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탐사공모] '상도동 이야기' 2부. 도시의 끝자락으로

Jun. 09, 2021, 10:00 AM.

개발의 광풍이 몰아친 곳에는 필연적으로 철거의 상처가 남는다. 가진 것 없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철거민들이다. 이들이 떠난 곳에 들어선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에는 이들의 자리가 없다. 뉴스타파 대학생 취재팀은 도시개발이란 이름으로 2020년 세상에서 사라진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65번지, 일명 '똥고개 마을' 사람들을 취재했다. 철거 이후 뿔뿔이 흩어진 이들의 삶을 통해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란 해묵은 질문을 세상에 다시 던져 본다. 
상도동 이야기 1부. 내몰린 사람들
상도동 이야기 2부. 도시의 끝자락으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4동 산65번지(이하 상도4동 산65번지) 일대는 개발이 한창이다. 한때 100명 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곳은 온갖 종류의 중장비로 채워졌다.
취재진이 처음 상도4동 산65번지를 찾은 건 2019년 겨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10여 년째 이어져 온 철거와 투쟁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찾아가 말을 건네도 “해묵은 얘기”라며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체념이 일상이 된 듯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마을 주민들의 관심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16개월이나 취재를 이어갔지만, 반평생 살아온 집을 한순간 잃고 떠나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취재진은 마지막까지 ‘살 권리’를 외쳤던 이들의 철거 후 삶을 따라가봤다.
서울 상도4동 산65번지 철거 전 모습. 10년 넘게 철거가 진행되면서 남은 사람들이 사는 집은 사실상 폐허가 됐다.   

집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

지난해 6월 29일, 상도4동 산65번지 주민대책위원회가 쓰던 가건물이 철거됐다. 철거 과정에서 발생할 비산먼지를 감시한다는 목적으로 남겨뒀던 컨테이너였다. 10년 전 집을 잃고 갈 곳이 없어진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공간이기도 했다.
컨테이너 철거가 있기 전, 시행사는 마을에 남아있던 공가와 반파 가옥을 하나씩 정리했다. 빈민철거연합(빈철연)이 다시 골목에 모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공가 철거가 시작된 날부터 이들의 투쟁은 약 두 달간 계속됐다. 하지만 시행사인 P개발이 마을 부지를 완전히 매입한 상황에서 개발을 저지할 방법은 없었다.
상도4동 산65번지 주민이던 이상기(70) 씨는 철거 이후 한동안 임시로 지은 천막집에서 생활했다. 이웃집 마당에 가죽 소파 하나를 놓고 그 위에 천막을 쳤다. 최영호 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홍천 펜션으로 떠나기 전까지 산 중턱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한여름 장마철이 고역이었다. 비바람이 들이닥치면 천막 사이로 빗물이 새기 일쑤였다.
새로운 거처는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나서야 마련할 수 있었다. 최영호 씨는 강원도 홍천의 한 펜션으로, 이상기 씨는 한평짜리 고시원으로 들어갔다. 가족도 이웃도 없는 곳에서 그들은 고립됐다. ‘밥은 먹었냐’고 묻는 사람도,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는 생활이었다. 고시원에 입주한 뒤로 이상기 씨는 버릇처럼 “길바닥에 있는 것보다야 낫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없이 진행된 개발은 집이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을 늘어나게 했다”고 말했다.
서울 상도4동 산65번지 주민이었던 이상기 씨는 마을이 철거된 뒤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서울 상도4동 산65번지 주민이었던 최영호 씨. 최 씨는 일명 '똥고개 마을'로 불리던 동네가 철거된 뒤 강원도 홍천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상도동 그리고 용산참사 12년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은 상도동 개발 문제를 ‘용산참사’에 빗대어 말하곤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강제 퇴거가 진행된 용산 현장에 시위대로 참여한 이들도 여럿 있었다. 12년 전 용산참사는 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럼 철거 현장에서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지난 2009년 이후 재개발지역 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줄일 지침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은영 소장은 “용산참사 이후 실효적인 변화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개발 사업 성격에 따라 세입자 대책 수립 여부가 달라지는 게 문제다. 특히 민영개발사업의 경우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상도4동 산65번지 사례에서 나타난 문제도 여기에 있다. 세입자 대책을 딱히 세우지 않아도 되는 민영개발방식으로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이상기 씨 같이 땅이 없는 마을 주민들이 법의 울타리 밖으로 내몰린 것이다. 마을 주민 A 씨는 “도로명 주소가 신설될 당시 구청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전기와 수도가 끊어 버린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관할관청인 서울 동작구청 측은 “민영개발사업의 경우 사업자가 세입자 대책을 마련할 의무가 없다. 구청이 나서 세입자 대책을 강제할 법적 근거도 없다”는 입장만 전했다.
전문가들은 용산참사 직후 국회에서 발의됐던 강제퇴거 제한에 관한 특별법(이하 강제퇴거금지법)이 통과됐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거라 이야기한다. 강제퇴거금지법은 '개발사업의 범위에 민영개발사업을 포함해 세입자 범위를 확대하고, 개발사업을 할 때 사전 인권 영향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법안이었다. 그러나 18대 국회부터 지난 20대 국회까지 매번 발의됐지만 번번이 폐기되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그 결과 용산참사라는 비극을 겪은지 12년이 지나도록 개발 현장에서 세입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도시 곳곳에 세워져 있는 건설용 타워크레인은 우리 사회의 빠른 개발 속도를 보여준다. 낙후된 도시를 개발하겠다며 모여든 사람들과 사업에 최적화된 제도는 개발 속도를 점점 가중시킨다. 하지만 그 가운데 끼인 사람들, 땅도 없고 돈도 없는 세입자들은 매번 같은 방식으로 도시의 끝자락으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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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김세민 신지혜 이정숙
촬영김세민 정용환 이정숙 한지윤
편집정용환 한지윤
취재자문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 교수,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송준규 도시인류학 연구자, 이기웅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최열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최인기 빈민운동가
촬영지원김리은 박재범 박진용 이고은 이민성 이혜준 이하영
취재지원김빛찬미래 김성호 이지 이창훈 최민석 허유림
내레이션이지은
구성이정숙
자료영상제공서울영상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