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분이라면 이 세션에 주목해야 합니다. 7일 오전에는 ‘탐사보도가 한국의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줬는가’라는 주제로  ‘탐사보도와 한국(Investigative Journalism & South Korea)’ 세션이 진행됐습니다. 이날 세션에서는 각 언론사를 대표할 만한 탐사보도 기자들이 연사로 나왔는데요.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전문기자,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 손용석 jTBC 기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먼저 2016년 촛불시위에 이은 탄핵정국을 촉발시킨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를 기억하실 겁니다. 이 보도를 이끈 손용석 jTBC 기자(사회부 부장)가 최순실 보도 사례를 발표했는데요.

2년 전  jTBC가 특별취재팀을 꾸렸을 당시에는 이미 다른 언론에서 최순실 관련 기사가 많이 보도된 시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관계가 많이 알려진 상황은 아니어서 최순실 측근을 중심으로 취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취재의 기본은 현장 취재라고 할 수 있겠죠. 특종도 역시 현장(!)에 있었습니다.

▲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취재 과정을 소개하고 있는 손용석 기자

2016년 10월 24일 최순실의 태블릿 PC 파일을 입수했다는 첫 보도가 나왔고 다음날인 25일 대통령의 사과, 같은 달 29일에는 첫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현장 취재 통해 태블릿 PC 입수하고 메타 데이터 분석

손 기자는 단순히 태블릿 PC를 입수한 과정 못지 않게 이후 작업이 중요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문’ 관련 보도가 태블릿  PC 이후 어떻게 취재를 진행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인데요. 해당 문서 파일의 메타 데이터를 분석해 실제 연설이 시행되기 전에 작성된 문서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메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순실 태블릿 PC에 있었던 대통령 저도 휴가 사진의 저장 시기도 청와대 발표 이전에 저장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컴퓨터의 아이디가 ‘유연’(정유라의 개명 전 이름)으로 돼 있어서 최순실과 관련된 PC임을 알 수 있었고, PC에 있는 ppt 파일의 작성자가 ‘프레지던트’로 돼 있어서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청와대에서 작성된 ppt는 작성자 아이디가 ‘프레지던트’로 입력된다고 하네요.

손 기자는 “ jTBC는 신생 방송사였는데 세월호 참사 당시 연속 보도를 통해 미디어로 신뢰를 받았고, 2016년 최순실 보도로 어느 정도 지지를 받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2018년 로이터 통신의 조사에서도 가장 신뢰받는 언론사로  jTBC가 선정됐다고 하네요. 손 기자는 “메타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공론의 장을 만들어 탐사보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저희 매체뿐만 아니라 아시아 협업체계가 구축되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은 어떻게 ‘합법적인 탈옥’을 할 수 있었나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13년 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발언을 언급하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심 기자는 한국의 재벌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취약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장충기 문자였다고 말했습니다. 뉴스타파에서도 올해 장충기 문자에 대해 연속보도를 했었는데요. 삼성의 미래전략실 차장에 불과한 장충기가 어떻게 한국의 입법‧사법‧행정부를 쥐고 흔들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한화 김승연 회장의 ‘프리즌 브레이크’ 보도를 소개하고 있는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

심 기자는 뉴스타파에서 보도했던 <한화 김승연 회장의 ‘프리즌 브레이크’>와 <삼성 이 전무의 달콤한 인생> 두 보도를 소개했습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의 ‘프리즌 브레이크’> 보도는 김승연 회장이 3천억 원 대의 배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으며 구치소에 있던 5개월 동안 1개월을 병원 통원 치료와 입원을 반복하다가 결국 구속집행정지를 받아 ‘합법적인 탈옥’을 한 사건을 취재한 것인데요. 취재는 제보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해당 취재원은 조선일보, SBS 등에도 제보를 했는데 기사화되지 못했고 결국 뉴스타파에서만 보도가 됐다고 하네요.

심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1)구치소장이 직접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해 특혜를 준 사실 2)한화가 담당 의사에게 금품을 전달하려 했으나 거절하자 병원의 건강검진상품을 1억 원 어치 구매해준 사실 3)김승연 회장이 구속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도록 담당 의사들이 고의로 치료를 하지 않은 사실 4)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구속 되기 직전 서울대에 50억 원 상당의 거액 기부를 한 사실 등 새로운 팩트를 알아냈다고 합니다. 김승연 회장은 당시 우울증, 호흡곤란, 알츠하이머성 치매 등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정작 병실에서 흡연을 한다거나 샤브샤브 요리를 해먹는 등 중증 환자라고는 볼 수 없는 행태를 벌였다고 합니다.

