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지지 ‘관제 데모’ 개입 의혹

Oct. 25, 2024, 02:47 PM.

“뭘 보존하자는 거야, 쪽 팔리게. 나라 망신이지!”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던 10월 22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에서는 거친 말이 터져나왔다. 이곳에선 과거 ‘미군 위안부’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 촉구 시위가 열렸다. 이 건물은 1970년대부터 96년까지 운영되다 폐쇄됐다. 300명가량의 시위 참가자는 “동두천의 수치”, “성병관리소 철거 지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집회 주최 단체는 ‘성병관리소철거추진시민공동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다. 윤한옥 시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이 모임이 여성단체협의회, 동두천애향동지회, 소요산상가번영회 등 40여 개 단체의 연합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집회는 동두천시가 개입한 ‘관제 데모’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두고 ‘역사 지우기’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동두천시가 철거 찬성 여론을 조성하려고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지난 10월 22일 성병관리소 철거 지지 집회 참가자가 “성병관리소는 동두천 시민의 수치, 불명예의 상징”이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관제 데모’ 정황①: 단체 문자로 “참여자 명단을 행정복지센터에 알려야…”

동두천시 ‘관제 데모’ 의혹에 불을 붙인 것은 복수의 ‘단톡방’ 공지 문자였다. 일부 주민들은 지난 18일부터 집회 참여 독려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동두천 지역 한 봉사단체는 회원들에게 “시의 소요산관광지 확대개발사업 등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성병관리소 철거 (찬성) 집회에 참여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 단체는 “참여자 명단을 월요일까지 행정복지센터에 알려야 하니 참석할 분은 댓글을 달아주길 바란다”고 공지했다. 
17명이 참여한 한 주민단체 채팅방에도 철거 찬성 집회 관련해 “급하게 집회 참여 인원을 모집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공지글에는 “참석 가능한 5명의 명단”을 집회 전날인 21일 정오까지 파악해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관제 데모’ 정황②: 시청 공무원 내부 문자 “최대한 많은 참석 필요” 

집회 하루 전인 21일에는 공무원들이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 메신저로 발송된 ‘쪽지’를 캡처한 이미지가 유출됐다. 쪽지에는 ‘성병관리소 철거 시위 대항 방문자 명단 파악’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철거 반대 시위에 대항하는, 맞불집회 참가자 명단을 파악한다는 의미다.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이 쪽지의 발신자는 “동장님 차담회 회의 내용 일부”라며 성병관리소 철거 찬성 집회의 일시와 장소를 안내했다. 이어 “동별로 명단 제출이 오늘까지 긴급하게 필요하니 담당 단체별 공지 및 참석 명단을 파악해 회신”해 달라고 요청하며, “최대한 많은 참석이 필요하니 독려를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쪽지에 언급된 “동장님 차담회”는 같은 날 오전 박형덕 동두천시장이 동장들을 만난 회의로 추정된다. 박 시장의 페이스북에는 이날 오전 시장실에서 박 시장이 동장 차담회를 주관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10월 21일 동두천시 공무원용 내부 메신저에는 “동장님 차담회 회의 내용 일부”라며 동별로 집회 참석자 명단 제출을 독촉하는 쪽지가 올라왔다.

‘관제 데모’ 정황③: 집회 현장의 시청 직원과 ‘동두천시 종이가방’

집회 당일인 지난 22일 집회 현장에서도 동두천시의 개입 흔적이 발견됐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동두천시청 공무원이 시민대책위 측 천막과 방송 차량을 오가며 집회 준비에 관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 공무원은 집회 시작 한 시간여 전부터 집회 장소에 나타나 준비 과정을 챙겼다. 지난 14일 시민단체가 동두천시청 청사를 찾아 시장 면담을 요청하자 시청 공무원 수십 명이 나와 이를 저지했는데, 이 때도 현장에 나온 공무원이다.
집회 주최 측 천막 안 테이블 위에는 성병관리소 철거 지지 서명을 독려하는 홍보물과 집회 준비 물품 등이 가득 담긴 동두천시 종이가방이 놓여 있었다. 
철거 찬성 서명 독려 전단물 묶음이 동두천시 종이가방에 담긴 채 집회 주최 측 천막 안에 놓여 있다.

