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속이는 ‘기사형 광고’...조선일보 1위, 한국경제 2위
2019년 10월 17일 15시 56분
언론의 생명은 신뢰다. 언론 사업은 뉴스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지만 사실은 그 속에 담긴 신뢰를 판다고도 할 수 있다. 올해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38개 국가 언론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언론 신뢰도는 22%였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꼴찌다. 그것도 4년 연속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망하는 언론사가 거의 없다. 왜일까?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한국 언론의 기이한 수입구조에 주목했다. 그 중 하나가 기사를 가장한 광고다. 또 하나는 세금으로 조성된 정부의 홍보, 협찬비다. 이 돈줄이 신뢰가 바닥에 추락해도 언론사가 연명하거나 배를 불리는 재원이 되고 있다. 여기엔 약탈적 또는 읍소형 광고, 협찬 영업 행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구조가 타파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뉴스타파는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 중 하나가 언론개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추적 결과물은 언론개혁 계기판 역할을 할 뉴스타파 특별페이지 언론개혁 대시보드에 집약해서 게재한다.-편집자 주 |
건강기능식품을 파는 주식회사 씨스팡. 조선일보는 올들어 지금까지(11월 12일 현재) 이 회사 제품 홍보 기사를 무려 50여 건이나 실었다. ‘혈관팔팔 피부팔팔’ 관련 기사 19건, ‘관절팔팔’ 17건 등 모두 이 회사 제품 홍보 기사다. ‘혈관팔팔 피부팔팔’ 기사들을 전부 살펴보니 구성과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앞부분에서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성을 소개하고, 뒷부분에는 “특허받은 칸탈로프 멜론” 성분으로 만든 이 제품을 복용하면 심혈관계 질환에 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에서 적발한 ‘기사형 광고’ 편집기준 위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지난 상반기 동안 조선일보의 ‘혈관팔팔 피부팔팔’ 기사 11건이 광고 표시를 하지 않은데다 기자 이름을 명시해 ‘경고’ 처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독자를 기만한 ‘기사형 광고’라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사라도 비슷한 내용이 같은 신문에 1년 내내 반복적으로 게재되는 경우는 없다. 특정 회사나 특정 상품 관련 기사가 계속 여러 번 실리는 것은 바로 이 기사가 광고라는 것을 방증한다.
이렇게 광고자율심의기구의 경고나 주의 결정을 받으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독자를 속이는 ‘기사형 광고’를 반복적으로 게재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을까? 뉴스타파는 2019년 상반기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기사형 광고 심의 결정 데이터를 분석해 같은 상품을 홍보하는 ‘기사형 광고’가 반복해서 실리는 사례를 확인해 봤다. 또 광고주들이 ‘기사형 광고’를 게재할 때 어떤 언론사를 선호하는지도 분석했다.
뉴스타파 분석 결과,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들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신문3사를 선호했다.
특히 앞에서 소개한 씨스팡은 올들어서는 조선일보에 홍보를 집중했다. 이 업체는 ‘혈관팔팔 피부팔팔’ 외에도 ‘비타D팔팔’, ‘크릴오일100’, ‘관절팔팔’, 애완견 관절 영양제라는 ‘멍멍팔팔’ 등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기사형 광고’ 27건을 올상반기 동안 모두 조선일보에 게재했고, 27건 모두 광고자율심의기구에 편집기준 위반으로 걸렸다.
CJ제일제당은 자사의 건강보조식품 ‘아이시안 루테인골드’를 소개하는 ‘기사형 광고’를 13건 게재했는데, 이중 절반 넘는 7건이 조선일보에 게재됐다. 나머지 물량은 중앙일보에 2건, 매일경제에 2건, 한국경제에 1건씩 돌아갔다.
씨스팡, CJ제일제당을 포함한 건강기능식품업계는 메이저 신문사들, 이른바 ‘조중동매경’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광동제약은 자사 건강기능식품 관련 ‘기사형 광고’를 주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나눠줬고, 매일경제에도 소수 물량을 안배했다. 이 회사에서 ‘기사형 광고’가 가장 많았던 제품은 ‘침향환’으로 모두 18건이었다. 조선일보에 8건, 중앙일보에 8건, 매일경제에 2건 씩 배분됐다. ‘관절통치’(중앙일보 5건, 조선일보 4건), ‘진녹경’(중앙일보 4건, 조선일보 3건, 매일경제 2건) 등 광동제약의 다른 제품들의 ‘기사형 광고’도 비슷한 비율로 나눠졌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의 심의결정 데이터를 보면 편집기준 위반 ‘기사형 광고’를 가장 많이 게재한 곳은 조선일보로 나타났다. 2위와 3위는 각각 한국경제와 매일경제였고, 4위는 아시아투데이, 5위는 중앙일보였다.
<건강기능식품 주요 업체의 매체별 ‘기사형 광고’ 편집기준 위반 건수>
건강기능식품과 함께 조중동을 선호한 업계는 병원이다. 병원을 홍보하는 ‘기사형 광고’들은 대부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에 실렸다.
‘기사형 광고’가 가장 많았던 병원 1위는 더와이즈치과병원이었다. 더와이즈치과병원을 홍보하는 ‘기사형 광고’는 2019년 상반기에만 9건이었는데, 여러 매체에 실린 기사의 취지는 대체로 비슷했다. 대학병원에서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환자들을 이 병원의 의사가 ISI 기법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서 잘 치료해줬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병원을 홍보해주는 이런 기사들이 중앙일보에 4건, 조선일보에 3건, 매일경제에 2건씩 게재됐다.
