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6천 억 날린 '하베스트' 수확 덤터기 쓰고 땡처리?
2013년 12월 20일 21시 01분
공기업과 공기업 퇴직자 간에 벌어지는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전 퇴직자단체인 ‘한국전력전우회(전우회)’의 관계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우회는 ‘제이비씨(JBC, 구 전우실업)’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지난 수십년 간 한전 용역을 싹쓸이했고, 이를 통해 수백억 원대 재산을 축적했다. 그럼 이 과정에서 덕을 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뉴스타파는 10월 9일부터 3일에 걸쳐 ‘악어와 악어새’ 관계와도 같은, 한전과 전우회의 수십년 공생관계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주 |
한전 퇴직자 단체 ‘전우회’가 세운 회사 ‘제이비씨(JBC, 구 전우실업)’가 한전으로부터 수십년간 수의계약을 받아 전우회를 배불려 왔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전우회 회장이 제이비씨에서 황제 대우를 받으며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섬발전소 직원들은 한전 퇴직자들에게 떠넘겨진 섬발전소 사업을 한전이 다시 직영해 특혜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재진이 만난 복수의 전직 제이비씨와 전우회 관계자들은 “제이비씨와 전우회, 양 기관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전우회장이 제이비씨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전우회 회원인 이들은 모두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딱 한 마디만 드리고 싶은 거는요. 김영만 회장이 너무 제이비씨를 사유화 했어요.
김영만 전우회장은 제이비씨에서 황제나 마찬가지에요. 제이비씨 임원들도 김 회장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서 아무도 그를 견제할 수 없어요.
현재 전우회 회장은 한전 노무처장과 업무지원처장을 거쳐 영업본부장을 지낸 뒤 퇴직한 김영만 (72)씨다. 그는 2010년부터 6년간 제이비씨 사장을 지냈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는 전우회장과 제이비씨 이사회 의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그런데 전우회와 제이비씨 안팎에서는 김 회장과 관련된 여러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다.
복수의 제이비씨와 전우회 관계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사장으로 재직하던 중 자신의 가족을 검침 직원과 본사 직원으로 채용했다. 회사 직원들이 가입돼 있는 상해보험을 자신의 친인척이 있는 보험사로 변경하거나 신규 가입을 권유하기도 했다. 사실상 제이비씨를 개인회사처럼 이용한 것이다.
제이비씨의 한 전직 임원은 “김 회장이 ‘제수씨가 00화재 근무하는데 같은 값이면 이쪽에 신규 직원들 상해보험 가입을 해줄 수 없겠느냐’고 했다. 이후 김 회장 제수씨라는 분이 직접 회사에 왔고, 그쪽으로 직원들 보험 가입을 해줬다”고 주장했다. 또 “회사에 김영만 회장의 조카가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어떤 절차를 거쳐 입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영만 사장 시절 채용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 회장의 황제 행보는 사장 퇴임 이후에도 계속됐다. 원래 제이비씨 이사회의 의장은 제이비씨 대표가 줄곧 맡아 왔는데, 김 회장은 본인이 사장에서 퇴임하고 전우회장이 된 뒤에는 ‘전우회장이 JBC 이사를 겸직’하도록 전우회의 정관을 변경했다. 이후 김 회장은 바뀐 정관에 따라 제이비씨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제이비씨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매년 억대 보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김영만 회장 전까지 전우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었어요. 그런데 자기가 주주총회 의장으로 있으면서 셀프로 JBC 정관을 바꿔서 본인이 이사회 의장 맡고 보수까지 지급하게 한 거죠.
그 자격으로 사장 퇴임 이후에도 JBC 골프회원권, 법인카드도 마음대로 사용하고…그런 돈들이 사실은 섬에서 일하는 직원들한테 돌아가야되는 것인데, 같은 한전 출신으로서 부끄럽습니다.
수십년 수의계약이 퇴직자단체와 그 수장의 비리 자양분이 되고 있는 거예요. 문제라고 생각해도 김 회장이 전우회장이자 JBC 이사장까지 다 맡아 인사권, 경영권 장악하고 있는데, 누가 말을 하겠습니까. 지금 이사회는 김 회장 거수기라고 봐야합니다. ”
그런데 문제는 김영만 회장이 이렇게 갖다 쓴 돈이 모두 국민들이 낸 일종의 준조세라는 점이다.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에는 3.7%에 달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이하 전력기금)이 포함돼 있다. 직접 사용하지 않았어도 꼭 내야하는 돈이다. 이 돈으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공익사업인 섬발전소 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최대봉 발전산업노조 도서전력지부장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필수, 유지 업무인 섬발전소 사업이 일개 조직들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7월 30일, 한전과의 수의계약 특혜 의혹, 준조세를 이용해 수백억대 수익용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의혹, 김 회장 관련 개인비리 등에 대한 질문을 담은 공식질의서를 제이비씨와 전우회 측에 보냈다.