동두천시, “차담회 언급 쪽지는 담당 주무관의 실수”라는 황당한 해명

동두천시는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관제 데모’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동두천시청 측은 ‘동장 차담회 회의 내용’을 담은 내부 ‘쪽지’와 관련해 “동장 차담회에서는 시위 관련한 언급이 없었다”며 “시민단체장들의 대화를 주무관이 오해해 잘못 쓴 실수”라고 주장했다. 
시청 공무원이 집회 준비 과정에 개입한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담당 공무원이 시 보조금을 제대로 집행하는지 동향을 파악하거나 안전 문제를 살핀 것일 뿐 집회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동두천시 보조금을 받는 민간단체가 어느 곳인지 살펴봤다. 그 결과 실제 ‘성병관리소 철거 추진 시민 공동대책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단체 중 대다수가 시 보조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두천시 홈페이지에 올라온 지방보조사업 운용 내역에 따르면, 2022년 회계연도 기준 동두천시는 ▲새마을운동 사업 및 운영에 1억4000만원, ▲한국자유총연맹 운영 등에 4400만원, ▲바르게살기운동 활성화에 4200만원을 지원했다. ▲동두천시체육회 및 장애인체육회에는 각종 체육대회 출전 및 체육회 운영 목적 등으로 약 8억원, ▲한국예총 동두천지회에는 운영 및 차량 지급비로 1억2000만원을 지원했다.

시민단체, 동두천시의 ‘관제 데모’ 의혹 경찰에 수사의뢰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인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은 동두천시의 공무원 중립의무 위반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 21일 동두천경찰서에 수사의뢰서를 제출했다. 
시민행동 측은 “(시가) 행정복지센터까지 동원해 명단을 제출하라고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동대책위)’ 최희신 공동집행위원장은 “시가 시민들을 편 가르기 하고 공권력과 행정력을 사유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두천시, 고작 임시 주차장 만들려고 갈등 속에 무리수?

동두천시가 둔 무리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동두천시는 철거를 강행하기 위해 지난 13일 새벽 5시쯤 막무가내로 굴착기를 투입했다. ‘기습 철거’ 시도는 그곳을 지키고 있던 시민단체가 막아서며 좌절됐다. 그러나 급하게 굴착기를 투입하는 과정에서 공원 보도블록과 나무가 훼손됐다. 철거 전 미리 설치해야 할 분진 가림막도 없었다. 
10월 13일 새벽, 동두천시가 기습 철거를 시도하며 공원 길을 통해 굴착기를 투입해 나무와 보도블록이 훼손됐다.
공동대책위 등 시민단체는 지난해 3월부터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반대해 왔다. 지속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동두천시는 ‘소요산관광지 확대개발사업’을 위해 이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동두천시는 지난해 2월, 옛 성병관리소 부지 6400㎡와 건물을 원 소유자 학교법인 신흥학원으로부터 29억원에 사들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동두천시를 비롯해 경기도 북부 일대의 ‘사학 재벌’인 신흥학원 사이에 유착관계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시는 무리를 해서라도 이달 중에 옛 성병관리소 건물을 철거할 방침이었다. 이달 마지막 주 주말에 열릴 소요산 단풍 축제를 위한 임시주차장으로 쓰기 위해서다. 시는 이 부지의 장기 활용 방안을 위한 용역 조사를 진행했을 뿐, 공식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곳에 유스호스텔 등 숙박업소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시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구두로 밝혔을 뿐이다.