<더와이즈치과병원 보도 목록>
기사 제목 | 매체명 | 게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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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잇몸 상태, 경제적 여건 고려해 맞춤형 치료 | 중앙일보 | 2019. 2. 11. |
"다른 병원서 임플란트 포기한 환자도 예쁜 치아 가능해요" | 중앙일보 | 2019. 2. 18. |
나이 많아도, 잇몸 뼈 약해도 내 치아 같은 ‘맞춤 임플란트’ 가능해요 | 중앙일보 | 2019. 4. 29. |
잇몸뼈 약해 임플란트 불가? 특화된 뼈 이식 수술로 가능 | 중앙일보 | 2019. 6. 17. |
잇몸 뼈 없어도 임플란트 시술 OK… 씹는 즐거움 되찾는다 | 조선일보 | 2019. 1. 15. |
“잇몸 뼈 얇아도 임플란트 할 수 있어요” | 조선일보 | 2019. 3. 26. |
"잇몸 뼈 없고, 위턱뼈 길이 짧아도… 임플란트 가능합니다" | 조선일보 | 2019. 5. 28. |
잇몸 뼈 없어 틀니 한다고요?…이젠 임플란트 하세요 | 매일경제 | 2019. 1. 2. |
잇몸 뼈 없으면 틀니? 이젠 임플란트 가능해요 | 매일경제 | 2019. 6. 5. |
서OO통증의학과는 6건의 기사형 광고를 게재했는데, 모두 조선일보에 게재됐다. 두 명의 기자가 6건의 기사를 나눠서 썼는데, 내용은 대체로 비슷했다. 이 병원 의사가 한 번에 한 곳만 치료하는 만성통증 치료의 기존 틀을 깨고, ‘0.3mm 바늘’을 활용하는 새로운 치료법을 도입해 뛰어난 시술 능력을 보였다는 내용이다.
두레치과를 소개하는 ‘기사형 광고’는 5건 게재됐는데, 조선일보에 2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에 각 1건씩 실렸다. 더조은병원은 기사형 광고를 4건 실었는데, 모두 조선일보에 게재됐다. 영동한의원은 기사형 광고를 4건 실었는데 이 중 3건이 동아일보에, 1건이 조선일보에 게재됐다.
앞서 건강 관련 업계의 ‘기사형 광고’가 소수 메이저 매체에 집중되는 패턴을 보인 데 반해 아파트, 오피스텔 등 건설업계의 ‘기사형 광고’는 소수 매체에 집중되기 보다는 여러 매체에 골고루 실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건설사 광고는 전체 ‘기사형 광고’ 편집기준 위반 사례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
건설업계 ‘기사형 광고’로 가장 많이 다뤄진 것은 한화건설이 경기도 용인시에 건설한 ‘수지 동천 꿈에그린’ 아파트다. 이 아파트 관련 ‘기사형 광고’가 적발된 사례는 모두 24건인데 단일 상품으로는 가장 많다. 한국경제(5건)와 아주경제(4건) 순으로 많았고, 매일경제, 서울경제, 헤럴드경제 등의 경제지가 그 뒤를 이었다.
아파트 관련 ‘기사형 광고’ 중 두번째로 많이 편집기준을 위반한 것은 신영시티디벨로퍼의 ‘탕정지구 지웰시티푸르지오’로, 모두 21건이다. 이 아파트 ‘기사형 광고’는 매일경제, 한국경제, 서울경제, 아시아경제 등에 2건씩, 그리고 지역지인 대전일보, 중도일보, 충청투데이에도 각 1건씩 게재됐다.
건설업계 관련 ‘기사형 광고’ 중 편집기준을 위반한 광고를 매체별로 합쳐보니 1위는 한국경제(142건), 2위는 매일경제(72건), 3위는 아주경제(53건)로 상위권을 모두 경제지들이 차지했다. 아시아투데이(52건), 조선일보(50건) 등이 뒤를 이었다.
<편집기준을 위반한 기사형 광고 상위권 언론사: 전체 순위와 건설업계 순위 비교>
뉴스타파가 집계해본 결과, 이렇게 동일한 상품을 소개하는 ‘기사형 광고’가 여러 번에 걸쳐 게재된 경우는 최소 348건으로 나타났다. 348가지 상품이 1,439건의 ‘기사형 광고’로 소개됐다. 분석대상인 2019년 상반기(1월-6월) ‘기사형 광고’ 3,189건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 같은 매체에서 여러 번에 걸쳐 실은 경우도 많았다. 모두 634건이다. 이 결과는 ‘아이클리어 2.0’과 ‘아이클리어 올케어’ 등 유사한 제품군을 합치지 않은 결과로, 실제로 비슷한 광고가 여러 번 게재되는 경우는 더 많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심의 세칙에는 ‘여러 매체에 유사한 내용이 게재되거나 동일한 매체에 연속적·중복적으로 게재된 경우에는 광고로 판단한다’고 나와 있다. 광고자율심의기구 관계자에 따르면 이 규정은 2010년 이전 ‘신문발전위원회’에서 기사형 광고를 심의하던 당시부터 유지돼 왔다. 이 관계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거나 뉴스 가치가 있어서 보도한 것이라면 똑같은 내용으로 반복해서 기사화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처럼 게재되는 패턴이) 기사가 아닌 광고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취재 | 김강민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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