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격 ③ 사모펀드 사태, 누가 '야만인'을 불러들였나

2022년 01월 25일 17시 30분

4년 전 뉴스타파는 '금융의 자격' 연속 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 금융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금융사와 금융소비자 간의 불공정한 금융 거래 실태를 밝히고 개혁을 주문했다. 
이제 변화의 골든타임이 지났다. 위기는 현실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인, 기업들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금융의 사회적 역할, 안전망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그 사이 금융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금융의 자격에 걸맞게, 주문했던 개혁 과제들을 잘 이행해 왔을까. 뉴스타파가 '금융 실격' 연속 보도를 통해 다시 한번, 금융에 자격을 묻는다.

편집자 주
지난 13일 을지로 하나은행 본사, 10여 명이 입구에 줄지어 들어섰다. 로비의 높은 천장과 숫자 1을 형상화한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이 이들을 맞았다. 앞장선 남성이 구호를 외치며 손에 든 서류 봉투를 흔들었다. 하나은행에 보내는 공개 질의서였다. 사무실에 올라가 민원 접수를 하려고 하자 검은 옷의 용역 직원들이 막아섰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로비에 몰린 은행 본사 직원들까지 한데 얽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무리를 피해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직원들을 보고 남성이 소리쳤다. "저희는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 피해자들입니다. 지금 밥이 넘어가십니까? 저희는 2년 동안 잠도 못 잤습니다"
이들은 하나은행에서만 500여 개 계좌, 1500억 원 이상의 환매 중단 피해가 발생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의 투자자들이다. 얼마 전만 해도 이른바 '골드 클럽', 하나은행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VIP 고객이었다. 퇴직금, 노후자금, 주택자금 등 일생의 자산을 은행에 볼모 잡힌 채 2년 넘게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지난 1월 13일,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 10여 명이 하나은행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비단 이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2020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모펀드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98개 사모펀드에서 무려 5조 6천억 원의 환매 중단 피해액이 발생하고 돌려 막기와 서류 조작, 불완전 판매 등 금융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함께 터져 나왔다. 피해자의 울분은 나날이 커지는데 정작 책임자들은 법의 방패 뒤에 꽁꽁 숨어 있다. 뉴스타파가 사모펀드 사태의 진실과 진짜 책임자를 추적했다.

잘 익은 사과로 포장된 썩은 사과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피해자 양수광 씨는 2019년 5월 이 펀드에 9억 원을 투자했다. 1년 뒤 가족들이 함께 살 집을 마련할 주택자금이었다. 하나은행 창구 직원은 거액을 예치하겠다는 양 씨를 지역 PB(Private Banking) 센터로 안내했다. 안전성을 강조하는 양 씨에게 담당 PB가 권한 펀드 중 하나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였다.
△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상품설명서 요약본에는 구조적 안정성, 수익구조의 확정성, 안정적 수익률, 조기상환 옵션 등이 강조돼 있다.
상품설명서 요약본 내용은 양 씨의 상황에 잘 맞아 보였다. 투자 만기가 1년으로 상대적으로 짧은 데다, 5%의 수익도 확실히 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PB의 설명대로라면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었다. 펀드의 기초 자산인 이탈리아 의료 채권은 궁극적으로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지급이 보증되기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가 망하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양 씨는 고위험 투자가 처음이었다. 망설이다 투자 성향을 기입하는 서류는 공란으로 뒀다. 나중에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고 다시 PB를 찾아갔을 때 서류엔 '적극 투자형'이라는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양 씨의 필체가 아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는 양 씨에게 담당 PB는 말이 없었다. 
2020년 4월, 만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양 씨는 청천벽력 같은 환매 중단 통보를 받았다. 얼마 전까지 '무조건 상환'이라고 강조하던 은행은 하루아침에 말을 바꿨다. PB는 자신도 몰랐던 일이라며 사과했다. 은행도 자초지종 설명도 없이 사과문부터 보내왔다. 사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양 씨는 피해자들을 모아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리고 2년 밤낮 자신이 투자한 펀드가 무엇이었는지 파헤쳤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과 시민단체, 국회를 찾아 발로 뛰었다. 넉 장짜리 상품설명서 요약본으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사모펀드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우연한 손실이 아니었다. 썩은 사과를 잘 익은 사과로 속여 판매한 사기였다. 