과거 한국정부, ‘미군 위안부’를 미군 사기 진작과 외화 벌이 도구로 인식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1973년에 설립됐다. 성병관리소는 이른바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낙검자 수용소’였다.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하다가 성병에 감염된 여성들을 격리 수용하던 공간이었다는 뜻이다. 구 전염병예방법 시행령 등은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한 여성을 ‘위안부’라고 지칭했다.
1960~70년대 정부 기록 등에 따르면 한국정부는 ‘위안부’가 한국에 주둔한 외국군의 사기를 진작해 군사동맹 유지에 기여한다며 국가안보에 필요한 존재라고 인식했다. 정부는 기지촌 운영과 관리를 외화 획득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공무원들은 ‘위안부’ 여성들을 직접 관리ꞏ교육하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이른바 ‘미군 위안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1977년 8월까지는 성병 환자를 격리수용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법적 근거 없이 낙검자 수용소에 위안부를 격리수용해 치료한 행위가 위법”했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당시 낙검자 수용소에 수용된 위안부를 치료하며 페니실린을 주사했는데, 개인에 따라 페니실린 쇼크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심할 경우 사망했다는 문제가 언급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대법원은 과거 기지촌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최종 인정했다. 정부가 미군 위안부 기지촌 조성과, 운영, 성병관리 등에 적극 개입했던 역사적 사실과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국가가 ‘특정지역’(기지촌) 지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수반되기 마련인 소극적인 성매매의 방치·묵인이나 필요한 한도 내에서의 관리 행위를 넘어 능동적·적극적으로 성매매를 정당화하거나 조장한 행위, 그리고 별다른 법령상 근거도 없이 원고(미군 위안부)들을 강제로 격리수용하여 성병을 치료한 행위는 그 어떠한 명목으로도 면책될 수 없다 [...] 성(性)으로 표상되는 원고(미군 위안부)들의 인격 자체를 국가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국가는 한 인간의 인격이나 인간적 존엄성에 관한 본질을 침해하고 이를 수단으로 삼아 국가적 목적의 달성을 꾀해서는 안 된다 [...] 국가가 기지촌에 성매매 관련 종사자들이 모여든 것을 기화로 위안부의 성(性)을 상품화하여 외화 획득을 도모한 것 또한 명백히 위법하다. 

미군 위안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서울고등법원 판결문 중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의 철거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이 이곳을 주차장이나 호텔보다 의미있는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미군 위안부 ‘낙검자 수용소’였던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전경. 주한 미군은 이곳을 ‘몽키 하우스’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철거가 아닌, 평화와 인권 이야기를 담은 장소로 재탄생해야”

시민단체 측은 이곳을 평화와 인권 이야기를 담은 박물관이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지난해부터 시청과 시의회에 제안해 왔다. 
동두천에 살며 수십 년 동안 기지촌 여성 인권 활동을 해온 최희신 공동위원장은 “동두천에는 과거 동두천의 역사를 보여주는 게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걸린 미군이 1950년대 찍은 사진 정도”라고 말하며 “옛 성병관리소가 동두천의 아픔을 담고 있는데, 이곳이 평화와 인권의 시각에서 동두천의 이야기를 담은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 김대용 대표는 “이곳은 비평화 비인권의 상징이고, 권력이 사람을 수단화하려고 했던 폭력의 현장”이라며 “동두천의 수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함께 보듬어야 할 역사”라고 말했다.  
경기도 청원사이트에 올라온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에 대한 도 문화유산 임시 지정 청원이 한 달 동안 1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도지사의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다. (10월 25일 화면 캡처)
지난 9월 25일 경기도 청원사이트에는 ‘근현대 문화유산인 옛 성병관리소를 도 문화유산으로 임시 지정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30일의 청원 기간이 종료되는 10월 25일 현재까지 10,411명의 동의를 얻었다. 해당 청원에 김동연 도지사의 공식 답변은 아직 달리지 않았다.
지난 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가유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이 이 사안을 거론하자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동두천시와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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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이명주 김지윤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