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6일, 대통령 7시간 실종 미스터리
2014년 07월 29일 22시 47분
감사원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을 풀기 위해 실시한 청와대 조사가 봐주기로 일관됐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확인됐다. 나아가 감사원의 이 같은 부실 조사 결과를 사실로 인정하더라도 대통령이 참사 당일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적절한 대응도 하지 못했다는 정황은 오히려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때문에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 논란은 쉽게 가라앉기 어려워 보인다.
감사원은 지난 5월 29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청와대 방문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비서실 말단 행정관 4명만 대면했을 뿐, 고위 관계자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참사 당일 대통령에게 보고된 사고 관련 문서 일체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청와대는 거부했다고 한다. 대통령 재임 중의 기록은 ‘대통령 지정기록물’이 아니어서 공개가 원칙인데 감사원은 아무런 문제제기도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대통령 직무 관련 기록물은 퇴임 전에는 공개가 원칙입니다. 대통령기록물법 16조에 보면 ‘공개가 원칙이다’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것을 청와대가 정면으로 무시한 것입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감사원이 청와대에 대한 감사 의지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여론에 떠밀려 감사에 착수한 것이고, 그러다 보니 ‘자료를 못 주겠다’는 말에 ‘네, 알겠습니다’만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서기호 / 정의당 의원]
이후 감사원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비서실로부터 각각 A4용지 1장 짜리 서면답변서를 받는다. 여기엔 참사 당일 오전 ‘구조되지 않은 승객들이 선체 내부에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보고가 대통령에게 전달됐다고 기재돼 있었다.
감사원은 한 달여 뒤, 청와대에 대한 이같은 조사 내용을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에 보고했다. 이때 제출된 문서에는 승객들이 배 안에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간이 오전 10시 52분부터 11시 반 사이로 기재됐다.
그러나 지난 16일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 조사 내용은 청와대의 공식 답변이 아니라 감사원이 각종 감사 자료를 검토해 자체적으로 추정한 시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 보고 시간이 어디서 나온거냐고 감사원장에게 물었더니 ‘모든 감사 서류들을 다 검토해 봤더니 그 시간에 해당되는 것 같아서 썼다’고 답변했습니다. 이것은 청와대가 부실하게 해명한 것을 신빙성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감사원이 나서서 내용을 보강해 준 것으로 밖엔 볼 수 없습니다.” [이춘석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문제는 이토록 부실한 감사원의 조사 내용이 설령 사실이라 해도 의혹은 전혀 해소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난 8월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청와대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참사 당일 대통령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비서실 등으로부터 21차례 보고를 받고, 2차례 대응 지시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첫 서면보고가 이뤄진 것은 오전 10시였고, 이후 10시 15분엔 안보실에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10시 30분에는 해경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만약 감사원이 밝힌 대로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대통령에게 ‘승객들이 배 안에 있다’고 보고한 것이 10시 52분부터 11시 30분 사이라면, 안보실이 3번째 서면보고를 한 11시 20분 또는 3번째 유선보고를 한 11시 23분 중 하나의 시점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오후 5시 15분 중대본 방문 전까지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지시를 내렸다는 내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즉, 대통령이 선체 안에 많은 승객이 갇혀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6시간 가까이 이에 대한 대응을 전혀 지시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300명이 배 안에 갇혀 있는 줄 알면서 어떤 대응도 지시하지 않은 대통령. 일반적 상식으로는 납득이 힘든 얘기지만 감사원은 이를 납득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이 국조특위에 제출한 문건에 따르면, 중대본에 간 대통령이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왜 발견하기 어려운가’를 묻기에 앞서,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승객이나 학생’을 먼저 언급한 점으로 미뤄, 감사원은 대통령이 당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기재돼 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의 중대본 회의 발언을 편집 없이 다시 들어봐도 감사원의 이같은 판단은 이해하기 어렵다.
참담한 심정입니다. 지금 보고를 하셨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생존자들을 빨리 구출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거기에 총력을 다 기울여야 되고, 또 아직도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런 승객이나 학생들을 구조하는데, 단 한 명이라도, 뭔가 어디 생존자가 있을 것 같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5시가 넘어서 일몰시간이 가까워오는데 어떻게든지 일몰 전에 생사 확인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입니다.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갇혀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 갇혀 있어서...
수백 명의 승객이 여전히 배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고 받았다면, 그처럼 위급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일하거나, 적절한 대응과 지시 능력이 떨어진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발언이다. 또한 ‘뭔가’, ‘어디’, ‘같으면’ 등의 의문과 가정법을 사용한 것을 볼 때, 오히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감사원은 지난 10일 발표한 세월호 참사 최종 감사 보고서에서 목포해양경찰서장을 해임하라고 통보했다. 사고 보고를 받은 즉시 헬기 출동을 지시하지 않았고, 보고 받은 뒤11분이 지나서야 ‘모든 세력을 총동원해 구조하라’는 일반적인 지시만 내렸을 뿐 구체적인 대응을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세월호 좌현이 모두 가라앉은 뒤에야 무전으로 ‘승객들을 뛰어내리게 하라’는, 현장 상황과 동떨어진 지시를 했다는 것이 해임 이유였다.
지금껏 일부만 드러난 대통령의 참사 당일 행적은 목포해경서장의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감사원은 경찰직 공무원에 대해선 즉각 해임을 통보했고 대통령에 대해선 아예 감사다운 감사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이런 조건에서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은 쉽게 가라앉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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