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칼럼] 대한민국 검찰의 ‘아무’ 사건과 ‘아무 아닌’ 사건

Oct. 21, 2024, 06:27 PM.

[일문일답] 검찰 "'도이치 의혹' 김여사 압수수색 영장 모두 기각"
검찰 "도이치 의혹 金여사 압수수색 영장, 모두 기각됐다"
문재인·윤석열 정부 2년씩 수사했지만…김 여사 압색 못해
10월 17일 각 언론사가 급하게 쏟아낸 기사 제목이다. 검찰이 김건희 씨를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하면서 기자들에게 무려 4시간이나 그 배경을 설명한 직후다. 이 소식을 보며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검찰이 얼마나 허술하게 압수수색영장을 만들었으면 법원이 기각했을까”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검찰은 압수수색영장청구서에 ‘범죄사실’을 그럴 듯하게 기재해왔고, 법원은 정밀한 심사 없이 영장을 기계적으로 발부해왔다. 사법연감 통계는 법원의 압색영장 실제 발부율이 10년 넘게 99%를 넘나든 사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김건희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면 경우의 수는 하나뿐이다. 검찰이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어느 정도는 수사했다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법원이 도저히 발부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하게 영장 청구서를 만들어 기각을 유도했을 가능성이다. 
왜냐하면 17일 서울중앙지검 김건희 수사팀(반부패수사2부)이 13층 브리핑룸에서 출입기자 40여 명을 모아놓고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 주거지, 사무실, 휴대폰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고 너무나 태연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검찰 간부가 말한 압수수색영장 ‘청구'와 ‘기각'이라는 말의 무게 때문에, 또 법원이라는 상대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없었다고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청구는 했지만 부실한 내용으로 기각당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왜 그날 검찰 브리핑을 그렇게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며 받아들였을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검찰이 말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 검찰발 뉴스를 너무 많이 본 후유증, 힘센 기관의 발표는 그래도 믿어야지 하는 소시민 의식 등이 복합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그런데 ‘소시민’의 기대와는 달리 ‘김건희 압수수색영장 청구' ‘법원 기각'이라는 검찰 간부 말은 얼마 안 가 거짓말로 드러났다. 검찰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건희의 주거지와 사무실, 휴대폰 압수영장을 청구한 일도 없었고, 법원이 기각한 일도 없었다. 
수많은 매체가 검찰이 하루 만에 들통날 거짓말을 왜 했는지 개탄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동안 하루뿐이 아니라 계속 들통이 안 나서 감춰진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검찰 말이라면 당연히 맞겠지, 검찰이 뭔가 쓱 흘리면 단독해야지, 이렇게 별 검증 없이 받아서 사실인 양 퍼트린 언론 때문에 생긴 일이다. 언론이 검찰 권위를 지켜주고 키워줘서 생긴 문제다.
<뉴스타파 대 윤석열> 사건, 즉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초 이 사건은 2023년 9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가 검사 10여 명을 투입해 이른바 ‘대선개입 여론조작 특별수사팀’을 꾸리면서 본격화했다. 검찰은 김만배와 신학림이 윤석열 낙선, 이재명 당선이라는 목표 아래 허위 인터뷰를 하고, 이를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하게 했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유포했다. 수많은 언론이 그렇게 받아썼다. 
도서출판 뉴스타파가 최근 발간한 압수수색 현장 기록 르포집 <압수수색>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수많은 증거와 정황이 김건희의 주가조작 가담을 가리키는데도 압수수색 한 번 없이 4년 이상 자본시장법 위반 피의자 김건희를 봐줬다. 그리고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는 수많은 수사인력을 투입해 뉴스타파 사무실과 필자, 한상진 봉지욱 기자 집을 압수수색하고, 불법적으로 온갖 자료를 털고 이른바 디넷에 저장했다. 그것도 모자라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통신사찰을 자행하고 출국금지까지 했다. 피의자 김건희에겐 이른바 레드팀까지 붙이는 쇼를 벌이더니 결국 불기소했으나 뉴스타파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소했다. 
그리고 수사 착수 1년이 지난 지금 <뉴스타파 대 윤석열 사건> 담당 재판부는 검찰의 뉴스타파 기소장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매 재판 때마다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 초기 검찰의 프레임을 그대로 퍼나르던 언론사들은 대부분 입을 닫고 있다.
검찰은 김건희에게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한 다음 날 국회에 나가서 더 기막힌 궤변을 쏟아냈다. 10월 1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울중앙지검 이창수 검사장은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 데 대해 "수사팀과 머리를 맞대고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 제대로 처리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이 검찰 부실 수사를 추궁하자 내놓은 답변이다. 또 김건희에겐 왜 강제수사를 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나오자 "압수수색을 자꾸 말씀하시는데 기본적으로 그렇게 아무 사건이나 휴대전화를 무조건 가져와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국 2천여 명의 검사 조직 중 가장 우수한 자원이 모여있다는 곳이 서울중앙지검이다. 그곳의 검사 220여 명의 수장인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의 발언을 듣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검찰 최고위직이자 윤석열 검찰 정권의 핵심 포스트에 있는 그에겐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대한 범죄 중 하나로 손꼽히는 주가조작은 ‘아무 사건’에 해당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창수 검사장의 두뇌 회로에는 대선후보의 의혹을 검증한 뉴스타파 보도는 ‘아무 사건이 아닌 사건’으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2023년 한 해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청구 건수는 46만 건이다. 올해는 50만 건을 돌파할 전망이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엄청 잘 하는 것으로 소문난 이창수 검사장에게 김건희 피의자의 주가조작 사건은 50만 건 정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아무 사건’이었다. 
검찰의 김건희 불기소 처분을 보고 한 현직 검사는 “참담한 마음으로 검찰의 장례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미 사망한 지 오래다.
지난 10월 16일 서울 SAC아트홀에서 열린 <압수수색> 북토크. 250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최근 도서출판 뉴스타파가 지난해 9월 검찰 압수수색 이후 1년간 일어난 일을 기록한 르포르타주 <압수수색>을 펴냈다. 필자와 한상진, 봉지욱 등 공동저자 3명이 전국을 돌며 뉴스타파 회원을 모시고 북토크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서울, 제주, 부산, 서울 2차 등 현재까지 모두 4차례 북토크를 열었다. 줄잡아 5백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는데 이분들이 필자에게 하는 하소연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윤석열 정권 시절을 보내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픔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분노, 좌절 등의 감정이 아니라 아픔이다. 윤석열 김건희 공동정권 시대를 살며 시민이자 유권자의 자존감에, 정체성에 너무 큰 상처를 받고 있다는 토로였다. 이제 끝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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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