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는 대장동 업자들이 검찰 수사를 무마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긴 녹음파일을 추가로 공개한다. 대장동 업자들이 2012년 분당경찰서와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를 받을 당시 녹음된 파일이다. 대장동 업자들은 이 녹음 파일에서 김만배 기자가 당시 수원지검장이었던 김수남 전 검찰총장을 만나 사건 무마를 청탁했다며 "검찰을 붙잡고 있는 게 우리 힘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대화는 실제로 현실이 됐고 수사는 무마됐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의 퇴임 이후 미국 체류비를 지원했다는 김만배의 얘기를 들었다'는 남욱 변호사의 검찰 진술도 새롭게 확인됐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이른바 '50억 클럽'의 일원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에 대해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청탁을 받은 적도, 체류비를 지원받은 적도 없다고 뉴스타파에 해명했다.
뉴스타파 보도한 '김만배 발언', 허위 입증되지 않아
윤석열 정권이 검찰과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뉴스타파에 대한 탄압을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났다. 검찰은 한달이 지나도록 김만배-신학림 사이의 대화가 금전을 매개로 기획된 허위 인터뷰라는 최초의 프레임을 조금도 입증해내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3월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만배 발언의 취지, 즉 '2011년 부산저측은행 사건을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가 대장동 자금책 조우형을 봐줬다'는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서도 그게 왜 가짜 뉴스인지 검찰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수사 무마는 없었다'는 미리 정해진 결론만을 되풀이해서 강변할 뿐 구체적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은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수사 무마 의혹을 밝히기 위한 두 갈래 보도
이같은 상황에서 뉴스타파는 두 갈래의 보도를 이어가며 보다 구체적인 수사 무마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2011년 대검 중수부 수사 당시 조우형은 검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한 자금 운반책이나 명의를 빌려준 인물이 아니라 부산 저축은행의 핵심 비리와 깊숙이 연관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연히 대검 중수부의 수사 대상이 되었어야 했다는 취지다. 관련 기사들은 다음과 같다.
둘째는 2011년 대검 중수부 수사 이후에 있었던 다른 수사들의 무마 정황이다. 대장동 일당은 2011년 뿐 아니라 2012년과 13년, 14년까지 연속해서 수사를 받았는데 단 한 번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들은 어떻게 수사를 무마했는지 서로간의 대화 속에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다. 2012년과 13, 14년에 연속적으로 수사가 무마되었다면 2011년 역시 그랬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가운데 2013년 서울 중앙지검의 수사를 무마한 정황에 대해서는 지난 달 27일 이미 녹음파일을 공개한 바 있다.
오늘(5일) 공개할 녹음파일에는 2012년 분당경찰서와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가 무마된 정황이 담겨 있다. 2012년 8월 18일, 정영학 회계사가 남욱 변호사와 통화하며 녹음한 것이다. 분량은 총 12분인데 앞서 뉴스타파가 공개한 1,325쪽 '정영학 녹취록'에는 약 8분만 글자로 풀어져 있다. 나머지 4분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정영학 녹취록(2012.8.18). 검찰청 속기사가 정영학 녹음파일을 직접 듣고 기록한 '검찰 버전' 녹취록이다. 남자1은 남욱 변호사를 뜻한다. 기존에 뉴스타파가 공개한 녹취록은 정영학 회계사가 작성했는데, 녹음파일 일부 내용은 실려있지 않다.
녹음파일 속 남욱은 김만배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정영학에게 전달한다. 핵심은 김만배가 당시 수원지검장이었던 김수남을 만나 자신들 사건을 청탁했단 것이다. 당시 경기 분당경찰서와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대장동 업자들이 최윤길 성남시의회 의장에게 현금 1억 원 등 금품을 상납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벌였다.
최윤길 의장은 대장동 업자들의 최초 로비 타깃이었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최윤길이 '의장님' 혹은 '대표님'으로 곳곳에 등장한다. 이들은 최윤길을 등에 업고 성남도시개발공사를 탄생시켰다. 이때 만약 최윤길이 처벌 받았다면, 대장동 사업은 그 즉시 물거품이었다.
최윤길은 돈이 든 쇼핑백을 받았지만, 이튿날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이때 남욱, 정영학, 조우형 등이 최윤길과 미리 말을 맞춘 정황이 포착된다. 이후 2014년 수원지검은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수원지검은 최윤길 등에게 뇌물을 준 대장동 업자만 재판에 넘겼다. 정작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입건된 최윤길은 또다시 수사망을 피한 것이다.
▲남욱 피의자신문조서(2021.10.18). 검사가 2012.8.18일자 정영학 녹음파일을 남욱에게 들려주고 관련 질문을 하고 있다.
