 복수의 ‘최고위 과정’ 담당자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최고위 교육과정은 이름부터 다양하다. 중앙일보는 ‘J포럼', 한국일보는 ‘한국아카데미', 서울신문의 경우 ‘광화문라운지' 등이다. 이 가운데 11년째 운영되며 21기까지 수료생을 배출한 중앙일보 J포럼의 경우 수강신청 자격을 ‘기업 CEO, 공기업 임원, 국회의원, 공직자, 법조인, 의사, 회계사, 문화예술인’으로 정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운영하는 ‘한국아카데미’의 지원 자격도 ‘대기업 및 중소기업 최고경영자와 임원, 금융기관의 최고위 인사,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고위 공직자, 법조계 인사 등 각 분야의 지도급 인사’다.
서류 전형을 통해 수강생을 모집한다고 광고하지만, 참가자 대부분은 인맥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뉴스타파 취재에 응한 수강생들은 “간부급 기자나 출입기자가 수강생을 섭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에선 추천을 받아서 한다고 하더라고요.”
“언론사에서 직접 연락받은 건 아니고, 그룹 쪽에서 추천을 해가지고.”
“중앙일보에서 저한테 요청을 했습니다. 출입기자 통해서.”
언론사들은 수강생을 모집하면서 명품강의, 워크숍 등을 혜택이라고 광고한다. 하지만 언론사가 주력하는 혜택은 따로 있다. ‘수강생에 대한 보도 후원’, ‘언론사와 수강생의 협력 관계 유지’다. 사실상 언론사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수강생 모집의 미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운영하는 ‘J포럼’의 10기 수료식 영상은 이런 사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10기 수료생 여러분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중앙일보가 각종 후원, 보도 후원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중앙일보에 요청하실 사안이 있으시다면 국장 통해서 언제라도 연락을 주시고, 최선을 다해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갑질을 하던 기자답게 이 포럼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했냐면요. 뻔한 거 아니야? 중앙일보는 중견기업에 있는 사람들이랑 영향력 있는 사람들 확보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거고, 여기 오는 사람들도 중앙일보를 이용해서 약간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도모하려는 거 아니겠어?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또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일 겁니다. 또 거기에 걸맞게 제가 편집국장 하는 동안 전화하시거나 부탁을 하시면 열심히 (홍보기사 등을) 써 드리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저와 보실 일이 자주 있을 겁니다.”
언론사가 운영하는 6개월짜리 ‘최고위 과정’ 수강료는 대략 1000만 원에 육박한다. 동아일보가 운영하는 경제리더스아카데미의 경우 3박 4일 짜리 해외워크숍을 포함해 1500만 원이다. 그럼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취재진은 언론사 최고위 과정 참가자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러 언론사가 운영하는 각종 교육과정에 참여한 수강생들을 무작위 추출해 전화하는 식이었다. 그 결과, ‘최고위 명품 교육과정'이란 설명을 무색케하는 답변이 쏟아졌다. “언론사가 하는 행사여서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거나, “이름만 걸어놓은 채 교육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고위공직자는 “실제 최고위 교육과정을 등록한 공공기관의 관계자들은 교육내용보다는 언론사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당 교육과정에 등록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변인은 기본적으로 언론 계신 분들을 챙겨야 합니다. 수업을 꼭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름만 걸어놓는 거니까 (등록을 하는 거죠.)... 1~2번 정도 강의에 참석한 것 같아요.
저희 회사는 전주에 있습니다. 그러니 저희 임원들이 어떻게 서울까지 가서 조찬포럼에 참석하겠어요. 우리가 하고 싶어서 언론사 포럼에 등록한 게 아닙니다. 언론사와 어느 정도 협의가 됐으니까 돈을 내고 하는 거죠.
“언론사의 요청을 받고 이름만 빌려줬다”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처음엔 거절했죠. 시간을 맞출 수 없으니까. 그런데 (언론사 관계자가) ‘이름만 걸어놓고 시간 되는대로 1~2번만 오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등록하고 한 번인가 갔던 것 같아요. 수강료는 안 냈습니다.
일부 공직자의 경우 “언론사로부터 장학금이나 특별할인가를 제시받고 교육에 등록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사에서 ‘공직자 특별할인가'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최고위 교육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한 언론사 현직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세가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돈을 받지 않고 고위공직자, 국회의원을 끼워 넣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최고위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언론사 관계자들에게도 연락해 “왜 이런 사업을 하는지” 등을 물었다. 취재에 응한 몇몇 언론사 관계자는 ‘최고위 교육과정은 언론사의 돈벌이 수단’임을 솔직히 인정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협찬을 더 받아내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신문을 열심히 만들고 콘텐츠를 열심히 만들어도 A기업에서 우리 회사에 주는 돈은 정해져 있다. ‘조선일보는 5000만 원’ 이런 식이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기업이나 기관에서 받아내기 위해 이런 행사를 벌일 수밖에 없다.
언론사들은 기업들이 얼마만큼의 협찬금을 배정해 놓고 있는지 알고 있다. 언론사들이 포럼을 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사업을 통해 얼마나 더 많은 협찬금을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언론 관련 전문가들은 언론사들이 운영하는 ‘최고위 교육과정’이 사실상 언론사가 기업이나 기관에서 돈을 뜯어내는 또 다른 창구가 되고 있고, 따라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언론사의 변종 영업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대학에서 운영하는 최고위 과정이) 고위층들끼리 서로 연결돼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대학 사회에서 이미 제기돼 왔음에도 그런 사업에 언론사가 뛰어든 셈이다. 신문협회나 신문윤리위원회 등에서 언론사의 수익 사업을 감시할 수 있을 최소한의 틀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언론사가 운영하는 최고위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분명 언론사를 의식하면서 돈을 낼 것이다. 결국 상품을 보고 사는 게 아니라 상품을 파는 사람을 보고 구매를 하는 셈인데, 그런 거래행위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취재기자 | 연다혜, 홍주환 |
촬영기자 | 정형민 |
편집 | 박서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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