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법관 기피 신청은 불법 기소 자백이다
2024년 11월 22일 11시 02분
국정원 대공수사팀 권 모 과장의 자살 기도 이후, 국정원의 간첩증거 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검찰은 지난 7일 국정원 블랙 요원 ‘김 사장’과 권 과장의 상급자인 이 모 대공수사단장(2급)을 소환 조사했지만, 책임을 물을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윗선에 대한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검찰이 실무자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 7, 80년대에 안기부와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등에 의해 자행된 여러 건의 간첩조작사건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역사의 증인들은 ‘윗선은 증거조작을 몰랐다’는 국정원의 변명이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운영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민간위원 간사를 맡았던 안병욱 전 가톨릭대 교수는 “국정원장이 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변명은 한마디로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라고 평했다. 그는 이전의 사례를 볼 때 국정원장은 이번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일일보고까지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같은 시기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역시 “과거 간첩조작사건으로 미뤄볼 때 국정원 내부에서 원장까지 보고가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1980년대 대표적인 간첩조작사건인 재일동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김양기 씨 관련 기록에서 당시 안기부장이었던 장세동 씨가 간첩조작의 만능열쇠 역할을 하던 ‘영사증명서’ 발급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발견했다.
김 씨에 대한 기소를 앞두고 안기부가 보안사에 보낸 ‘영사증명 통보문’에는 안기부장의 직인이 확연히 찍혀있었다.
문제는 이때 첨부된 영사증명서의 내용. 이 영사증명서는 김 씨가 재일 북한공작원 김철주와 접촉해 온 것을 입증하기 위한 핵심 증거였지만, 8살에 불과했던 김철주가 조총련의 지역본부 선전부장을 역임했다는 등의 황당한 내용이 나온다. 간첩을 만들기 위해 ‘끼워 맞추기’ 식으로 영사증명서가 만들어진 결과였다.
당시 간첩사건은 대통령에게 수시 보고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안기부장이 직접 관련 문서를 챙겼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원의 ‘윗선’이 이번 증거조작에 깊이 관여했을 보는 이유는 또 있다. 이번 증거조작 과정에는 외교부를 통한 중국 공문 요청과 수천만원이 넘는 공작비 지출 등이 있었다. 이런 업무는 1급인 국정원 대공수사국장 이상의 윗선에서결재가 이뤄진다는 게 상식이다.
이종찬 초대 국정원장 역시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남재준 원장이 몰랐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국정원이 조직적인 증거 조작까지 나선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공문서 위조를 통한 전대미문의 간첩조작 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국정원은 여전히 특권 뒤에 숨어있고, 검찰은 꼬리자르기에 급급하다. 결국 ‘더 이상의 간첩 조작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는 엄중한 역사의 요구 앞에 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특검 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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