검·경 모두 '무혐의'로 사건 종결...남욱·정영학 "우리 힘의 근원은 검찰"
녹음파일 속 내용은 현실로 이어졌다. 2012년 11월 21일, 분당경찰서는 최윤길에 대해 '혐의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보냈다. 다음달인 12월 18일 수원지검 성남지청도 무혐의로 사건을 끝냈다.
녹음파일에서 정영학은 "(이 사건과 관련해) 날고 긴다는 사람이 다 끼어 있는데...전·현직 국회의원들이 있는데 다 가만히 놔두겠습니까"라면서 많은 고위직들이 대장동에 연관됐다고 말한다. 남욱과 정영학은 "우리 힘의 근원은 검찰"이라면서 김만배에 대한 믿음을 표시하기도 한다.
2012년만 해도 김만배는 '대장동 로비스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3년 서울중앙지검 수사까지 무혐의로 끝나면서 김만배는 절대적인 신뢰를 얻게 된다. 이후 2014년 말, 수원지검이 남욱, 조우형, 정영학 등을 다시 수사하자 김만배는 비로소 정점에 오르게 된다. 남욱과 정영학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김만배가 지분 49%를 갖게 된 건 그의 화려한 법조 인맥이 뒷배였다.
▲김만배 피의자신문조서(2022.10.3). 김만배는 지난해 검찰 조사에서 김수남 전 총장과의 친분은 인정하면서도, 청탁이나 금품 제공에 대해선 전면 부인했다.
검사가 먼저 물어본 김수남의 '미국 체류비'...남욱 "김만배가 체류비 줬다고 들어"
지난해 검찰은 김만배와 남욱에게 이 녹음파일 속 대화 내용이 사실인지 물었다.
김만배는 2022년 10월 3일 검찰 조사에서 위 녹음파일과 관련된 진술을 했다. 이날 검사가 "피의자는 남욱에게 2012.8 경 김수남을 만나 최윤길 의장의 형사 사건에 대해 부탁했다고 하지 않았는가요?"라고 묻자, 김만배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김수남 검사장과 친한 사이라고 말한 적은 있을지 몰라도, 김수남 검사장에게 최윤길 의장 관련해서 부탁한 사실도 없었고, 남욱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청탁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그런데 남욱의 진술은 다르다. 2022년 11월 24일 검찰 조사에서 검사는 "피의자는 김만배가 김수남 전 총장 퇴임 후 미국 체류 비용을 주었다는 사실을 아는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남욱은 "네. 만배 형이 얘기했어요. 만배 형이 김수남을 챙기고 있고, 체류 비용도 줬다고 얘기했습니다. 여러 번 얘기했어요"라면서 "그런데 그건 법인을 통해서 준 것일 거예요. 자문료? 그런 식으로 문제 안 되게 줬던 것으로 압니다"라고 답했다.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2017년 5월 사의를 표했다. 이후 같은 해 8월에 미국으로 떠나 1년간 머물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국 체류비'와 관련해 검사가 먼저 물었단 것이다. 검사의 질문에는 김만배가 체류비를 줬다는 '사실'이란 단정적인 표현이 들어 있다. 즉, 검사는 김수남의 미국 체류비와 관련해 사전에 정보를 파악하고 있었고, 이를 다시 남욱에게 물어서 재차 확인한 것이다.
▲남욱 피의자신문조서(2022.11.24). 지난해 검찰 조사에서 검사는 김만배가 김수남 전 총장의 '미국 체류비'를 줬는지 남욱에게 물었다.
김수남 "김만배 청탁은 물론 돈 받은 적 없고...남욱 진술은 전언 증거에 불과"
김수남 전 검찰총장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김 전 총장은 ▲ 2012년 8월에 김만배를 만나거나 최윤길 관련 청탁을 받은 사실이 없다 ▲미국 체류 시에 김만배로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금품을 받지 않았다 ▲남욱 진술은 김만배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로 법적인 증거 능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검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 왔다"면서 '50억 클럽'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상황에 대해서도 매우 억울해 했다.
다만, 그는 2019년에 화천대유로부터 법률 자문료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김 전 총장은 "화천대유 자문료는 변호사 개업 후에 자문을 해주고 받은 합법적인 대가"라고 설명했다. 앞서 남욱의 진술처럼, 2019년 이전에 어떠한 형태로든 금품이 갔는지는 지금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미국 체류비'는 김만배가 법조 인맥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단 얘기다.
그러나 '50억 클럽' 일원인 박영수 전 특검과 곽상도 전 의원의 경우, 실제로 금품 증거가 포착돼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김수남 전 총장 의혹과 관련해서도 정확한 수사를 통해 사실 여부를 가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검찰은 남욱이 '미국 체류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을 했는데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검찰은 또 김수남 전 총장에게도 '미국 체류비'와 관련해 사실 관계를 묻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