그런데 답변을 주겠다던 제이비씨 측은 질의서를 보낸지 한 달이 넘도록 답을 하지 않았다. 취재진이 답변을 듣기 위해 제이비씨와 전우회를 직접 찾아갔지만, 양 기관은 모두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김영만 전우회장과 제이비씨 사장을 포함한 제이비씨 임원들 중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취재진은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김영만 전우회장의 자택을 찾아갔다. 다음은 취재진과 김영만 회장과의 일문일답.
- 친인척 채용은 왜 한 것인가?
“친인척 채용은 무슨, 계약직일 뿐인데…”
- 친인척 회사로 직원 보험 변경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건 회사에서 알아서 결정한 일이다.”
- 제이비씨 정관을 변경해 전우회장이 제이비씨 이사회 의장을 맡아 억대 보수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일을 했으니까 돈을 받는 거지.”
- 뇌물수수 문제로 실형을 받은 전 한전 감사실장을 제이비씨 임원(전우회 사무총장 겸임)으로 임명한 이유는?
“국회의원 중에도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많다.
한전은 제이비씨에 수십년간 수의계약을 주는 대신 감시 목적으로 해마다 경영평가를 하고 있다. 제이비씨가 제출한 자료를 한전이 검토해 평가하는 방식으로, 2006년에 처음 시작됐다.
경영평가 지표에는 윤리경영 항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제기한 의혹들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지적되지 않았다.
취재진은 경영평가가 제대로 이뤄져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전에 제이비씨 경영평가 보고서 공개를 요청했다. 하지만 한전은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섬발전소사업 같은 국민의 준조세가 투입되는 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경영평가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력기금을 활용하고 있는 혹은 사용하고 있는 기관들이 보면 대부분 국정감사에서 감사를 받거든요. 제이비씨의 경우 전력기금, 일종의 세금에서 이렇게 용역비를 뚝 떼어줬는데 민간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려 감사 대상이 아닌 게 되어버렸는데요. 국민 세금이 투입된 만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제이비씨가 정말 그 용역비만큼 섬발전소를 제대로 운영했는가를 국정감사를 통해서든 아니면 국민들의 정보공개요청을 통해서든 충분히 알 수 있게 공개돼야 합니다.
섬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제이비씨 직원들은 공익사업인 섬발전소 운영사업을 더이상 퇴직자 단체에 위탁하지 말고 공기업인 한전에서 직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기를 생산·공급하는 발전소(화력·원자력 발전소) 대부분을 공기업이 직영하는데, 섬발전소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전은 현재 섬발전소를 민간에 위탁 운영하는 이유로 ‘업무 효율성’과 함께 ‘제이비씨의 우수한 기술력’을 내세우고 있다. 한전 측은 “과거 한전에서 섬발전소를 직접 운영할 당시 한전 직원들이 섬지역 근무를 기피해 인력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민간위탁 방식을 택한 것”이라며 “제이비씨가 섬발전소를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인력을 고용해 지금까지 잘 운영해 왔다. 다시 한전이 직영하면 과거의 인력관리 문제가 되풀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발전소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지자체나 한전이 직영할 때보다 오히려 업무효율성이 떨어졌고, 인력 확보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비가 오면 발전소에 비가 샙니다. 바닥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제이비씨는 보수에 나서지 않습니다. 발전소 소장님도, 본사 측에서도 ‘한전의 승인이 떨어져야 보수공사를 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소방과 관련된 문제도 매년 보고하는데, 아직까지 반응이 없어요. 민간위탁이 되면서 업무 효율성뿐 아니라 안전도 취약해진 겁니다.
65개 사업소에서 매년 72명 정도의 신입직원들을 뽑는데, 계속 그만두고 나갑니다. 근무조건이 열악한 섬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전의 발전소에서 일한다고 해서 왔는데, 막상 와보니 제이비씨라는 용역회사 소속에, 급여도 한전보다 적고, 복지혜택도 없으니까요. 고용이 보장되는 한전에서 직접 발전소를 운영한다고 하면, 더 능력있는 인력들이 입사하지 않을까요?
