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은 고시원

2018년 12월 07일 14시 47분

‘집 아닌 집’, 고시원에 사는 15만 가구

고시원, 보증금이 없는 이들에게 허락된 공간이다. 1평 남짓한 방에 간이침대와 책상을 놓고 나면 여유 공간은 없다. 작은 창문 하나, 그마저도 없는 곳이 많다.

고시원, 비닐하우스, 숙박업소(여인숙), 쪽방 등에 사람이 살고 있지만 주택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비주택”이다. 2018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이외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37만 가구가 비주택에 살고 있고, 이 가운데 약 40% 정도인 15만 가구가 고시원에서 먹고 잔다.

▲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2018년 11월 9일 새벽 5시,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불이 났다. 7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생존자는 33명이다.

64살 이춘산 씨는 화재 당시 3층 방에서 조그만 창문을 열어 건물 밖 에어컨 배관을 타고 내려와 대피했다. 이 씨는 건설 현장에서 설비 일을 한다. 경기가 좋았던 시절엔 지방을 다니며 목돈을 만질 수 있었고, 잠시 원룸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수입이 수월치 않아 올해 초부터 다시 고시원 생활을 택했다.

41살의 조영일(가명) 씨는 화재가 나기 한 달 전, 국일고시원에 들어왔다. 교통비와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직장 근처인 국일고시원에서 먹고 자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다. 조 씨는 눈을 감으면 당시 화재 현장이 떠오른다고 한다. 스프링클러도 없는 작은 방안을 시뻘건 불길이 휩쓸고 갔던 그날의 공포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고시원은 주로 청년들의 공간이다. 전세금이나 보증금을 마련할 형편이 안되는 이들이 산다. 한연화 씨도 2년째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다. 한 씨는 스무 살이 되던 해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왔다. 보증금 없이 먹고 잘 수 있는 곳은 고시원뿐이었다. 그에게 고시원 방은 ‘좁은 상자 속 갇힌 느낌’을 준다고 했다.

벽과 침대가 있고 약간의 공간, 그 공간에 갇힌 느낌 상자 속에 갇힌 느낌이랄까요?

한연화 / 웹소설작가, 고시원 거주 2년 차
▲ 한연화 씨의 고시원 방. 좁은 방바닥에는 생필품이 쌓여있다.


▲ 한연화 씨가 살고있는 고시원 샤워실

고시원 화장실은 낡은 데다 남녀 구분없이 함께 쓴다. 나란히 붙어있는 남녀 샤워실은 위와 바닥이 뚫려있는 칸막이 하나로 남녀 사용을 구분했다.

2014년 웹 소설 작가로 데뷔한 그녀는 하루 대부분을 고시원에서 글을 쓰며 보낸다. 고시원 방에 책상은 있지만 의자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 침대에서 작업한다. 옆방의 작은 인기척도 크게 들리고, 전화 통화도 최대한 낮출 수밖에 없다.

한연화 씨는 좁은 방도, 열악한 샤워실도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무더위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올해 여름 무더위에도 문을 열어놓을 수 없었고 24시간 카페에서 살다시피 했다.

▲ 고시원의 비좁은 방. 사진 제공: 심규동 작가

2011년 정부는 ‘최저 주거기준’을 제정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집은 14㎡ 이상이어야 한다. 전용 수세식 화장실, 목욕 시설, 부엌이 있어야 하고 내열과 내화 방열, 방습에 양호한 건물 재질이어야 한다. 또 적절한 방음, 환기, 채광, 난방 설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연화 씨에게 이 최저 주거 기준은 그림의 떡이다.

37만에 이르는 비주택 가구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최저 주거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번 주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집이 아닌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취재작가 오승아
글 구성 최미혜
취재 연출 남태제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