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뉴스타파, '만삭의 위안부' 박영심 할머니 원본 영상과 인터뷰 공개

2020년 05월 29일 18시 30분

※ 29일 공개한 미국 문서와 문서에 대한 설명에 오류가 있어 수정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뉴스타파는 ‘만삭의 위안부’로 알려진 고 박영심 할머니 등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들이 2차대전 말 인도차이나 전선에서 연합군에 의해 구출되는 영상 원본을 공개한다. 이 영상 파일은 뉴스타파가 ‘민국100년 프로젝트’ 관련 해외 사료 수집 중 입수한 만여 건의 국외 소개 영상자료 중 하나다. 뉴스타파는 이와 함께 전쟁이 끝난 뒤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간 고 박영심 할머니가 작고하기 전인 1998년 인터뷰한 영상도 함께 공개한다.  

이번에 공개하는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영상은 2차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8월과 9월, 중국과 미얀마(버마) 국경의 인도차이나 전선에서 미군이 촬영한 12분짜리 영상 파일에 들어 있는 50여 초 분량의 영상 기록이다. 12분짜리 영상은 35mm 필름으로 촬영됐고, 제목은 ‘PUSH SOUTH’, 영상 번호는 ADC-10455이다. 촬영자는 에드워드 페이 미군 병장으로 추정된다.

이 영상과 관련된 미군 보고서도 확인된다. 1944년 9월 8일 생산된 중국 원정군 Y군의 G-3(작전) 작전 일지다. 이 일지에는 “쑹산 포로 중에는 한국인 여성 6명이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여기서 6명의 여성은 영상에 등장하는 박영심 할머니를 비롯한 여성들로 추정된다. 이 정보는 1944년 9월 7일 오후 8시 30분에 보고된 것으로 기재돼 있다. 

▲ 1944년 9월 8일 생산된 미군 중국 원정군 Y군의 G-3 작전 일지. 문서의 두번째 단락에 ‘쑹산 포로 중에는 한국인 여성 6명이 있다’(Among the Pow’s are 6 korean women)는 내용이 들어 있다. (빨간색 표시 부분)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검색결과 화면. ‘PUSH SOUTH’라는 제목의 12분짜리 영상 속에 2차대전 당시 머나먼 인도차이나 전선으로 끌려간 고 박영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처참한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영상은 현재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tional Archive)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영상의 일련번호는 ‘RG 111-ADC-10455’.

▲ ‘만삭의 위안부’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구출 당시 스틸 사진. 맨 오른쪽 여성이 고 박영심 할머니.

▲ 이미 공개된 바 있는 구출 당시 사진(좌)과 이번에 뉴스타파가 원본을 공개하는 영상의 캡쳐 이미지(우). 사진과 영상의 왼쪽에 있는 군인은 중국계 미군 정보장교 원-로이 챈 대위. 그의 옆에 있는 여성도 동일 인물이다.

이 영상에 등장하는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은 이미 공개돼 널리 알려진, ‘만삭의 위안부’ 박영심 할머니가 힘겹게 언덕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포착된 스틸 사진에서도 확인된다. 이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미육군 164통신사진중대 소속 찰스 해티필드(Charles H. Hatifield) 이병이다.

이 사진에 나오는 ‘일본군 위안부’ 4명은 이번에 뉴스타파가 공개하는 영상에 모두 나온다. 맨 왼쪽에 있는 미군은 쑹산에서 ‘일본군 위안부’ 20명을 발견해 보호하고, 직접 심문한 원-로이 챈 대위(중국계 미군 정보장교)다. 사진의 맨 오른쪽 여성이 바로 박영심 할머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해 원본을 공개하는 미국문서기록관리청 일련번호 ‘RG 111-ADC-10455’번 영상은 총 12분짜리인데, ‘일본국 위안부’들이 구출되는 모습이 담긴 장면은 50여 초로 해당 영상 파일의 9분 55초에서 10분 49초 사이에 등장한다. 영상에는 연합군 공세로 일본군이 도망간 이후 미얀마에 설치됐던 위안소를 빠져나와 몸을 숨겼던 한국인 위안부들이 미,영,중 연합군에 의해 발견될 때의 모습이 담겨 있다.

