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시대, 쌀가루는 수입밀을 대체할 수 있을까

2022년 06월 21일 16시 00분

“2027년까지 분질미(쌀가루) 20만 톤을 생산해 수입밀의 10%인 20만 톤을 대체하겠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2022.6.8)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8일 ‘분질미를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분질미는 물에 불려서 빻는 기존의 습식 제분과 달리 바로 빻으면(건식 제분) 쌀가루를 만들 수 있는 쌀을 말한다. 현재 분질미 품종 4개가 개발돼 있다. 정 장관은 이 분질미를 활용해 쌀 가공식품 산업을 활성화해서 밀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쌀 수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국제 곡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첫 번째 곡물 자급 대책이다.
▶분질미는 밀가루와 입자 구조가 비슷해 가루형태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발표 내용.
하지만 쌀가루로 수입밀 10%를 대체하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목표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식량안보 수호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하나하나 짚어봤다.

윤석열 정부 첫 식량안보 대책 시험대... '현실성 떨어져' 평가

먼저 거론되는 것은 가공적성(수확한 농산물의 가공 적합성)과 식감의 문제다. 쌀에는 밀가루에 있는 글루텐 성분이 없다. 글루텐은 밀가루 조직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쫀득한 식감을 만들어내는 성분이다. 쌀가루로 빵이나 국수를 만들려면 글루텐을 첨가해야 하는데 그렇게 만들더라도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국수와 비교하면 식감이 다르다. 
밀빵보다 쌀빵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은 틈새시장에 불과하다. 2021년 기준 쌀 가공식품 시장에서 규모가 큰 곳은 떡(26%) 주정(22.6%), 가공밥 등 조리식품(16.7%) 순이다. 쌀가루를 활용한 면류 시장은 3.3%, 과자류는 1.5%에 불과하다. 현재 면류와 과자류에 들어가는 쌀은 합해서 3만2천 톤 정도인 반면 떡 제조업에는 17만 6천 톤의 쌀이 쓰인다. 정부는 분질미를 활용해서 쌀가루 시장 규모를 5년 안에 20만 톤으로 키우겠다는 것인데 현재의 떡 제조업보다 더 큰 규모로 만들겠다는 것이니 정책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수입밀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품종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과 호주, 캐나다에서는 빵이나 국수, 과자 같은 다양한 제품의 요구사항에 맞게 수백 가지의 밀 품종을 개발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미 수십 개 품종을 개발한 우리밀조차 업계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 4개  품종에 불과한 쌀가루로 수입밀과 경쟁하겠다는 발상은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농림부 장관은 일본의 쌀가루 정책 사례를 들며 정책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분질미의 경우 일본의 습식 제분에 비해 비용이 50%나 덜 들기 때문에 더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2009년 ‘미곡의 신(新) 용도로의 이용을 촉진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논 농업을 유지하면서 쌀 재고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주된 목표는 수입밀 대체가 아니라 옥수수 같은 수입 사료곡물을 대체하는 것이다. 실제 이 법에 따라 2021년에 생산한 쌀 74만 톤의 90%는 사료용으로 사용됐고, 쌀가루용은 4만 2천 톤으로 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쌀을 밥쌀 외에 다른 용도로 이용하는 방안은 일본에서 이미 2009년부터 시행됐다. 우리나라는 밀가루 대체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사료용 쌀로 사용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수입에 의존하는 사료용 곡물을 대체한 것이다. 
송동흠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은 “일본이 2009년부터 추진한 정책은 우리나라 농림부 발표와 유사한 내용이 많은데 핵심은 밀가루 대체가 아니라 수입사료 대체였다. 우리 농림부가 (쌀가루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발표한 강력, 중력, 박력 쌀가루 용도 구분과 글루텐 프리 인증 제도는 이미 일본에서도 시행 중인 제도다. 그런데도 쌀가루 생산량이 올해 4만 2천 톤에 불과한데, 이제 시작하겠다는 우리나라가 20만 톤을 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분질미가 쌀 재고 과잉 해결 최선일까?