투자금을 도박 판돈으로 쓴 '야만인'

이탈리아 정부가 망하지 않는 이상 안전하다던 이 펀드는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역외재간접투자라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판매사인 하나은행이 투자금을 모으면 이 투자금은 6개 국내 운용사, 외환 거래를 하는 2개 TRS 증권사를 거쳐 국경을 벗어난다. 해외에서는 해외 운용사의 펀드, 자산 관리회사, 그리고 채권 수탁 업무를 맡는 SPV(특별목적회사, Special Purpose Vehicle)로 투자가 이어진다. 
펀드의 기초 자산은 이탈리아 의료비 채권이다. 공공의료체계를 가진 이탈리아는 환자들이 이용한 의료 서비스의 비용을 국가 기관이 모아 지불한다. 다만 청구에서 지급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일부 의료 회사는 의료비 청구서를 할인 가격으로 처분해 현금화한다. 금융사는 이런 의료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여 할인가격만큼 수익을 볼 수 있는 금융 상품으로 만들어 국제금융시장에 유통시킨다. 여기까지만 보면 은행의 말대로 지극히 안전한 투자처럼 보인다.
△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의 전체 투자 구조도. 중간에 7개 금융사가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여서 확정수익은커녕 원금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설명은 단순한 미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지급이 보증되는 정상적인 의료비 채권의 경우 그 할인율이 3% 수준에 불과하다. 펀드의 복잡한 투자 구조로 인해 선취 수수료 1%를 떼어가는 하나은행을 포함, 무려 6개 금융회사가 수수료를 챙긴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여기에 '자문사' 명목으로 또 4% 수수료로 떼어가는 회사가 더 있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투자자에게 돌아갈 확정수익 5%는커녕, 원금도 꾸준히 손실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한남어드바이저스를 비롯해 총 7개 금융사가 수수료를 떼어가는 구조로 인해 5% 수익은커녕, 원금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
정의당 배진교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관련 하나은행의 내부 실사 보고서(2020년 2월)에 따르면, 이 펀드의 기초자산 90%는 정상 채권이 아닌 부실 채권이었다. 공공의료시스템에 따라 예산에서 정상 지급되는 일반 채권(In Budget Receivable)이 아니라, 채권자 소송 같은 별도의 조치를 해야만 돈을 받을 수 있는 특수 채권(Extra Budget Receivable)이라는 의미다. 특히 할인율은 상당히 높지만 이미 3년 이상 일정이 지연돼 회수 가능성이 극히 낮은 악성 채권 비중이 높았다. 
취재 결과, 이 펀드의 기초 자산 일부는 이탈리아 최대 마피아 조직 가운데 하나인 은드랑게타('Ndrangheta)가 만든 채권으로 드러났다. 은드랑게타는 2015년경부터 자신의 근거지인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지역의 의료 기관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료진과 환자를 협박해 자신의 조직원이 소유한 장례, 후송, 케이터링 등 각종 의료 서비스 회사를 이용하도록 강요해 의료비 청구서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 청구서를 채권으로 유동화해 금융시장에 유통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손에 쥐었다. 이같은 내용을 탐사 보도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마일스 존슨(Miles Johnson) 기자에 따르면, 은드랑게타의 채권 일부는 시론(Chiron)이라는 SPV에 의해 관리됐다. 
△ 마일스 존스 파이낸셜타임스 기자와의 화상인터뷰. 그는 은드랑게타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방에서 벌이는 불법적인 의료 서비스 사업에 대해 탐사보도했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내부 실사 보고서에도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 펀드 기초자산 가운데 약 123억 원어치는 이 SPV로부터 인수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8년, 시론에 의료 채권을 제공하던 이탈리아의 장례회사 크로체 로사 푸트리노(Croce Rosa Putrino)는 이 같은 은드랑게타의 범죄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관련자 28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펀드가 보유한 채권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셈이다. 투자자들은 운이 좋으면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지만 범죄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도박 같은 투자에 판돈을 대준 셈이 됐다.
△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가 일부 기초자산을 사들인 회사 시론(Chiron)은 이탈리아 범죄조직 은드랑게타의 회사로 드러났다.  
이 상황에서도 펀드의  '설계자'는 제 몫을 챙겼다. 내부 실사 보고서를 보면 상품보고서에는 드러나지 않던 자문사의 존재가 드러난다. 한남어드바이저스라는 이름의 국내 법인으로, SPV 구성에 관여하고 펀드를 설계, 소개한 대가로 수수료 47억 원을 받았다. 이 회사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대표이사는 40대 중반의 한국인 김 모 씨다. 
이 펀드의 해외 운용사는 CBIM, 그런데 CBIM에 대한 미국증권거래위원회 SEC의 공시자료에도 김 씨의 이름이 등장한다. 외견상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 월가의 유명 투자회사 출신들이 이끄는 전문 투자 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 회사는 김  씨 한 사람이 지분 75% 이상을  보유한 개인회사다. 김 씨의 존재를 놓고 보면, 복잡해 보이던 투자구조가 단순화된다. 김  씨 한 명이 허울뿐인 해외 운용사와 자문사의 간판 뒤에서 숨어 1500억 원 투자금을 주무르며 개인의 이익을 취한 모양새다. 
△ 취재진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의 '설계자'인 김 모 씨를 추적했다. 취재 중 만난 그의 가족은 그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라고 말했다.

