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한국산 개표기가 해외 부정선거 원흉? 윤석열 망상 팩트체크

Dec. 19, 2024, 08:00 PM.

탄핵 소추안 가결로 벼랑 끝에 몰린 윤석열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매달리고 있는 게 바로 ‘부정선거 음모론’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의 내란 시도를 '부정 선거를 밝혀내기 위한 결단'으로 칭송하며 마지막 반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이들이 기대고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는 게 매우 긴요한 과제라고 판단해 집중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부정선거 음모론에는 여러 논리적 허점과 사실 관계 오류가 있지만, 오늘은 우선 한국산 개표기가 키르기스스탄 부정선거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에 대해 검증해 보겠습니다. "중앙아시아 국가 키르기스스탄에서 한국산 개표기로 선거를 치른 뒤 선거 부정이 드러났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부정 선거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논리인데, 뉴스타파가 취재해 보니 키르기스스탄의 부정선거는 한국산 개표기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습니다. 

윤석열이 믿은 해외 '부정선거'...현지 언론과 협업해 팩트체크

비상계엄 선포 당일, 윤석열 대통령은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양국의 정상회담은 수교 32년 만에 처음 개최됐습니다. 하필 계엄 선포 당일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을 만난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이 신봉한 부정선거 음모론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상황입니다. 
뉴스타파가 현지 탐사보도 매체와 협업해 부정선거 음모론, 즉 키르기스스탄에서 '한국산 전자개표기'를 이용한 선거 조작이 정말로 있었는지 팩트체크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키르기스스탄이 2015년부터 한국산 개표기를 선거에 도입한 것은 사실입니다.
2) 2017년 키르기스스탄 대선에서 부정 선거가 적발된 것도 사실입니다. 일명 '사마라'게이트라고 불립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정부 측 해거카 부동산 거래 사이트를 해킹한 뒤 키르기스스탄 전체 유권자의 생년월일과 주소, 주민 번호 등을 유출했고, 이 정보를 여당 후보에게 팔았습니다. 여당 후보는 이 정보를 이용해 선거 운동과 매표 행위를 했습니다. 즉, 2017년 대선 부정 선거와 한국산 전자개표기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습니다.  
3) 202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에서도 부정 선거가 적발됐습니다. 이때는 키르기스스탄의 독립언론 '클룹'이 200여 명의 선거 참관인을 잠입시켜 각종 부정 선거 현장을 잡아냈는데, 매표 행위나 투표소에 설치된 카메라로 투표 모습을 감시하는 행위 등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 보도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결국 대통령이 하야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총선 부정선거 역시, 한국산 전자개표기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던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이 이런데도 국내 언론들은 마치 한국산 전자개표기 때문에 키르기스스탄의 부정 선거가 일어났다는 취지의 기사를 썼습니다. 대표적인 기사는 인터넷 언론 뉴데일리의 “한국산 개표기로 부정선거, 혼란한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결국 사임”이라는 제목의 2020년 10월 16일 자 기사인데, 기사 말미에서 뉴데일리는 "이같은 사실은 4·15부정선거국민투쟁본부 등 지난 4·15총선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쪽에 힘을 실으며 의혹을 더할 전망이다”라고 썼습니다. 
결국 음모론은 이런 잘못된 언론 기사를 통해 그럴듯한 형태를 갖춘 뒤 극우 유튜버들을 통해 재생산된 뒤 황교안 전 총리 같은 극우 정치인들을 통해 공론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뇌를 점령하기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은 선관위의 서버를 점검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초현실적인 일탈을 벌이게 되었고요. 

현지 기자 "한국산 개표기는 부정선거 방지에 도움"

키르기스스탄에서 있었던 두 차례 부정 선거를 밝혀내 대통령 하야까지 이끌어낸 건 현지의 독립언론 ‘클룹’이었습니다. 클룹은 키르기스스탄의 뉴스타파라고 할 수 있는 매체인데요, 뉴스타파와 더불어 GIJN, 즉 글로벌 탐사저널리즘네트워크 회원사이기도 합니다. 
뉴스타파는 클룹의 리낫 투밧신 기자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했는데요, 그는 국내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한국산 개표 장비 덕분에 키르기스스탄에서 선거 부정을 저지르는 게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선거장비는 우리의 구원이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인데도 늘 투표 집계와 관련해 문제가 많았습니다. 한국 장비를 도입한 뒤 선거 진행 방식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수개표와 전자개표기를 모두 위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투표 방식을 추적하는 대규모 선거 참관자 그룹이 있을 때는 수개표와 전자개표를 맞춰서 위조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리낫 투밧신/ 키르기스스탄 독립언론 '클룹' 기자 

음모론은 민주주의 전제 파괴... 한국도 예외 아니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만든 음모론이 SNS와 유튜브를 통해 확산되고, 여기에 유력 정치인들이 동조하고 가세하면서 정치 시스템 전체를 뒤흔드는 일이 세계 여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 일인줄만 알았는데, 음모론에 빠진 대통령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헌법 기관에 총기로 무장한 계엄군이 난입하는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났습니다. 
민주주의 체제는 왜곡되지 않은 질 좋은 정보를 골고루 제공받은 시민들이 숙고와 토론을 통해 결국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믿음을 전제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이같은 음모론의 창궐은 그 전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내란은 한 미치광이가 일으킨 일회적이고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를 암시하는 매우 징후적인 사건일 수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상식의 편에 서서 각종 음모론과 맞서 싸우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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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이슬기 봉지욱
촬영최형석
편집박서영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글ㆍ진행심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