▲2심 선고 당시 침상에 누워 병원에 실려갔던 한화 김승연 회장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석방됐다. 석방 7개월 뒤 건강한 모습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아들의 승마 경기를 관람했다.

당시 김승연 회장이 진단받은 질병 중에는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있었는데요. 심 기자는 “법정에서 변호인들은 김 회장이 알츠하이머성 치매이기 때문에 스스로 변호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며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퇴행성 질병이기 때문에 치료가 안 되는데 지금 김 회장은 한화의 CEO로 복귀해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심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의사들은 김 회장이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아니라고 했지만 당시 진료 의사만 그렇다고 진단했다고 하네요.

심 기자는 “김승연 회장의 의료기록을 입수하고 공개하는 과정이 어려웠다”며 “탐사기자는 항상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걷게 되는데 변호사의 조언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불법에 대한 논란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입증해서 아무 ‘찍 소리’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승연 회장 역시 의료기록 공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승연 회장의 구치소 특혜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건강, 머니, 여행 섹션은 있는데 노동 섹션은 없다

노동탐사기자로 잘 알려진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는 노동전문기자가 되려고 했던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탐사보도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전문기자

강진구 기자는 경향신문 노조 지부장에 선출되고 난 후 노동전문기자가 되기 위해 공인노무사 자격을 취득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노동관련 탐사 보도를 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노동탐사보도 사례로 2013년 9월에 보도한 <500대 기업의 고용과 노동>, 2015년 7월에 보도한 <대법원 노동판례 25년치 분석>을 발표했습니다.

<500대 기업의 고용과 노동>은 투자자의 관점에서 수익성과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재무제표를 일종의 역발상으로 분석한 탐사보도였습니다. 기업이 수익창출에 대비해 공정하게 노동에 분배하고 있는가, 고용창출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획이라고 합니다. 강 기자는 수습기자 여러명과 함께 6개 박스가 넘는 분량의 방대한 자료를 분석했다고 하는데요.

먼저
1)노동소득분배율(총 부가가치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
2)자산증가 대비 고용창출
3)총인건비에서 간접고용비가 차지하는 비중
4)남성 임금 100% 대비 여성 임금은 몇 % 인가
5)총인건비 대비 배당

이렇게 5가지 평가 지표를 개발해 분석했다고 합니다. 500대 기업을 매출 규모, 업종 별로 나누고 매출액, 영업이익, 자산 등을 엑셀에 입력한 후 다시 엑셀을 활용해 분석을 진행했다고 하네요. 그 결과 500대 기업의 자산이 24% 증가한 반면 고용은 12% 증가에 그쳤고 특히 삼성은 자산이 84% 증가했을 때 고용이 7.4% 증가에 그쳤다고 합니다. 자산이 증가한 사이 고용이 오히려 감소한 기업도 79곳이나 있었다고 하네요. 강 기자는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고용이 감소하는 성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인건비 절감을 위해 주로 아웃소싱을 통해 기업을 운영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웃소싱 규모를 보여주는 공식 통계가 없는데 500대 기업의 총인건비 가운데 47.9%가 간접고용비로 나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하네요.

보도 당시 각 기업별로 순위를 발표하기 전날 기업 홍보실에서 “우리는 몇 등이냐”를 묻는 문의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삼성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강 기자 기사의 문제점을 분석한 자료를 들고 와 항의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강 기자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거칠게 태클을 걸어오는 순간 이 보도는 성공했구나”하고 좋아했다고 합니다. 강 기자의 보도는 기업의 반향은 물론 정부 정책 변화도 이끌어 냈는데요. 강 기자의 보도로 인해 매년 고용노동부가 시상하는 우수고용창출 기업 발표 지표가 얼마나 엉터리였는가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고용노동부는 강 기자에게 사무관을 보내 문제점을 수렴했고 이후 발표 지표도 수정됐다고 하네요.

강 기자는 2017년 대법원의 노동판례 25년치를 분석한 보도를 내보냈는데요. 노무사 시험에 합격해 수습 중인 공인노무사들을 섭외해 단 이틀 만에(!) 분석 작업을 끝냈다고 합니다. 강 기자는 당시 보도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 기자는 뜻 있는 판사의 협조를 얻어 ‘정리해고’, ‘쟁의행위’라는 키워드를 입력해 정리해고 관련 260건, 쟁의행위 관련 500건의 판결을 추출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대법관들이 정리해고 판결의 75%, 쟁의행위 판결의 85%에서 사용자 편을 든 사실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주심 대법관 61명의 개별 성적표도 공개했다고 하네요.

세션을 들은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는 강진구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강진구 기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리 : 뉴스타파 조현미
사진 : 뉴스타파 정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