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

“개한테는 주지 않는다”

2015년 03월 31일 15시 14분

생탁공장의 현대판 신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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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은 부산의 대표 막걸리 ‘생탁’공장 노동자 이옥형 씨가 2002년 가을 처음 받은 월급 명세서입니다. 실수령액 기준 약 58만 원. 오른쪽은 10여 년 후 2013년 받은 월급입니다. 수당 칸은 비어있고 실수령액은 123만9천 원입니다.

새벽 4시까지 출근. 버스가 없는 시각이라 택시를 타야 하지만 회사는 택시비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퇴근 시간은 막걸리 생산량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했고, 쉬는 날은 한 달에 단 하루였습니다. 명절 대목이 가까워 오면 휴일도 없이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기도 했다고 이 씨는 증언합니다.

여름휴가는 일요일을 포함해서 이틀. 평일에 쓸 수 있는 유일한 휴가는 1년에 이 하루였습니다. 연월차를 쓸 수 없는 생탁공장의 노동자들은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를 대비해 일 년에 하루 짜리 귀한 휴가를 아꼈다가 썼습니다.

이렇게 일을 시켰으면 연장, 야간, 휴일근로 수당은 지급했을까요. 생탁공장에서 ‘수당’이라는 말은 월급명세서의 빈칸으로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휴일도 없고 수당도 받지 못하며 십 수 년 간 일했던 생탁공장의 노동자들은 2013년 12월, 우연히 회사 취업규칙 책자에서 연월차와 수당 등에 관한 규정을 발견합니다. 아래와 같이 일반적인 규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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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복남 씨는 그 때의 심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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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사규집을 만든다고 해서 보니까, 그 해에 발생한 연차를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고 적혀있는 거예요. 무슨 연차? 사회적으로 연차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은 이 놈의 회사는 연차를 쓰지 못하게 했으니까… 그러면 우리한테 연차수당이라도 주나. 그것도 아니고.

이 일을 계기로 노조가 만들어졌지만 사측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합의를 피했습니다. 결국 지난해 봄 40여 년 역사의 생탁공장에서 첫 파업이 시작됐습니다. 취재진이 농성장을 찾았을 때가 파업 317일차, 봄에 시작한 파업이 또 한 번의 봄을 맞고 있었습니다.

생탁공장의 사장은 이곳의 거리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뉴스타파 취재진은 사장님을 만나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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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알고 보니 생탁공장(부산합동양조)에는 사장이 한 명이 아니라 41명이 있었습니다. 공장이 두 곳인데 파업이 일어난 장림공장에는 25명의 사장이 있었습니다. 장림공장 생산직 노동자가 50명이니 노동자 두 명 당 사장이 한 명 꼴입니다. 부산합동양조는 이익이 나면 공동 사장들이 똑같이 나눠서 가져갑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생탁공장의 경영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부산합동양조 장림공장의 순이익은 71억이었습니다. 장림공장 소속 사장 25명이 71억을 나누니 한 명당 3억 가까운 금액을 가져간 셈이지요.

사장들 중 8명은 회사 소재지인 부산이 아니라 서울에 살고 있었습니다. 사는 곳도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대치동 타워팰리스, 반포동 레미안퍼스티지 등입니다. 경영책임 사장 1~2명을 제외한 대부분은 일 년에 회의 한두 번 하고 억대의 수익을 거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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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합동양조에 사장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뭘까요? 1970년, 박정희 정권은 세원 확보를 위해 대도시의 양조장을 통합시켰습니다. 소규모 양조장들의 탈세를 막기 위해 강제로 특정 지역의 모든 양조장을 한 곳으로 모은 것입니다. 이때 부산지역의 양조장 사장 41명도 ‘부산 탁약주 제조협회’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이들이 만든 회사가 부산합동양조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사장들 중 일부는 아직 생존해 있고, 일부는 사후에 부인이나 자식에게 사장 자리를 넘겨줬습니다. 지분도 돈도 아닌 사장 ‘의자’를 상속받아 편하게 돈을 벌어 온 생탁 사장들. 뉴스타파 취재진이 찾아가 생탁 노동자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OO 사장 : “궁금한 거는 회사에 물어보세요. 저한테 물어보지 마세요.” 박OO 사장 : “나는 실무 떠난 지 오래 돼서 제가 시원하게 드릴 말씀도 없고 그렇습니다.” 강OO 사장 : “일 안 하시겠다는데, 근로제공을 안 하시겠다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신OO 사장 : “주식회사라는 게 지분만 가지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부산합동양조는 주식회사가 아닌데요?) 어쨌든 저는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심지어 노조가 회사 경영을 담당하는 신OO 사장과 나눈 대화를 촬영한 영상에는 이런 말들도 나옵니다.

노동자 : 방금 개들한텐 (상여금) 안 준다고 했잖아. 신 사장 : 그러니까 나는 개들한테는 안 줘요. 노동자 : 그럼 우리가 개라는 얘기예요? 우리가 사람이 아니고 개기 때문에 안 준다는 거예요. 신 사장 : 여러분들 잘 하시는 대로 하시라고. 노동청 앞에 가서 꽹과리 치고 북 치고 다 하라고요.

노조가 만들어진 직후 회사는 노조 대응 방안이 담긴 <주OO 노무사 간담회> 문건을 만듭니다. 이 문건에는 노조 대처가 어려울 경우 ‘어용노조 만들어 대항’, 계약직 재계약을 노조를 다루는 ‘강력한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내용 등이 언급돼 있습니다. 일종의 ‘노조파괴문건’인 셈입니다. 관련자들을 찾아가 문건의 작성 경위를 물었더니, 주OO 노무사는 “간담회는 했지만 내가 한 말은 아니었다”고 말했고, 사측은 “회사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경리차장이 자의적으로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문건 내용 대부분은 하나씩 현실화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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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시작 한달여 뒤인 작년 5월 제2노조가 만들어졌고, 얼마 전 교섭권마저 제2노조에 빼앗겼습니다. 파업 조합원들은 제2노조를 어용노조라고 부릅니다. 파업 조합원 중 계약직으로 일하던 노동자 4명은 해고됐습니다. 모두 문건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열악한 노동 조건을 바꾸려고 파업과 노숙농성을 시작했던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 1년 여 만에 거리로 나앉게 됐습니다.

노조가 회사를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해 노동청이 조사를 벌였습니다. 노동청은 지난해 가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 수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정부와 회사는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일단 회사로 복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 상태로는 회사에 돌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우선 해고된 계약직 노동자 4명을 버리고 나머지 여섯 명만 복귀할 수는 없고, 징계 방지 조항 등 요구 조건을 하나도 얻지 못하고 회사에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겁니다.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생탁 공장 문제. 파업을 풀 수 없는 노동자들. 꼬인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요? 생탁 노동자들의 긴 겨울은 봄이 완연한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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