대부분 몸을 가누기 힘든 상태거나 얼굴 등에 큰 상처를 입은 처참한 모습이다. 박영심 할머니도 만삭의 몸으로 거동이 힘든 상태지만 연합군에 발견된 뒤, 기뻐하면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눈에 띈다. 박영심 할머니는 연합군의 심문 과정 등을 거친 이후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갔다.

▲ 뉴스타파 목격자들 ‘슬픈 귀향 2부-북녘 할머니의 증언’에 나오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영심 할머니 인터뷰 화면.

박영심 할머니는 1998년 5월 27일 일본인 영화감독 이토 다카시와 평양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 인터뷰 영상은 2016년 3월 11일 뉴스타파가 공개한 북한 출신 ‘일본군 위안부’의 처참한 경험을 담은 2부작 다큐멘터리 ‘슬픈 귀향 2부-북녘 할머니의 증언’(https://newstapa.org/article/FHfUa)에 수록됐다. 위안부로 끌려갈 당시 박영심 할머니의 나이는 17살이었다. 뉴스타파는 이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박영심 할머니의 인터뷰도 이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수집한 영상 원본과 함께 공개한다. 박영심 할머니는 1998년 인터뷰 당시 위안부 피해 사실을 이렇게 고발했다. 아래는 박영심 씨의 증언 내용이다.

○ “나는 17살에 남포에 할머니 집에 갔다가 일본놈이 와서 돈벌이 하자고 하기에 어디 가느냐니까 공장에 가서 돈벌이 하는데 가자 그래서 돈벌이하자는 바람에 따라갔습니다. 그저 기차를 타고 그냥 온종일 가다 보니까 어디냐 하면 중국 남경...남경에 가고 보니 뭐 일본놈의 군대가 와글와글하고 여자들이 잔뜩인데 말하자면 거기서 그 위안부 노릇을 시켰습니다.”
● - 그때 그 위안소 이름 알겠나요?
○ “긴스이루, 금수로,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 그 일본 놈이 정말 만행을 한 생각을 하면 어떻게 하면 사람이 그렇게 하겠어. 자기들도 누이동생도 있을 것이고 처자도 있을 것이고 자식도 있을 터인데 17살 먹었다고 해도 아기 아닙니까, 아기. 정말 생각하면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습니다. 정말 때려 죽여도 시원치 않아요.”
● - 버마에서 있을 때 위안소 이름이 있었나요?
○ “이름 있었는데 그건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어...이카쿠로라 그랬어, 이카쿠로. 이카쿠로는 일본말이다. 지금 알아보면 다 알 겁니다. 버마 사람들도 다 보고 있는 것이고…”
● - 버마에서 위안소에 있는 조선 사람이 몇이나 됐어요?
○ “7명이었어요, 7명. 죽은 게 한 서너명 되고, 하루는 일본군대가 수군대길래 왜 그러나 했더니 군기를 태우겠다 하더구먼요. 아 군기를 태우면 일본놈들이 지게 됐구나. 그래서 우리 조선 여자들 몇이 있는 거하고 일본 여자 둘하고 우리는 뛰자. 그래서 거기서 도망쳤습니다.
난 다른 거 없습니다. 그저 우리 그저… 요구하는 건 우리 보상, (일본 정부가) 보상을 우리 죽기 전에 해주는 것을 바랍니다. 그것도 국민 기금으로 하지 말고 나라의 돈으로 하라. 나라가 할 일이지. 국민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거기에 정말 화가 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격분하게 생각하면 선생님도 그저 막 죽이고 싶어 정말이지. 나 이거 가슴이 막 터져오고 또 터져오고 나 이 배가 찢어진 것 생각하면 정말 어떻게 할지 몰라.”

박영심 할머니는 결국 일본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보지 못하고 지난 2006년 북녘 땅에서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제작진
한상진
영상수집전갑생 (뉴스타파 전문위원 / 서울대 사회발전 연구소 연구원)
편집정지성 최윤원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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