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스카이캐슬②] 의사 교수 부모가 논문공저..외국인 코디까지

2019년 02월 12일 21시 40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일부 명문고 학생들과 부모가 가짜해외학술지까지 이용해 논문 투고 실적을 쌓은 사실을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이 학생들의 부모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처럼 교수나 의사였다.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여러 유형의 부모 가운데 자녀 교육 욕심이 남달랐던 차민혁과 한서진은 극 막바지에 개과천선했지만, 현실판 부모들은 달랐다. 뉴스타파가 접촉한 현실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는 과정에서 연구윤리를 위배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고, 일부는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 뉴스타파는 이런 부모들의 행태를 사례별로 추적했다.

‘억대 입시 코디' 고용하는 예서 부모 넘어 … 직접 ‘스펙 쌓기’ 나선 교수 아빠들

한 국립대 자연과학대학 A 교수는 2011년 과학고에 다니던 딸을 제1저자로, 자신은 교신저자로 기재한 ‘ 박테리아의 항생제 저항성’ 관련 논문을 대표적 가짜학회 와셋에 투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자신이 담당한 국가 과제의 일환으로 해당 연구를 진행했다는 것을 논문에 표기했다. 이 교수의 딸 B 양은 당시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청소년과학탐구반(Youth Science Camp)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돼 이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돼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측은 이 학생이 와셋에 투고한 논문에 재단 지원을 받았다는 사사 표기를 한 것은 자신들은 몰랐고, 이 부녀가 임의로 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측은 청소년과학탐구반 예산은 학교 별로 지급돼 교내 팀 단위로 소액을 나눠쓰기 때문에 일반적인 국가과제 연구비와는 달리 결과물까지는 보고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임세진 한국과학창의재단 기획실장은 "탐구반 활동에서 해당 학생이 영감을 받아 논문을 작성하고 이를 대학 진학 또는 후속 연구에 활용했을 수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재단의 관리 범위를 넘어선다"고 말했다.

공저자 C 교수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자신은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A 교수의 부탁을 받고 논문 검토를 한 번 해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C 교수는 자신이 공저자로 들어간 이 논문을 한국연구자정보(KRI)에 자신의 연구 실적으로 등재해놓고 있었다.

▲A 교수 부녀를 위해 논문 검토를 해주고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C 교수는 문제의 논문을 한국연구자정보(KRI)에 자신의 연구 실적으로 등재해 놓았다.

지금은 민감해서 안 하는데 그 당시만 해도 과학고 학생들은 논문도 쓰고, 도와주고 그런 것들은 있어서 저도 공동으로 한번 검토하는 정도이지, 깊이 관여한 것은 아니에요. 그 당시에는 암암리에 학생들 장려하는 차원에서 사실 문제가 안됐기 때문에, 그렇게 부탁을 해서 다른 교수님이 이렇게 지도하기도 하고. 그런 입장이니까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이 되는데.

가짜학회 투고 논문 공저자 모 국립대 사범대 C 교수

 A 교수 부녀는 와셋에 해당 논문을 게재하고 넉 달 뒤, ‘환경관찰학술지’(Journal of Environmental Monitoring)라는 당시 SCI급 국제 학술지에도 같은 제목의 논문을 투고했다. 표절 확인 결과 이 논문은 앞서 와셋에 게재한 논문과 74% 일치했다. 이 논문에도 제1저자는 A 교수의 딸이었으며, 공저자로는 A 교수 부탁을 받고 논문 검토를 맡았던 C 교수와 A 교수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 그리고 교신저자로 아버지 A 교수와 딸의 학교 지도교사가 이름을 올렸다.

▲A 교수 부녀가 지난 2011년 와셋에 투고한 논문을 이듬해 다른 SCI급 저널에 중복 투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논문에 대한 표절 검사를 진행했더니 70%가 넘는 표절률을 보였다.

