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두환 프로젝트] ⑭ “나는 허화평에게 쫓겨났다”...5공 잔재 '미래한국재단'

2019년 12월 02일 08시 00분

뉴스타파는 <민국100년 특별기획: 누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가>의 일환으로 ‘전두환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전두환 세력이 쿠데타와 광주학살로 정권을 탈취한 뒤 부정하게 축적한 재산을 환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이 땅에 정의를 세우기 위한 기획입니다. 12·12군사반란 40년을 맞아 준비한 ‘전두환 프로젝트’는 오는 12월까지 방송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허화평은 12.12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다. 전두환 정권에선 정무수석을 지내며 ‘5공의 설계자’, ‘전두환 정권의 2인자’로 불렸다. 국회의원도 2번이나 지낸 그는 현재 공익재단인 ‘미래한국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미래한국재단’은 5공 때인 1981년, 대통령이던 전두환이 재벌기업에서 100억 원 가까운 돈을 뜯어내 만들었던 관변단체인 ‘현대사회연구소’의 후신이다. 허화평은 1988년 이 연구소의 소장으로 취임했고, 2007년에 이사장이 됐다.      


허화평, 전두환이 만든 ‘현대사회연구소’ 물려받아 30년째 주인 행세

허화평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미래한국재단’의 전신인 ‘현대사회연구소’는 1981년 사회정화위원회의 산하기관으로 처음 설립됐다. 쿠데타로 권력을 손에 넣은 전두환이 대기업에서 뜯어낸 93억여 원이 자본금으로 들어갔고,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과 이동찬 코오롱그룹 회장, 김영무 김앤장 설립자 같은 유명인들이 초대이사를 맡았다. 설립과정이나 운영방식 모두 5공 비리의 상징이었던 전두환의 일해재단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1988년 12월 한겨레는 현대사회연구소의 설립과 운영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81년 사회정화위원회의 산하기관으로 설립된 연구소로, 83년 민간재단법인으로 전환되지만 기본성격에 변화가 온 건 아니었다. 연구소 운영재원이 정부의 지원금(연 3억 원)에 크게 의존하고 잡지 ‘2000년’의 판매도 이사로 있는 재벌과 관의 대량구매에 의지하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한겨레(1988년 12월 10일자)

사회정화위원회는 전두환이 ‘5공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목적으로 설립한 국무총리실 소속 정부기관이었다. 5공 초기 전두환과 신군부에 저항하던 수천 명의 공무원과 교수, 언론인을 해고하고 퇴출하는 역할도 맡았다.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전두환 정권의 슬로건도 여기서 만들어졌다.

 
▲ 허화평이 10년 넘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미래한국재단’. 전두환이 만든 사회정화위원회의 산하기관이었던 ‘현대사회연구소’가 이 재단의 전신이다.

허화평, 1989년 ‘5공 청산’ 요구하던 직원들 집단해고한 뒤 연구소 장악

전두환의 비서실장 출신인 허화평이 현대사회연구소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건 노태우 정권 때인 1988년이었다. 연구소 직원들이 5공 청산과 연구소 정상화를 주장하며 파업에 들어가자,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와 국회의원이던 광주학살의 책임자 정호용이 허화평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냈다. 연구소장이 된 후 허화평은 파업에 참여한 20명 가까운 직원들을 모두 해고했고, 이후 20년 가까이 소장으로 일하다가 2007년에 이사장이 됐다. 현재 허화평은 미래한국재단의 유일한 대표권자다.

허화평이 현대사회연구소 직원들을 무더기 해고한 때는 1989년 3월이었다. 집단해고 소식은 당시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지난해 9월부터 소장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파업농성이 계속돼 온 현대사회연구소(소장 허화평)는 지난해 8월 31일 소장지시 불응을 이유로 2명을 해고한 데 이어 지난 17일 나머지 노조원 21명 중 19명을 추가로 집단 해고,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로써 현대사회연구소에는 허 소장과 비노조원 2명을 제외한 전직원이 해고된 셈이다.

