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

나는 왜 탑에 올랐나?

2013년 09월 03일 07시 29분

지난 8월 26일 재능교육 종탑 농성자였던 오수영, 여민희씨가 202일 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로써 무려 2075일 동안 이어져 온 국내 최장기 비정규직 농성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재능교육 노사가 단체협약 원상복구와 해고자 12명에 대한 전원복직에 합의하면서다.

반면 지난 5월 9일, 171일 만에 철탑에서 내려온 쌍용차 노동자들은 그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지 못한 채 땅으로 내려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7일 296일 만에 농성을 종료한 현대차 철탑 농성자들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 했다.

그들은 왜 탑 위로 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뉴스타파는 세 개의 탑에서 농성을  벌였던 오수영 재능교육 종탑농성자, 천희봉 현대차 철탑농성자, 한상균 쌍용차 철탑농성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의 탑이 갖는 의미와 탑 위에서 이루고자 한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본다.

오수영 재능교육 종탑농성자

“농성장조차 본사 앞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기 때문에 대안이 없어서 올라간 거예요.”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2000일 3000일 그냥 계속 가는구나. 그런 절박함이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의 결과에 만족해요.”

“너무 힘들 때는 함께 탑에 오른 민희가 막 울고 있어요. 잠도 못 자고. 그런데 그 때 제가 달래면 얘도 자존심이 상하고 나도 달래고 있으면 사실 해줄 말도 없거든요. 그러면 그냥 외면해요. 모르는 척하고”

천의봉 현대차 철탑농성자

“첫 날 탑위에 올라가는데 현대차 용역들이 ‘끌어내려서 죽여버려’ 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에 맞서 싸우던 조합원들의 모습이 아직도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어요.”

“진짜 이빨 꽉 깨물고 버텼어요. 철탑에 오를 당시에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한 손은 무조건 철탑을 잡고 있었어야 했거든요.”

“이기지 못 하고 내려온 게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미련도 많이 남고, 병승이 형하고 ‘이번엔 꼭 한번 이겨보자’ 라고 얘기했거든요. 이 말이 아직 가슴에 많이 남아요. 어머니도 ”

한상균 쌍용차 철탑농성자

“밤이면 훈련하는 헬기가 지나다녔는데 헬기 소리에 놀라서 깨고... 여전히 우리는 벼랑에 몰려있구나.”

“탑 위에서 동료의 죽음 소식을 들으면 서로가 말이 없어요. 셋이서 삼일 동안 아무 말도 없이 지낸 적도 있어요."

<앵커 멘트> 지난 8월 26일 서울 혜화동 성당의 종탑에서 202일간 농성해 온 재능교육노동자들이 내려 왔습니다. 회사 측과 단체협상 원상복구와 해고자 12명에 대한 복직에 합의한 뒤였습니다. 8월 8일에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노동자들이 농성 296일 만에 철탑에서 내려왔고 5월 9일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농성 171일 만에 철탑에서 내려왔습니다.

세 개의 탑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들은 우리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송원근 (가 만나 봤습니다.

<송원근 PD> 지난 8월 26일 혜화동 성당. 재능교육 종탑 농성자인 오수영, 여민희씨가 202일 간의 고공농성을 마쳤습니다. 지난 2007년 농성을 시작한지 2075일 만에 노사합의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재능교육 측은 노조 측의 단체협상 원상복구와 해고자 12명에 대한 전원 복직에 합의했습니다. 이 날 그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오수영 / 재능교육 종탑농성] “사실 장기투쟁 사업장들이 고공 올라가기 전에 조합원들 조직하고 선전전 하고 삭발하고 단식하고 해볼 거 다 해보고 그래도 이제 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특히 저희 같은 경우에는 농성장조차도 안정적으로 본사 앞에서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됐었거든요. 땅에서 할 수 있는 거 다 했고. 그거 말고는 대안이 없어서 올라간 거죠.”

2007년 거리로 나왔던 재능교육 교사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장소는 지상 15미터 높이의 종탑. 그곳에서 이들이 주장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수영 / 재능교육 종탑농성] “저희가 이제 주요하게 올라가면서 요구했던 게 단체협약 원상회복, 해고자 전원 원직복직 문제에요. 저희는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는 건 노동조합을 실제로 인정하는 거다, 라고 저희는 생각하거든요. 근데 회사가 그걸 받아들였고. 그리고 해고 조합원 12명의 유예 없는 즉시 복직을 받아줬고, 받아, 합의를 했고. 해서 저는 저희 결과가 저 스스로는 되게 만족스러워요.”

노사합의 없이 철탑농성을 해제해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현대차와 쌍용차의 철탑 농성자들이었습니다. 현대차 철탑 농성자였던 천희봉씨는 10달 가까운 고공농성으로 인해 몸이 많이 상해있었습니다.

[천의봉 / 현대차 철탑농성] “초창기에는 걸음 걷는 것도 좀 그랬었는데 지금은 많이 진전이 돼서요. 조금 조금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복대를 풀고 아직 장거리를 간다든지 무리한 운동을 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고, 조금씩 운동을 해나가면서 몸의 회복력을 찾고 있습니다.”

[한상균 / 쌍용차 철탑농성] “사실 올라갈 때는 혹독한 추위였고. 내려올 때는 어, 따뜻한 봄이었는데. 실제 우리 마음은 여전히 봄 같지 않은, 봄이 오지 않은, 그런 상태로 내려와서 마음이 무거웠죠.”

