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관광진흥법에서 세월호가 보인다...국회 통과 대유감

2015년 12월 03일 17시 00분

‘교육환경의 4대강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정부 여당이 경제활성화 법안이라고 주장했던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일명 의료민영화법)과 크루즈산업 육성법 등 경제관련 법안들 가운데 유일하게 이번에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번에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문화체육관광부의 담당 고위공직자들이 줄줄이 날라갈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만큼 문광부가 공을 들였던 법안이고 그 이상으로 소관 국회 상임위에서 반대가 심했던 법안이었습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학교상대정화구역(학교 경계선으로부터 200미터 이내) 안에 호텔 설립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이 법안이 관광객을 유치하고 부족한 호텔 객실 수를 보충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엄청난 피해를 볼 것처럼 여론몰이를 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正말?]코너에서 2차례에 걸쳐 검증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기사의 요지는 학교주변에 건립되는 호텔이 교육환경에 유해한가 여부는 교사와 학부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현재 교육청 산하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에서 잘 판단하고 있으며 상대정화구역 안의 모든 호텔이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심의를 신청한 호텔의 60% 정도가 심의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최근 급증한 중국관광객들로 인해 호텔이 부족한 것은 맞지만 이들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객실 단가 5만원 이하의 저가 호텔이지 정부가 허용하려고 하는 객실 100개 이상인 중형급 이상의 관광호텔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문광부는 산하연구기관의 호텔 객실 분석 연구결과를 근거로 댔지만 산하기관조차 관광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국관광객들의 객실 이용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집계하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오랫동안 국회 교문위에서 논의가 되었지만 그동안 어떤 합의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에 열렸던 교문위 법안심사소위에서도 3시간에 걸친 격론 끝에 새누리당의 신성범 소위원장은 “여야 간에, 또 정부와 야당 간에 견해 차가 좁혀지지 않아 도저히 합의를 유도할 수 없을 것 같고 상임위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말씀만 남긴다”는 말로 회의를 마무리 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논란이 많았던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일부 심의를 강화하고 사후 조치를 강화하는 것으로 수정되긴 했지만 이번 법 통과는 몇가지 면에서 극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먼저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3년에 걸친 토론과 고민의 과정을 여야 협상단이 일거에 무력화시켰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많은 법안이긴 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왔고 교육전문가들이 모여있는 교문위에서는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해왔습니다. 국회 전문위원들도 참여했고 국회 밖에서는 수많은 공청회도 열렸습니다. 이런 민주적인 절차를 다 거치고도 국회는 법안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보류시켰습니다.
더군다나 교문위 의원들은 소속의원 30명 가운데 비례대표를 제외하고는 전부가 수도권 소속 의원이어서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학부모들의 원성을 살 것이 뻔했기 때문에 여당 의원들조차 문광부에 보완 조치를 요구할 정도로 법안 심사에 매우 신중했습니다. 신설 호텔의 60-70%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야 협상단이 교육 법안을 만들고 책임져야 할 상임위 의원들의 권리를 한 순간에 앗아갔습니다. 상임위를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 사태는 해킹방지법 합의도 마찬가지입니다. 15년 동안 통과 못한 국정원의 숙원 법안을 국정원이 댓글을 달고 간첩을 조작하는 이 시점에 해당 상임위인 정보위가 통과시킬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산업의 논리로 교육의 논리를 무력화시켰다는 것입니다.
‘학교 앞 호텔’을 허용하자는 문광부는 “수많은 학생들이 호텔 리어를 꿈꾸며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이들이 일하고자 하는 곳을 유해시설이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며 법 개정을 요구했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문광부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면서도 “그것이 문제면 호텔을 유해시설로 규정하고 있는 학교보건법을 개정하면 되지 왜 관광진흥법을 건드리느냐, 극장도 그렇게 해서 유해시설에서 빠지지 않았느냐”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학교보건법이 문제면 원래의 법을 고치면 됩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럴 자신이 없었습니다. 교육부가 자진해서 교육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법안 개정을 추진하면 ‘국정교과서’ 파동 이상의 부담을 떠안하야 하니까요. 이번 관광진흥법 개정안 추진 과정에서도 문광부는 교육부의 긍정적인 입장을 받았다고 했지만 교육부가 공개적으로 이 법안에 대해 찬성한다고 밝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 학교 부근 호텔이 불허되자 건물 용도를 바꿔 오피스텔이나 레지던스 건물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들 건물 중 상당수는 중국관광객 등을 위한 숙소로 영업하고 있어 교육환경을 해치고 있지만 정부 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관련 법안에서 제한하고 있는 ‘학교 앞 호텔’을 모법에서 고치지 못하고 관광진흥법 개정을 통해 허용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미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에서 허가할 것은 허가하고 문제될 호텔은 불허하는 식으로 교육자치가 잘 이뤄지고 있는데 교육부도 아니고 관광산업을 주관하는 정부부처가 이를 무력화시키는 법안을 추진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요?
저는 여기서 세월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정부가 기업의 더 많은 이윤추구를 돕기 위해 선령 제한을 완화하고 안전 규제를 풀어주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맞기는 식으로 선주들로 구성된 조합에 선박검사를 맡기고 해서 벌어진 일이 세월호 참사입니다.
호텔 앞을 드나들게 될 수많은 차량으로 인해 등하교길 학생들이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호텔 안에는 유흥시설을 불허한다고 하지만 호텔로 향하는 길목에 세워질 수많은 유흥시설들이 학습환경에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이런 판단은 교육주체들이 해야지 왜 호텔업계를 관장하는 문광부가 해야하나요?
교육주체들이 하나같이 반대하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정부가 만들겠다고 밀어붙이는 정부, 전직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학생들을 추위에 벌벌 떨게 만드는 정부…세월호 참사 이후 학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면서도 정작 한번 망쳐지면 회복하기 힘든 교육환경의 안전보다는 ‘있는 자들의 돈벌이’에 베팅하는 정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으로 우리 산하를 신음하도록 만들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학교 앞 호텔’로 학교 앞 교육 환경을 신음하도록 만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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