동아일보 (1989년 3월 23일)

뉴스타파는 집단해고 당시 현대사회연구소 노동조합 간부들을 찾아 나섰다. 여러 명을 접촉했고, 노조 사무국장을 맡았던 김철운 씨를 만나 장시간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현재 공공운수노조에서 공공사업본부 팀장을 맡고 있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김 씨는 당시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 씨는 “1988년 시작된 현대사회연구소 파업, 그리고 허화평의 집단해고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래는 인터뷰에서 나온 김철운 팀장의 주요 발언 내용.

현대사회연구소는 좋은 인재가 모이고, 내부적으로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구소였다. 상당히 퀄리티가 좋았다.

1988년 1월, 전두환 정권 이후 지역갈등이 심화됐다는 연구결과를 담은 논문이 동아일보에 유출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영진과 직원들간에 갈등이 시작됐다. 경영진은 관련자들을 해고했고, 직원들은 노동조합이 결성한 뒤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이 끝날 때쯤 허화평이 새 연구소장으로 왔다.

연구소장인 허화평과 싸우면서,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는 커다란 권력 블록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1989년 3월 집단해고 직전, 허화평이 노동조합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해고를 선택할 것인지, 굴복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라는 내용이었다. 노조원들 대부분이 해고를 선택했다. 잘못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굴복할 수 없었다.

허화평에게 해고를 당한 뒤 인생이 바뀌었다. 해고 이후 30년째 노동운동가로 살고 있다.

김철운 전 현대사회연구소 노조 사무국장 (현 공공운수노조 팀장)

 
▲ 1988년 1월, 동아일보 1면에 현대사회연구소 김만흠 연구원이 작성한 논문 <한국사회지역갈등연구> 내용이 보도됐다. 이 보도는 현대사회연구소에서 벌어진 해고와 노동조합 결성과 파업의 시작점이었다.

허화평이 현대사회연구소 직원들을 집단해고한 지 30년이 흘렀다. 그 사이 허화평은 전두환이 설립했던 연구소를 아예 개인회사처럼 만들었다. 현재 ‘미래한국재단'은 청와대 인근과 분당 판교, 송파구 등에 400억 원이 넘는 부동산을 소유한 재단으로 성장했다. 결국 전두환이 대기업에서 돈을 뜯어 만든 재단이 허화평의 노후를 든든하게 책임져주고 있는 것이다.

허화평은 이 재단 외에도 청와대 인근에 대지면적만 1000제곱미터가 넘는 대저택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5층짜리 건물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30년 전, 허화평에 의해 현대사회연구소에서 해고됐고, 지금은 노동운동가로 살고 있는 김철운 씨. 그는 당시 현대사회연구소 노조의 사무국장을 맡아 허화평 소장의 퇴진과 연구소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미래한국재단은 리틀 일해재단, 재단재산 사회에 환원돼야...”

허화평이 현대사회연구소 직원들을 집단해고할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현재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와 사무국장이었던 김철운 씨는 “지금이라도 현대사회연구소(현 미래한국재단)의 재산이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대사회연구소는 ‘리틀 일해재단’이다. 전두환이 대기업에서 돈을 뜯어 만든 기관이라는 점에서 일해재단과 본질적으로 똑같다. 따라서 허화평이 연구소를 개인적으로 소유할 이유가 없다. 전두환의 일해재단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이라도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

정관용 전 현대사회연구소 노조위원장 (현 국민대 특임교수)

허화평이 소유한 ‘미래한국재단’의 자산은 정상적으로 만들어진 부가 아니다. 누구의 것을 갈취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두환과 허화평은 역사적 죄인이다. 역사적, 법률적으로 죄를 물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미래한국재단’의 재산이 모두 국고에 환수됐으면 좋겠다.

김철운 전 현대사회연구소 노조 사무국장 (현 공공운수노조 팀장)

* 김철운 전 현대사회연구소 노조 사무국장의 인터뷰 내용 전문은 영상 리포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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