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비정규직④"우리 없으면 나훈아 콘서트도 못합니다"

2020년 11월 10일 13시 48분

박유선(66) 씨는 지난 2013년부터 KBS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공영방송 KBS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한껏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었다.
공식 업무 시간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지만 박 씨는 아침에 버스 첫차를 타고 출근한다. KBS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5시. 공식 출근시간보다 2시간이나 더 일찍 출근하는 셈이다. 박 씨보다 더 일찍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도 많다고 한다. 이유는 오랜 '관행'때문이다. KBS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미리 청소를 한다는 명목으로 중간관리자 격인 '조장'들이 그 시간에 출근을 하니 조원들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난 박유선 씨는 신관 뒤편 시멘트 마당을 물걸레질하고 있었다. 이곳은 청소노동자들의 '공동 청소 구역'이다. 야외나 다름없지만 기계가 아닌 물걸레로 주기적으로 청소를 한다.
▲ 지난달 30일 청소노동자 박유선 씨가 KBS 신관 뒤쪽 마당을 물걸레질하고 있다.

소속은 같은데... 누구는 정규직, 누구는 비정규직

KBS 청소노동자들은 KBS에서 일하지만 KBS비즈니스(대표 김의철)에 속해있다. KBS비즈니스는 1989년에 설립된 KBS 자회사다. KBS비즈니스는 전국에 있는 KBS 청사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시설, 통신, 전기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정규직, 청소노동자는 비정규직이다. 전체 직원 620여 명 중에 절반인 310여 명이 청소노동자다. 소속은 같은데 업무에 따라 누구는 정규직, 누구는 비정규직인 것이다. 정진희 공공연대노조 서울경기지부 부지부장은 "비정규직 인건비는 정규직의 60%밖에 안 된다"며 "각종 휴가나 복리후생은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KBS별관에 있는 청소노동자 대기실과 샤워실. 황의천 공공연대노조 KBS비즈니스지회장은 "샤워실이 지하 주차장 입구 오수 펌프장 근처에 있어 악취가 많이 난다"며 "샤워실에 난방시설이 없어 겨울에는 추위에 떨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공공연대노조 KBS비즈니스지회 제공) 
실제 KBS비즈니스 정규직은 근속수당, 가족수당, 상여금, 성과급 등을 받지만 비정규직은 이런 수당이 없다. 정규직은 식비로 월 10만 원을 받는데 비정규직은 8만 원을 받는다. 원래 청소노동자도 10만 원의 식비를 받았지만 몇 년 전 최저임금이 많이 오르면서 식비가 기본급에 포함됐다. 그러다 지난해 7월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식비가 다시 생겼다. 명절상여금도 차이가 난다. 정규직은 1년에 두 번 160만 원씩 받는데 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는 20만 원을 받는다. 안식년, 장기근속위로금 등도 정규직만 있다. 신지훈 공공연대노조 법률국장(공인노무사)은 "복리후생수당의 경우 고용형태에 따라 달리 지급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해서 근로기준법에 정한 균등처우 원칙 위반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근속수당, 명절상여금 등을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것은 대법원 판례와 마찬가지로 차별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 KBS 자회사인 KBS비즈니스 규정에 따르면 정규직은 근속수당, 가족수당, 상여금, 성과급 등을 받지만 비정규직은 받지 못한다. 급식비와 명절상여금도 차이가 난다. (자료 공공연대노조) 
KBS비즈니스는 최근 집에서 부상을 당해 발에 깁스를 한 노동자에게 출근을 지시해 논란이 됐다. 일을 하다 다쳤을 경우에는 관련 법에 따라 병가를 적용받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땐 병가를 쓸 수 없다. 하지만 정규직은 업무 외 부상질병의 경우에도 8주의 병가를 쓸 수 있다. 2년 전 허리디스크 수술을 한 박유선 씨도 병가를 요구하다 잘릴 뻔했다. 갑작스레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게 된 박 씨는 연차 10일을 수술하고 입원하는 데 썼다. 3~4일 더 쉬었다 가고 싶어 관리자에게 병가를 요청했더니 박 씨에게 '몇 년 일했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7년 정도 됐다고 답했더니 '오래됐다'며 '그만두고 실업급여를 타라'는 답변을 받았다. 더 일을 해야 했던 박 씨는 결국 허리에 복대를 차고 출근해 일했다.  

1년 단위로 근로계약서 다시 작성...노조 "정규직 전환해야" 

청소노동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KBS비즈니스 정규직으로 전환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은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실제 KBS비즈니스 내부 규정에 따르면 청소노동자 정원은 상황에 따라 사장이 정하게 돼 있다. 직제가 개편되거나 예산이 감소하는 등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인원을 감축할 수 있다.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다 보니 비정규직 신분도 그대로다. 원래 사용자가 기간제 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자동적으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지만, 55세 고령자는 예외다. KBS 청소노동자 대부분이 55세 이상이다. 1년 일하나 10년 일하나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똑같다. 올해 KBS 청소노동자의 급여는 기준급 184만 1천340원으로 최저임금 179만 5천310원보다 4만 6천30원 많다. 여기에 직무수당 10만 원과 식비 8만 원을 추가로 받는다. 
KBS 청소노동자들은 올해 교섭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공공부문 가이드라인에 맞춰 정년 65세(이후 촉탁계약직 3년 연장)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KBS는 법상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의 수신료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이다. KBS비즈니스는 청소노동자 계약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4주의 업무 외 부상질병 병가를 부여하는 방안을 노동조합에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정진희 공공연대노조 서울경기지부 부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KBS가 청소노동자에게 밥값도 주지 않는다는 공격을 대외적으로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주긴 줬는데 정규직은 10만 원인 식비를 비정규직에겐 8만 원만 줬죠. 더 이상 식비는 안 준다고 하는 공격은 안 받게 됐어요. 저는 1년짜리 계약직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곤란해지다 보니 일단 3년으로 연장해서 덮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언 발에 오줌 누기 방식이죠. 조합원들이 원하는 건 고용 안정이고 신분의 변화입니다. 당당하게 일하는 노동자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몸부림이에요."
                                                                                                       - 정진희 공공연대노조 서울경기지부 부지부장
KBS비즈니스 관계자는 "시설 등 기술직 계통 업무는 자격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고 환경직(청소노동자)은 단순노무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며 "인력운용 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각종 수당에 대해서는 "최근까지 적자가 21억 원에 달하는 등 회사 경영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회사 여건이 나아지면 청소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최우선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부상을 당한 청소노동자에게는 2주간의 유급휴가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60대 여성 노동자의 삭발... "우리도 엄연한 사람이다"

박유선 씨는 지난달 6일 머리를 삭발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삭발이다. 이날 박 씨가 부지회장으로 있는 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열고 병가 규정 신설과 1년짜리 근로계약 중단을 요구했다. 
▲ 지난달 6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KBS 청소노동자 박유선 씨(사진 왼쪽)가 병가 신설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KBS 청소노동자들은 최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였다. 전체 조합원 105명 중 103명이 투표에 참여해 101명(98%)이 찬성했다. 지난달 6일 삭발식에서 박유선 씨는 양승동 KBS 사장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엄연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KBS를 위해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가 없으면 KBS 뉴스도, 추석 명절 대형 가수 콘서트도, 드라마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제작진
촬영신영철 김기철
편집 김은
CG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웹출판 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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