교수인 아버지가 자녀에게 학술 경험을 넓혀준다는 명목으로 가짜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도록 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7월 뉴스타파가 보도한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에서 반복적으로 와셋 주최 학술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나온 한 국립대 D 교수.

뉴스타파 취재 결과, 과학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D 교수의 아들 E 군도 가짜 학술단체 ‘월드리서치라이브러리’(World Research Library, WRL)에 논문을 게재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세계에서 이 학술단체에 가장 논문을 많이 투고한 사람은 다름아닌 D 교수다. 이 부자는 2017년 2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WRL 주최 학술대회에 참석해 각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D 교수는 당시 자신이 연구 책임자로 있던 국가과제의 연구비로, 아들은 지역 교육청에서 과학 분야 연구 우수학생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과제연구(Research & Education, R&E) 연구비로 해당 학술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D 교수 부자는 지난 2017년 2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와셋 주최 학술대회에 국가 연구비로 참석해 각자 논문을 발표했다.

D 교수는 취재진에게 자신은 아들이 최선을 다해 연구한 결과물을 발표하도록 권유한 것뿐이며 학술대회 참가 건은 입시를 포함한 어디에도 활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학교 R&E 보고서로 진행한 결과물이기에 본인이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현재의 결과만 놓고 보면, 잘못 권유한 꼴이 되어버렸지만 모두 아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 해낸 결과물입니다. 학회 참가 건은 어디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상 어떻게 설명드려야 할지요.

아들과 함께 가짜학회에 논문을 투고하고 학술대회에 동행한 모 국립대 D 교수

‘비선 저자' 자처한 부모 … ‘연구윤리 위배’ 지적에는 묵묵부답

부모가 이른바 ‘비선 저자’ 역할을 맡은 사례도 복수로 확인됐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접촉한 이 부모들은 공식적으로는 자녀의 이름을 논문 교신저자로 올리고, 뒤에서는 부모가 실제 교신저자 임무를 수행하는 패턴을 보였다. 저자의 투명성, 그리고 교신저자의 역할이 무너진 사례이다.

한 국제학교에 재학 중이던 F 양은 2015년과 2016년에 가짜 학술단체 ‘오믹스’(OMICS International, OMICS)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에 친구들과 함께 3건의 논문을 투고했다. 모든 논문에는 F 양이 교신저자로 올라 있고 본인의 학교 이메일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가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한 의학 관련 논문에는 다른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확인 결과 이 번호는 이 학생의 아버지 G 씨의 연락처로 확인됐다. 아버지 직업은 의사였다. 황당한 건 오믹스의 논문저자 소개란에 F 양이 “심리학과, 수면제에 정통한 연구자이자 여러 저명 학술지의 심사위원”이고 박사(Dr.)학위 소지자라고 소개돼 있다는 점이다.

▲F 양은 오믹스 운영 학술지 저자 소개에 박사(Dr.)학위 소지자이고 여러 저명 학술지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심리학 전문가로 소개돼 있다.

같은 시기, F 양은 오믹스 학술지에 투고한 논문을 유럽 소재 가짜 학술단체 두 곳에 중복 투고했고, 친구들과 함께 이 단체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기도 했다. F 양이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에는 학교 친구들이 아닌 사람들도 공저자로 나온다. 확인 결과 이들은 현직 대학병원 교수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교수들은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 관련 분야의 전공자들이었고, F 양의 아버지인 의사 G 씨와 같은 의과대학을 나온 동문으로 확인됐다.  

아버지 G 씨는 취재진에게 F 양이 딸이라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교신저자인 딸의 연락처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기재한 것에 대해서는 “딸이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긴급한 연락을 받을 수가 없어 교신저자 연락처로 본인의 것을 기입했다"고 해명했다.