그래서일까. 제이비씨 노동자들은 “한전이 준조세인 전력기금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민간 위탁이 아닌 직접고용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한전에서 저희를 직접 고용한다고 해서 문제될 게 전혀 없는 이유가 뭐냐면요. 자산도 한전 거고요, 설비 모두 한전 거고요, 저희 운영하는 운영기금이 전력기반기금, 즉 국민 세금으로 인해서 운영되고 있는 거고요. 오히려 저희가 한전으로 인수가 되면 제이비씨에 해마다 주는 30~40억의 이익금 같은 것을 아낄 수 있어요. 제이비씨가 과거 지자체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고용승계 했듯이, 한전에서 저희 인력을 그대로 고용하면 섬발전소 운영에 전혀 문제될 게 없어요.
현재 한전에는 섬발전소 노동자들의 직접고용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전문가협의체가 구성돼 있다. 그러나 제이비씨 측의 방해가 거센데다 한전도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직접고용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제이비씨 측은 뉴스타파가 섬 발전소 직원들과 인터뷰 한 다음날, 전 직원들에게 ‘사장 특별지시’라는 제목의 협박성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한전도 제이비씨와 비숫한 입장을 서면으로 뉴스타파에 전달했다. “제이비씨 직원들은 이미 제이비씨의 정규직으로 고용이 안정되어 있다. 섬발전소 운영 업무가 필수유지 업무이기는 하나 국민의 생명, 안전과 밀접한 업무라는 의견은 현실적에 맞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정리하면, 제이비씨 섬발전소 직원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전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방침’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수유지 업무’라는 것 자체가 ‘생명, 안전과 밀접한 업무’라는 뜻입니다. 두 개의 업무가 별개가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수도나 전기와 같은 필수유지 업무는 당장 공급이 끊기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불편과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에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전은 또 ‘섬발전소 직원들은 이미 제이비씨의 정규직 직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도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제이비씨의 정규직 직원인 게 아니라 한전의 업무를 수행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즉 한전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거죠.
사실, 공기업과 공기업 퇴직자간 특혜 논란은 하루 이틀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2017년 국민권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철도공사, 도로공사, 한전 등 6개 공기업이 이미 퇴직자 단체가 만든 자회사와 특혜성 용역계약을 체결해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고 김용균 씨가 일했던 서부발전의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사장도 발전자회사의 퇴직자였다.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소속의 우지연 변호사는 “공공부문의 민간위탁 과정에는 늘 퇴직자들의 이권이 걸려있다”고 지적했다.
기재부는 지난 4월 “공기업과 공기업 퇴직자간 특혜를 원천 차단하겠다”며 “공기업이 ‘퇴직자 단체’나 ‘퇴직자 단체 자회사’와 수의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에는 퇴직자가 임원으로 있는 업체와 2년간 수의계약을 맺지 못하도록 했었는데, 그 대상과 범위를 더욱 확장한 것이다. 기재부는 “그동안 퇴직자 단체와 관련된 특혜 지적이 많아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다. 현재 개정안 규제 심사를 완료했고 곧 공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특정인의 기술이 필요하거나 생산자가 1명 뿐이어서 경쟁이 성립할 수 없는 경우’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조항(국가계약법 시행령 26조 1항)이다. 연평도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강영진 씨는 “현재 한전의 주장대로라면 섬발전소는 평생 한전 퇴직자들 회사에서 운영하게 되는 셈”이라며 “한전은 본인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일한다고 홍보하면서,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까지 계속 수의계약을 주려고 한다. 이런 방식이 정말 국민들을 위해서인지, 전우회를 위해서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과연 현행 방식대로 섬발전소 운영을 계속해도 괜찮은 것일까. 우 변호사는 “단순히 퇴직자 단체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관행을 차단하는 것을 넘어 공공부문 위탁 과정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철도공사의 경우에도 도서산간벽지와 같은 곳은 공공기관이나 국가에 더 많은 책무를 지우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전력공사는 오히려 도서지역의 도서전력 부분이 사각지대화 되어서 민간, 그것도 퇴직자 단체에게 떠넘겨져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동안 공공기관의 위탁을 받는 용역업체의 주요 임직원을 퇴직자들이 맡는 방식으로 공공부문의 인력감축이 일어났는데, 이번을 계기로 단순히 퇴직자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문제 뿐만 아니라 크게는 공공부문의 업무가 외주화되는 과정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취재 | 홍여진 신동윤 |
촬영 | 신영철 이상찬 |
편집 | 김은 박서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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