은행은 알고 있었다

상기할 점은 이런 도박에 가까운 투자가 사모펀드의 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업계에서 이른바 '야만인'으로 불리는 사모펀드 투자자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금융 체계의 빈틈을 노리는 고위험 투자를 한다. 금융계는 이러한 사모펀드 투자를 이른바 '모험자본'으로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 때문에 용인하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원칙이 따른다. 전문 투자자에 비해 정보와 경험이 현저히 부족한 일반 투자자를 이런 도박장과 같은 투자에 참여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EU를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각종 규제 정책을 도입해 충분한 전문 지식을 가진 투자자에 한해서만 사모펀드 투자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사례의 경우, 애초에 투자 지식이 전무한 일반 투자자에게 부실의 위험이 큰 고위험 투자를 권유한 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사모펀드는 판매사와 운용사, 수탁사 3개 금융사에 의해 돌아간다. 본래 서로가 견제와 감시를 하며 펀드의 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의 경우, 환매 중단 사태 이후 드러난 사실에 의하면 판매사 하나은행이 사실상 펀드 운용 전반에 개입한 정황이 곳곳에 포착된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라는 간판은 하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6개 국내 운용사가 운용하는 16개 독립적인 펀드로 구성된다. 본래 사모펀드는 감독당국의 규제를 덜 받아 운용이 자유로운 대신 투자자 수가 49명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이 펀드는 사실상의 동일한 펀드를 운용사, 수수료, 상환 조건 등만 미세 조정해가며 16개로 쪼개 규제를 피했다. 이른바 '쪼개기' 판매 방식이다. 규제를 제대로 지켰더라면 49명 이하 소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데 그쳤을 환매 중단이 무려 총 500여 개 계좌, 1500억 원 이상의 피해를 낳은 대형 금융사고로 번진 것이 이 때문이다.
△ 하나은행의 편법적인 쪼개기 판매 방식으로 인해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의 피해규모는 500여 개 계좌, 1500억 원 이상으로 커졌다. 
본래 하나의 운용사가 독립적으로 상품을 설계하고, 여러 판매사를 통해 상품을 판매만 맡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펀드의 경우는 상황이 정반대다. 오히려 여러 운용사가 판매사 입맛에 맞게 붕어빵처럼 펀드를 찍어내면 하나은행이 이것을 가져다 자신의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식이다. 이른바 OEM(주문자 위탁 생산) 판매가 이뤄진 정황이다. 해외운용사와 자문사를 운영했던 김 씨가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하나은행에 건넸고, 하나은행은 이를 국내 6개 운용사에게 전달해 펀드 상품을 '주문 생산'한 것 아니냐는 게 피해자들의 의심이다. 
하나은행이 상품 만기 설정에 깊게 관여한 정황도 포착된다. 해외 운용사인 CBIM의 펀드 약관에 따르면, 이 펀드에는 2~3년의 환매 중단 기간(Lock-up Period)가 설정돼 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1년 만기 상품이 나올 수 없는데도 하나은행은 이 상품을 1년 만기 상품이라고 하며 판매했다. 해외에 돈이 묶여 있어서 내어 줄 돈이 없는 데 버젓이 1년 만기 상품을 판매한 하나은행의 비결은 '돌려 막기'였다. 취재진이 입수한 한 국내 운용사 직원의 진술에 따르면 판매사 하나은행은 새 투자자를 유치해 앞선 투자자의 원금, 수익을 돌려주는 돌려 막기 통해 환매를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이 굳이 폰지사기나 다름없는 이러한 기형적인 환매 구조를 설계한 배경에는 결국 원금 회수와 수익 배당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혹이 나온다. 그간 하나은행은 환매 중단 발표 직전까지 해외 운용사의 부정행위를 알지 못하고 일방적인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자처해왔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같은 해명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나은행이 1년 만기 상품을 출시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9년 3월, 그러나 하나은행은 이미 4개월 전인 2018년 11월 본사 투자상품부 직원을 이탈리아 현지에 출장 보내는 등 내부 실사 조사에 나섰던 것으로 파악됐다. 공교롭게도 당시 실사 조사에 나섰던 이 직원은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기 직전 하나은행에 사표를 내고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 하나은행은 펀드의 부실을 인지하고 투자자에게 상품을 판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실사 조사를 통해 부실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도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2017년에 판매된 초기 상품의 경우, 조기 환매 시점이 2019년 5월이었다. 피해자 측 변호인 측은 적어도 이 이 시점에는 하나은행이 이탈리아로부터 원금 회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하나은행은 문제 발생 사실을 숨긴 채 무려 5개월 동안 돌려 막기 식 판매를 계속했다. 그 사이 판매된 펀드는 700억 원에 이른다. 끝없이 폭탄의 크기를 키우는 이 위험한 판매는 같은 해 10월 DLF 사태에 대한 하나은행 조사가 시작되고서야 멈춰 섰다.