특목고와 비평준화 사립고에 다니던 자매가 나란히 가짜학회에 논문을 게재한 사례도 나왔다. 이들은 지난 2017년 자궁경부암 관련 논문을 오믹스가 운영하는 학술지에 실었다. 이 논문엔 이들의 소속이 “00 고등학교 ‘산부인과’(Department of Obstetrics and Gynaecology)”로 표기돼 있다.

▲I 교수의 두 딸은 오믹스에 게재된 논문에 ‘고등학교 산부인과’ 소속으로 기재돼 있다. 이 논문의 제1저자로 올라가 있는 언니의 연락처는 아버지 I 교수의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진이 해당 논문에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언니 H 양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확인한 결과, 자매의 아버지 연락처로 파악됐다. 자매의 아버지는 대학병원 산부인과 과장이었다. 아버지 I 교수는 자매의 논문 주제인 자궁경부암 분야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I 교수는 취재진에게  오믹스 측이 임의로 자신의 연락처를 교신저자 연락처로 기입했다고 주장했다. I 교수는 딸들이 자신의 과거 논문을 활용한 사실 인정했으나 논문 말미에 인용 표기를 했으므로 연구 윤리에는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아버지 I 교수는 오믹스 측이 무단으로 딸들의 소속을 ‘고등학교 산부인과’로, 교신저자인 딸의 연락처를 자신의 것으로 기입했다고 주장했다.

현실판 ‘스카이캐슬'에서는 외국인 입시 코디도 등장

특목고와 미국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명문대에 재학 중인 J 양과 K 군도 가짜학회를 이용했다.

이들은 대입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각자 다른 특목고와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팀을 이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수의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했다. 이 중에는 WRL 산하 가짜 학술지에 실린 논문도 있다.

J 양이 해당 팀 홈페이지에 올린 자기소개에는 “논문 4건 게재, 특허 3건을 보유하고 있고, ICEEA라는 해외 학술대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했다”는 글이 있다. ICEEA 학술대회는 가짜 학술단체 운영 방식과 유사한 중국계 환경분야 학술단체가 개최하는 행사였다.

▲J 양은 팀 홈페이지에 자신의 주요 학술 경력으로 학술지 논문 4건과 특허 3건, 그리고 ICEEA라는 해외 학술대회에서 받은 최우수논문 상을 내세웠다.

뉴스타파 확인 결과, 이들이 연구와 해외 학술지 투고를 진행한 배경에는 외국인 코디 L 씨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L 씨는 “국제 학술지 게재율 90%를 보장”한다고 선전하는 미국 뉴욕 소재 논문 및 연구 프로젝트 컨설팅 회사 소속 프로젝트 코디다. 학생들의 팀 홈페이지엔 L 씨에 대한 감사의 글이 올라와 있다.  학생들은 L 씨가 80여 시간에 걸쳐 기본적인 강의는 물론, 연구 프로젝트 아이디어 수립을 도왔으며 전 실험 과정을 총괄했다고 썼다.

▲J 양과 K 군은 팀 홈페이지에 연구 프로젝트 아이디어는 자신들을 교육하고 실험을 총괄한 외국인 코디의 작품이나 다름없다며 감사의 말을 남겼다.

취재진은 L 씨에게 연락을 취해 연구 프로젝트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해봤다. 그는 7일 가량 직접 한국을 방문해 연구논문 작성에 필요한 실험 기획부터 논문 작성법까지 집중 수업을 진행한다고 안내했다.

과거에 함께 일했던 팀의 경우를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직접 한국에 들어가서 7일 간 실험 진행 방법과 기본적인 생물학 지식에 관한 집중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의 기본 콘셉트를 짜주기도 했고요. 그 이후에 학생들은 주변 대학교 실험실을 잡아서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물론, 각 학생들의 수준과 실험실 섭외 유무 등 요소에 따라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서비스는 달라질 겁니다.

외국인 코디 L 씨

취재: 김지윤, 홍우람, 신우열
데이터 : 김강민
촬영 : 정형민, 오준식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디자인 :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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