쌀가루 활성화 대책의 또 다른 명분은 쌀 재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쌀 재고 관리 때문에 안 써도 되는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라며 분질미 재배 확대를 통해 쌀 과잉생산을 조절하겠다고 발표했다.
2021년 쌀 생산량은 388만 톤이다. 실제 쌀이 남아돌아 쌀값이 폭락하자 올해 정부는 쌀 27만 톤을 시장에서 격리하느라 2차례에 걸쳐 5천억 원(추정액)의 예산을 투입했다. 이번 쌀가루 활성화 대책이 시행된다면 분질미를 생산한 만큼 밥쌀용 쌀 재고가 줄어 막대한 시장 격리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농림부 측 주장이다. 
지난 10년 동안 벼 재배면적은 매년 평균 1.5% 감소했지만 1인당 쌀 소비량은 2.2%씩  줄어 더 가파르게 낮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마다 쌀 재고 사정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로 직전 해인 2020년에는 흉작이 들어 정부 비축미를 방출할 정도로 쌀 시장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기상 재해 같은 변수로 언제든 쌀 생산량은 줄어들 수 있다”라면서 “지금 조금 남는 것 때문에 비용이 들어가서 큰 문제인 양 얘기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쌀 생산 재고를 관리하는 데는 사전에 논에 다른 작물을 심어 쌀 생산량을 조절하는 '쌀 생산 조정제' 방식과 사후에 남아도는 쌀을 정부가 사들여 격리하는 '시장 격리' 방식이 있다. 소비 감소로 남는 쌀을 처리하느라 투입되는 비용이 문제라면 사전에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다. 
▶ 쌀 수급 균형을 위해 사후에 시장에서 격리한 비용은 연평균 5천억 원 정도이지만 사전에 논에 다른 작물을 심는 생산조정제 때에 들어간 비용은 이보다 훨씬 적다. 
지난 8년 사이 시장 격리 방식이 쓰인 해는 5번이다. 평균 5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반면 2018년부터 3년 동안은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심도록 유도하는 쌀 생산조정제가 시행됐다. 이 기간 투입된 예산은 연평균 1,300억 원 정도, 게다가 쌀 대신 콩을 심으면서 콩 자급률이 22%에서 30.5%로 올라가는 효과를 거뒀다.

번지수 틀린 식량안보 대책, 우리밀 활성화 골든타임 놓칠라

자급률 수치가 식량 주권의 수준을 말해준다면, 99%를 수입하는 밀에 대한 우리나라의 식량 주권은 단지 1%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수입밀 대체 효과가 불분명한 쌀가루에 식량안보 희망을 걸기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밀 농가와 산업계의 오래된 요구대로 밀 직불금을 올리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일단 농민들의 요구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밀과 콩처럼 자급률이 떨어지는 작물을 전략작물로 지정하고 직불금을 올리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다. 이렇게 되면 우리밀의 경우 농가 소득을 보전하면서 밀 가격을 낮출 수 있어 수입밀과 경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우리밀은 수입밀에 비해 2배 비싸고 쌀가루는 3배 비싸다. 수입밀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예산 투입이 필수적인데 쌀가루는 우리밀보다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반면 대체효과는 우리밀에 비해 불분명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밀가루 제품 1kg의 가격은 수입밀은 1880원, 우리밀은 3640원이다. 쌀가루는 그보다 비싼 5480원이다. 수입밀의 가격이 폭등한 결과 우리밀과의 가격차이가 과거 3-4배에서 2배까지 차이가 줄었다. 수입밀보다 3배나 비싼 쌀가루가 수입밀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정부 예산을 투입해 이 가격 차이를 좁혀줘야 하는데 이 돈이 있다면 우리밀에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새 정부의 번지수 틀린 식량안보 대책이 오히려 우리밀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밀 농가 생산자 단체인 한국우리밀농협의 천익출 조합장은 “국제 곡물가 상승으로 모처럼 우리밀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는데 쌀가루까지 지원한다고 했을 때 과연 시너지 효과가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분질미를 이용한 쌀가루 활성화 정책은 지난 2016년 현 정황근 장관이 농업진흥청장 시절 추진했던 정책이었다. 하지만 청장이 바뀌자 이 정책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후임청장은 쌀 작황이 나빠지면 가공용으로 쌀을 제공할 여력이 없어진다고 판단했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일본의 2019년 밀 자급률은 17%다. 그 해에만 1조 4천억 원의 예산이 지원됐다. 1ha당 우리 돈 6백만 원의 직불금을 지급했다. 밀 자급률 1%인 우리나라의 밀 직불금은 ha당 50만 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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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자최형석 신영철 정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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