[오수영 / 재능교육 종탑농성] “사실 그만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어요. 투쟁의 전망도 안 보이고 그렇다고 막 머리를 박고 정말 끝까지 막 밀어붙이겠다, 죽을 각오로 덤비지도 못하고. 1일 시위하고 농성하고 참 맥없는 투쟁을 우리가 이 시기, 이 중요한 시기에 하고 있구나. 하던지 말던지 뭔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2000일, 3000일 그냥 계속 가는 구나, 이런 절박함이 있었어요. 저희한테.”

[천의봉 / 현대차 철탑농성] “우리가 불법파견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이는 이런 것조차도 어느 누구 하나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러다보니 우리 싸움의 정당성도 알리고 싶은 그런 면도 있었던 거고...”

[한상균 / 쌍용차 철탑농성] “저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고 저는 봅니다. 어, 우리가 막다른 벼랑 끝에서 공장을 바라보는 것이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더라고..”

고민 끝에 오른 철탑이었지만 그들 앞에 놓인 것은 낯설음과 두려움이었습니다.

[천의봉 / 현대차 철탑농성] “밑에서 지시하는 이런 내용을 들으면 끌어내려 죽여 버려.. 이런 이야기가 거기에 맞서 싸우는 조합원들 얼굴이 생소했었죠. 아직까지도 첫 날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오수영 / 재능교육 종탑농성] “딱 그날 눈 왔는데 올라갔더니 나중에 올라갔더니 정말 눈이 워낙 쌓여 있어가지고 이게 한 벽돌 세 장 정도 높이거든요. 둘러싸이는 게. 눈이 쌓여 있으니까 벽돌 한 10센티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잡을 데가 아무 데도 없는 거예요. 와~ 죽었다. 여기서 어떻게 살지. 포기하는 거 아니야. 이런 마음 들었었거든요.”

사는 게 죽기보다 더 어려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한상균 / 쌍용차 철탑농성] “서로가 어, 말이 없습니다. 셋이서. 어떨 때는 막 3일 동안 말 한 마디 없이 지낸 적도 있어요. 굉장히 그런 상황들이 침묵에 빠지게 만들더라고요.”

[천의봉 / 현대차 철탑농성] “그때마다 조합원들이 전화가 많이 왔었죠. 전화가...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마음 편안히 있으라고. 이런 전화를 진짜 수도 없이 받았습니다. 제가 극단적인 그런 선택을 그 자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조합원들의 문의전화 그런 것도 새벽에도 자다가도 전화 받고...”

[오수영 / 재능교육 종탑농성] “너무 힘들 때는 민희가 막 새벽에 잠 못 자고 울고 있어요. 근데 그걸 제가 달래면 얘도 자존심이 상하고 자기가 울고 있다는 걸 누군가가 안다는 게 자존심 상하죠. 나이 40이 넘었는데. 그리고 나도 그걸 달래고 있으면 내가 해줄 말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까. 그냥 외면하고 그냥 모르는 척.”

[천의봉 / 현대차 철탑농성] “그 당시에는 진짜 내 자신과의 싸움. 한계치에서 내 자신을 극복해야 했기 때문에요. 진짜 이빨 꽉 깨물고 그 당시에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한 손은 무조건 철탑을 잡고 있어야 됐기 때문에 두 손을 다 놓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건데요.”

[한상균 / 쌍용차 철탑농성] “밤이면 또 그쪽으로 계속 그 시간대 훈련하는 헬기가 지나갔어요. 그러면 마가 헬기 소리에 깜짝깜짝 놀래고 그랬거든요. 이런 것들이 또 나타나고. 여전히 또 경찰과 대치돼 있는 그런 상황으로 계속 있었잖아요. 이런 모습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어, 벼랑에 몰려있고 맘 편히 숨 한 번 쉴 수 없는 조건이 있는구나.”

[천의봉 / 현대차 철탑농성] “우리가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꼭 한 번 이겨보고 내려가자. 그 말이 아직까지 가슴에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이겨보지 못하고 내려온 거에 아쉬움이 있고, 그것에 대한 미련도 많이 남고.”

살아서는 결코 내려오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지만 가족에겐 참 못할 짓이었습니다.

[한상균 / 쌍용차 철탑농성] “굉장히 긴 시간 동안 어, 가정을 돌보지 못했던 남편에 대한 원망을 어,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뭐 저도 가늠하기 힘들죠. 힘들지만 뭐 어, 어느 날 갑자기 이제 감옥에서 나오고 또 차 타서 내려서 보니까 어, 그 원망들이 어느 순간 동지로 변해있더라고요. 그래서 전 깜짝 놀랬어요.”

[천의봉 / 현대차 철탑농성] “‘어떻게든 버텨서 뭔가 가지고 내려와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 해주셔서 오히려 그런 어머니의 말씀들이 농성에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종탑에서 내려오던 날. 오수영씨의 아홉 살 아들은 엄마를 돌려받았습니다.

[오수영 / 재능교육 종탑농성] “1학기 마지막 시험을 또 40점 맞아 오고 그래서. 아~ 왜 그럴까, 막 이런, 왜 그럴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집에 온 다음 날 아침에 오늘 받아쓰기 시험본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거 연습해야겠네, 아빠랑? 그랬더니 어제 돌보면서 연습했어, 그래 그냥 갔어요. 근데 저녁 때 가서 공책을 봤는데 정말 글씨를 또박또박또박 써서 100점을 맞아온 거예요. 이게 어떤 심리가 작용해서 아이를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들었을까.”

기약 없는 기다림은 일단 끝이 났습니다. 그들은 다시 땅 위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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