취재진은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하나은행의 입장을 물었지만, 아직 해당 내용을 검토 중이라는 답변 밖에 들을 수 없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이 사태 관련 하나은행에 중징계인 기관경고를 사전 통보했지만, 최종 제재 수위와 보상 규모를 결정하는 제재심의위원회와 분쟁조정위원회는 반년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이탈리아헬스케어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젠투펀드, 독일헤리티지펀드, UK펀드, 디스커버리펀드, 로열글로벌M펀드, 아름드리펀드 등 환매 중단이 발생한 298개 펀드들에서는 어김없이 유사한 문제가 터져나왔다. 펀드 설계 자체의 결함, 운용 상의 부실, 감시와 감독 의무의 해태, 판매사 은행의 불법 행위 의혹 같은 문제들이다.
사모펀드 사태의 피해자들은 2년 넘게 피해액 보상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사와 금융당국, 사법당국 누구 하나 속 시원한 답변을 내놓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이례적으로 사모펀드 판매의 책임을 인정하고 환매 중단 펀드 투자금 전액을 배상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업계에선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금융사의 태도 이면에 소비자를 '가두리 어장 속의 물고기'로 인식하는 오만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잊을만하면 대형 금융 사고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고객은 어김없이 은행을 다시 찾아간다. 은행은 이 점을 잘 알고 있고 당장의 급한 불만 끄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피해자들은 잔인한 선택지 앞에 놓였다. 금감원이 라임 사태 분쟁 조정 과정에서 설정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투자 원금의 절반이 조금 넘는 배상금을 받고 떠나거나, 판매사 은행이 선임한 대형 로펌을 상대로 기약 없는 법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 언론 일각에서는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을 거론하며 투자 원금 반환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외침이 지나치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 법률 전문가들은 판매사가 고객을 기망해 부실 투자 상품을 판매했다면 계약 취소에 의한 투자금 전액 반환을 하는 것이 법리에 맞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판매사가 고객을 기망해 부실 투자 상품을 판매한 이상, 계약 취소에 의한 투자금 전액 반환이 법리에 부합한다고 설명한다. 일단 판매사는 투자자에게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고, 발생한 손실과 책임에 대해서는 판매사, 운용사, 수탁사 등 관련 금융회사들이 알아서 결정한 문제라는 것이다.   
백화점에 가서 코트를 구입한다고 해보죠. 코트에 캐시미어 100%라고 붙여 놓으면 우리가 고급 옷감인 캐시미어로 전부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구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집에 가서 봤는데 다른 캐시미어 100% 상품하고 느낌이 달라서 전문가에게 의뢰를 해 봤더니 이건 캐시미어가 30% 이하로 들어갔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장 구매처가 가서 검품을 받아봤더니 캐시미어 비율이 형편없이 나왔더라라고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백화점에서 '아, 그러면 캐시미어 70%만큼 비용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할까요? 아니죠. 옷을 환불 처리를 하고 새 옷으로 받던지 아니면 돈으로 받던지 이렇게 될 것 같지 않습니까. 사모펀드 사태도 이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임채욱 / 국민대 법과대 겸임교수
관련 법리에 따라 조속히 피해자 구제에 나서야 할 금융당국은 혼선만 거듭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7월, 금감원은 라임 사태 관련 분쟁 조정 절차에서 투자원금의 절반 가량만을 인정해주는 배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피해자들보다는 오히려 판매사들 편에 선 것이다. 은행의 책임을 창구 직원의 단순 불완전판매 정도로 축소하고, 사실상 사기의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에게 투자자 자기 책임의 원칙을 들이대는 기준이 가이드라인 상에 포함됐다.
전임 윤석헌 금감원장 시절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회사와 금융사 임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징계 조치가 나왔지만 대형 로펌을 앞세운 금융회사와의 법정 공방으로 인해 발목이 잡혀 있다. 거기에 지난해 8월 신임 정은보 원장이 이전과 다른 친시장적인 행보를 예고하면서 최악의 금융 참사인 사모펀드 사태마저 유야무야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금융당국의 미진한 대처를 두고 원죄론을 제기하도 한다. 금융당국은 이른바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며 줄곧 금융사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한 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사모펀드에 대한 최소 투자금액을 기존 5억 원에서 1억 원까지 낮추고 회계 보고나 상호 감시 의무를 대폭 완화시켰다. 사모펀드를 사실상 금융회사 창구 판매용 상품으로 열어준 셈이다. 예견된 참사를 만들어 낸 원죄를 지닌 금융 당국이 이제 와서 금융사에 철퇴를 휘두를 수 있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제작진
촬영이상찬, 정형민, 최형석, 오준식
편집정지성, 윤석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취재오대양,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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